당신을 만나면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겨요.
학교에 있었을 때, 우리 반도 아닌 '이'로 시작한 아이가 눈에 거슬렸다.
당연히 부정적인 거슬림 말고, 그냥 기분 좋은 신경쓰임정도였겠지.
그 시기에 엄청 바빴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이에게 상담해 보는 거 어떠냐며 먼저 다가갔다.
내가 '상담'분야를 직업으로 두게 된 이유도,
그 아이가 시작이지 않았을까 하고, 지금에 와서야 곱씹어보게 된다.
무더운 여름쯤, 7월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학교에 있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여기 저기 '내가 상담을 하고 있다'라며 떠들었더니
뭘 믿고 신청을 주시는 것인지, 고민이나 일상에서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불안을 안고 오셨다.
더운 여름이었는데 서울숲에서 상담을 했다.
요가와 접목해서 요가를 녹인 상담 클래스도 열어보고.
지금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발버둥쳤다.
마음 아픈 사람들이 참 많았다.
경험이 쌓이고,
지금은 '이완중심상담'이라는 이야기로 이완의 과정을 녹인 상담을 진행하고 있지만.
요가든 이완이든, 몸의 긴장과 경직을 완화시켜주고 싶은 건 똑같은 마음인 것 같다.
담임시절을 거쳐 아이들의 알아차림에 능해졌다.
그래서 가장 먼저 변화를 보여주는 것도 아이들이었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로 빌드업을 깔아 두는 이유는, 나의 극성 팬인 이연님(학생)을 만나는 날이라서 그렇다.
약속시간보다 빨리 도착한 이연님은 먼저 카페로 가서 내가 뭐가 먹고 싶냐고 묻는다. 자기가 주문하겠다며.
그래도 학교에 있었을 땐 내가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연님의 카톡을 받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제발음료만큼은제가사게해주세요...."
띄어쓰기 없이 온 카톡에 그녀의 간절함이 보였다.
밥은 내가 당연히 살 거라는 직감이 있었나 보다.
따뜻한 라떼가 먹고 싶다고 외쳤다.
이연님이 사주시는 게 마음이 편해 보여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었던 날이었다.
마음과 몸을 따뜻하게 하는 데 이연님이 사주신 카페라떼는 참으로 적절했다.
아주 맛있게 라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를 나가서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렇게 적나라하게 이야기해도 될는지 싶을 만큼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얼마나 버는 지도 창피함을 이겨내고 다 알려주었다. 내가 '한만큼' 벌었던, 작고 소중한 수익에 대해서.
내가 고등학생일 때, 누군가 직업에 적나라하게 이야기해 주었다면 내 진로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교사에 대해 조금 더 디테일하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누군가 친절하게 알려주었더라면, 난 교사를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그런 거지. 가보지 않은 길에는 아쉬움과 선망에 대해, 가본 길에 대해서는 힘듦에 대해 더 떠들게 된다.
그래도 지금 내가 걸어온 길을, 오늘 같은 날이 있어서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더 자세하게 알려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홀로서기의 고충, 홀로서기라 좋은 점에 대해 열심히 떠들었다. (그 바람에 저녁 식사 때는 반쯤 방전된 상태로 밥을 먹었다) 또 제자를 만나면 똑같이 할 거다.
나의 학교 밖에서의 이야기가 어찌 보면 나에게는 비밀 이야기다. 왜냐면 학교 선생님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틀이 정해져 있지도 않고 규격과 형식 모두 내 마음대로 만들어나가는 상담과 문해력 학습을 설명해도 내 사업에 고개를 저항감 없이 끄덕이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학교 사람들'에게는 비밀은 아니지만 비밀이야기로 남겨두었다.
이연님도 자신의 비밀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방식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기록을 차곡차곡하고 있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도 어렸을 때 지금 이연님이 알고 있는 걸 알고 있었더라면 '좀 더 행복하게 고등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저 단전 아래로부터 올라왔다.
그러고 이연님이 자기 몸만 한 가방을 메고 왔길래 물었다.
"이연아. 왜 이렇게 큰 가방을 들고 왔어?"
"아 이거요? ㅎㅎㅎㅎ 잠시만요 ㅎㅎㅎ"
하... 삘이 왔다. 이건 백퍼 선물이다.
1년 가까이 나를 졸졸 따라다닌 이연님이 이제 씩 웃기만 해도 무엇을 꺼낼지 짐작이 간다. 백퍼센트 최소 손 편지는 준비해 왔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준비 안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본인이 좋아하는 작가의 시집과 간단히 들고 다닐 수 있는 시 카드(?)를 선물로 주었다. 이연님의 마음이 느껴지게도, 포장지까지 따로 준비한 이쁜 선물에 입이 귀에 걸렸다. (미안 선생님이 속물(?)이구나)
매번 얼굴을 볼 때마다 손 편지를 자주 써왔던 이연님이라, 더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응원해 준다는 사실은 마음을 참 따뜻하게 한다. 좀 더 오바하자면 삶을 더 열심히 버텨내고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서로 어울리는 시도 골라주고, 이런저런 학교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은 찜닭을 먹으러 갔다.
처음에 가기로 한 라멘 맛집 앞에 서서는, 웨이팅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3초 만에 서로 아이컨택 후 말했다.
"ㅎㅎ 다른 거 먹을까요?"
신촌역에서 동업하고 있는 분이랑 먹었던 찜닭이 맛있어서 생각이 났다. 다행히 맛있게 먹어주었던 것 같다. 더 열심히 일해서 맛있는 거 먹이고 싶다!!!!!!
저녁을 먹고는 추위에 떨며 집으로 향했다. 서로 좀 멀리 집이 있어서 집 도착하면 연락해라고 당부를 하고는 버스에 올랐다. 최근 사람 만날 일이 정말 없었는데 따뜻하고도 몽글몽글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이연님은 내가 처음 시도해 본 '학생 상담'이었는데,
상담 이후로 나에게 감동을 한 건지, 나 자체가 좋아진 건지 항상 구애(?)를 해주었다.
고맙고 귀여운 일이다.
이연님의 이따금씩 자신의 변화를 들려준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예전이었으면 시도하지 않았을 것도 척척 해보려고 하고,
좀 더 씩씩해진 게 이연님의 학교 생활이나 말투에서 느껴진다.
더 밝아지고 자주 웃는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 이연님은 항상 자신의 아픔이나 결핍까지, 사랑하는, 아니 사랑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그 부분이 표정이나 말, 적극성 같은 걸로 보이는 듯하다.
'나 덕분에~'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지금 선택한 직업이 결코 틀리지 않았구나라고 느낀다.
학교를 떠나오고 마지막으로 학교에 처리하러 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이연님의 카톡이 나의 시원 섭섭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이연님이 보여준 변화처럼,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영향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희망으로 내일을 살아가고 싶다.
이연님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그녀의 행보는 내 발걸음도 벅차게 만든다.
+추가 소식..
결국 회장 선거에 나가고 싶다는 이연님은 회장이 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