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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Sung Nov 22. 2022

사건사고

인턴 1년 중  한 달씩 세 번,  3개월 동안 응급실 근무를 했었다

추분이다.                     

이제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면서 하늘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만 가고,   그 푸르름은 세상 모든 다른 푸른 것들의 부러움을 살만하다.                     

          

갑자기 울리는 사이렌 소리,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아직 저 소리가 나면 긴장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구급차가 응급실 문 앞에 서고, 여럿이 스트렛쳐카(구급차에서 환자가 누운 채로 같이 내리면 바로 펴지는 것도 있었지만, 그게 없으면 환자를 태워서 옮겨와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를 가지고 나가 차 뒷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조용하던 차 안에서 갑자기 울음소리가 난다. 연극을 보는 것 같다. 무언가를 원하거나, 아님 다른 무언가를 피하길 원해하는 연기. 관객이 있어야만 행해지는 목적성.  응급실 생활을 시작한 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나 연민보단 오히려 불신과 의심이 더 키워진 날 자꾸 느끼게 되는 것도 고역이다.  얼마 전엔 부인이 냉장고 안의 물통에 농약을 타서 넣은 후, 술 취한 남편이  이걸 마시고 쓰려지자,  119를 불러 응급실로 온 적도 있었다. 보호자로 왔던 부인은 자기는 남편이 왜 쓰러졌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시댁 식구들이 집에 가서 농약병을 찾아와 겨우 환자를 살렸었다.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여자의 목을 끌어안고 통곡을 한다. 환자를 내릴려고 다가서자, 갑자기 내려와 환자를 안고 소리친다.  “다 비켜 내가 하는 게 더 빨라!  여보 죽지 마. 제발. 눈을 좀 떠!”  여잔 아까부터 눈을 뜨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잔 차마 자기 부인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서,  어떤 목적하에 연기를 하는 것인가?  남자 뒤에서 여자의 얼굴을 살피면서 따라갔다. 무표정한 얼굴, 참 기이한 상황이다. 아무리 작은 외상을 입은 환자이더라도 응급실에 처음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자기도 모르게 공포감을 표현하는데, 전혀 표정 변화가 없는 얼굴이다.  오른쪽 턱 바로 밑에 난 상처에서 피를 흘리긴 하지만, 창백하진 않고, 스스로 눈을 뜨고 흔들림 없는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의식도 있고, 혈압도 괜찮아 보이고, 그리 심한 통증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혹 목뼈를 다치기라도 했다면 저리 안고 뛰는 동안 척수신경을 다쳐 전신마비가 될 수도 있다는 게 걱정되었다.  응급실 중환자 처지 베드에 환자를 눕히고서도 남잔 계속 여잘 부둥켜안고 있다. “죽지 마. 날 두고 죽으면 안 돼!  여보, 이리 가면 안 돼!”  이 과장된 몸짓은 도대체 무슨 의미지? 응급실 남자 도우미들이 남잘 데리고 나가면서 커튼을 친다. 오열하는 소리 점점 멀어지는 게 문 밖으로 데리고 간 모양이다. 남자를 따라 나갔던 간호사가 들어왔다. 공기총 오발이었다고 말했단다. 환잔 눈을 뜨고 있다. "여보세요?" 대답 없이 허공만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진을 애써 무시하는 건 자해나 음독 뭐 이런 것인데...  삶을 이미 포기해버려 도움을 오히려 방해받는다고 여기는 경우 거나.

    

검사가 웬만큼 끝났다. CT 사진을 보면,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탄환은 중요부위를 피해 혈관과 신경이 그물처럼 되어있는 곳 한가운데 빈 곳에 박혀있었다. 이비인후과 교수님이 단지 1cm만 옆으로 갔어도 위험했다고, 정말 다행이라고 설명하는데,  그 말을 듣던 보호자의 얼굴이 일그러짐을 보고, 역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환자는 수술실로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응급실 현관문이 활짝 열리더니, 여러 명의  경찰관들이 들이닥친다. 손은 허리에 찬 권총에 대고 누군가를 찾는다.  혹 누가 살려달라고 신고라도 한 걸까? 후다닥 한바탕 소란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며칠이 지나고, 이젠 아침 바람이 벌써 차가워졌다.  여름이란 그리 열불을 내며 사람들 덥게 하더니 가을에 쫓겨 벌써 산 너머로 다 도망갔나 보다. 사이렌이 또 울린다. 스트렛쳐카가 나가고 환자를 눕혀 뛰어들어온다. 사람이 좀 많다. 주황색의 구급대원들 뒤로 권총을 찬 얼마 전 그 경찰들이 같이 왔다.

                     

마침 응급실에 있던 신경외과의사들이 바로 환자를 본 후, 보호자를 찾는다.  부인이 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단다.  환자를 보니 지난번 부인 앞에서 통곡하던 그 사람이다. 부인 살해에 실패하고 경찰에 쫓겨 산에 숨어 있다가, 집 뒤에 숨겨 놓았던 공기총을 찾아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단다.  응급수술이 필요하지만 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한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았다.

                                   

 영안실에서 영구차가 먼저 나가고 다른 차들이  하나 둘 뒤따라 나간다.  그 뒤에서 누군가 환자복을 입고 목에 붕대를 감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잔뜩 흐려진 하늘에서 이내 굵은 빗방울들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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