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우워우...
해가 바뀌고 전공의 순환근무로 병원을 옮긴 지 3개월. 교수님께서 논문에 쓸 환자 자료를 정리해 달라고 하셔서 예전 병원 의국에 들렸다가 나오는 길, 병동 복도에서 낯익은 보호자를 마주쳤다. "워우워우" 눈엔 반가움을 한가득 담고, 얼굴 표정으로는 말 그대로 말 못 하는 답답함을 내비치며 연신 "워우워우"만 하였다. 양손으로 내 오른팔을 붙잡고 같이 가자는 시늉을 한다. 언제나 얼굴 가득했던 걱정과 시름은 이제 한결 옅여져 행복감마저 감도는 모습이다. 낯선 모습. 내 기억 속에는 언제나 울고, 항상 슬퍼하면서 남편의 회복을 간절히 기도하던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병실로 들어섰다. 창가 옆 침대에 등을 세우고 기대어 앉아 본인의 손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음식들을 거의 다 비운 모습. 코엔 산소 줄을 낀 채 쉰 목소리로, "이번 주 주말에 퇴원하라고 했어요." 생각해보니 환자의 목소리는 오늘 처음 듣는다.
작년 겨울이었다. 김철수 환자는 폐렴으로 응급실 통해서 입원했다가 경과가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옮겼다. 입원 후 거의 한 달이 되어갔다. "s선생 이젠 정말 그만하지. 그동안 s선생이 계속 살리겠다고 해서 이까지 왔지만 이젠 정말 환자에게도 못할 일이야" 중환자실 회진을 돌면서 교수님은 어젯밤에 환자 의식이 돌아왔다는 걸 내가 미쳐 말하기 전에 급하게 말하셨다. 눈을 감고 있던 환자의 눈꺼풀이 약하게 떨린다. 평생 광산에서 광부로 일하다가 진폐증이 생겨 굳어진 폐에 폐렴이 생긴 후 점점 번져서 호흡 부전에 빠졌다. 의식을 잃은 채 호흡기에 의존해 2주 넘게 간신히 버티다 어젯밤 극적으로 의식이 돌아왔다. 회진은 다음 환자로 바로 넘어갔다.
회진을 마치자마자 바로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철수 씨, 걱정하지 말아요. 이제 다 나았어요.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요.” 며칠 후 호흡기를 떼고, 이영희 보호자에게 이제 난 순환근무로 다른 병원으로 가지만, 환자는 다음 주에 병실로 갈 수 있을 거라 설명하고 떠났었다.
이영희 보호자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보였다.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걸 참고 이야기했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제가 고마워요. 정말."
정말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