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긍정에너지 옥랑 Sep 18. 2023

 양양의 날다람쥐, 그녀들!


어쩌다 간혹,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계모가 아닐까 하는…

특히나 정형외과 의사선생님의 눈빛이 그렇다.



세 아이의 엄마. 현재 나의 대외적인 직함이다.

첫째가 남자아이, 둘째 셋째가 여자 쌍둥이이지만 그녀들은 도시에서 이곳으로 전학 온 날 

유치원에서 “ 원래 시골 아이들 같다”라는 말을 들었다.

여자아이들이지만 잘 뛰고, 달리고, 굴러다녔다.

쌍둥이들에게 시골생활은 찰떡같이 잘 맞았고 이곳은 늘 새로움과 호기심을 선사했다.




봄이면 집에 오는 길목, 꽃과 나무가 있는 마당에서 꿀벌들을 마주하곤 했다.

쌍둥이들은 벌들이 친구라며 손가락에 앉혀 만지곤 했는데

그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물린다며 제발 만지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그녀들은 벌들이 귀엽다며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둥이 중 한 명이 벌침에 쏘였는데 기함을 하며 놀라 울었다.

물론, 이후로는 꿀벌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우리 집은 나즈막한 산등성이 언덕에 지어졌다.

집 뒤편에는 소나무로 둘러싸인 오솔길이 있는데 이 길은 눈이 오면 우리 가족의 프라이빗 눈썰매장으로 바뀐다. 비탈이 꽤 높은 편이라 어른이 썰매를 타도 시원한 청량감 같은 재미를 선사해 준다.

신이 난 아이들은 돌고래 소리를 내며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논다. 제대로 된 눈썰매도 아니었다. 급한 대로 쌀 포대로, 박스로, 서핑보드로 스릴을 만끽했다.



눈이 와서 눈썰매를 타던 시기, 지인 가족이 온 적이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썰매를 타는 모습을 보고는 그녀들의 대담함과 시골 스케일에 놀라움을 표했다.

(겸사가 급해 함께 타고 놀지는 못했다….^^;)

참고로, 쌍둥이들의 공식적인 학교 별명은 ‘날다람쥐’들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쌍둥이 중 한 명이 학교 정글 짐에서 놀다가 엄지손가락을 부딪혔다며 아프다고 했다.

육안상으로는 큰 부기도 없었고 움직임도 괜찮았기에 타박상이라 생각했다.

연고를 발라주고 하루를 지켜보았다.

다음날, 아이가

“엄마, 병원에 가봐요~.손이 아파요~.”한다.

아이가 괜찮다는 확답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아 하교하고 정형외과로 향했다.

양양 읍내 오래된 건물 2층에 있는 우리 가족의 단골 정형외과는

예스러움이 느껴지는 전형적인 시골 병원이다.

시설은 오래됐지만 의사선생님이 세심하게 잘 봐주시고 특히 아이들을 예뻐하시는 게 느껴져 

정형외과에 갈 일이 있을 때는 으레 이곳으로 오곤 한다.


“제가 볼 때는 괜찮은 것 같은데 아이가 괜찮은지 확인을 받고 싶어 해서 왔어요”

“아이가 먼저 와보자고 했나요?”

“네…”

선생님은 아이에게 다쳤을 때 상황을 상세히 물어본 후, 엑스레이를 찍어보자 했다.

결과가 나오고

“어머니, 아이가 먼저 가보자고 한 건 아파서 그런 겁니다. 손가락이 부러졌어요.”


사진을 보니 엄지손가락 끝부분, 뼈가 조금 떨어져 있었다.

순간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의사선생님은 한마디 덧붙이셨다.

“00야,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00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해. 아프다고 하는데 병원도 안 데려간다~”

의사선생님의 그 말이,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나를 질책하는 것 같아 얼굴이 벌게졌다.




그렇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의사선생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다. 진료를 잘 봐주시는 건 물론이고,

 다치거나 뭔가 특별히 아프거나 하지 않으면 진료비도 받지 않으시고

 아이들에게 언제나 웃으시며 다정다감하게 대해주신다.

아이들에게 의사선생님 자신을 칭할 때 “아저씨”라 하고

 우리 쌍둥이들에게 “아가씨” “공주님”이라 부르시는 마음 좋은 시골의사 선생님.

악의가 전혀 없는 그 선생님 눈에는 내가 정말 무심한 엄마로 보였을게다.



아들은 여기저기 잘 부러지고 다쳐온다 해도 딸들이 그러하기는 쉽지 않은데 우리 아이들은 벌써 3번째이다.

현재 엄지손가락이 부러진 아이는 지난여름 발가락뼈가 부러져 여름 내내 깁스를 하고 다녔다.

다른 한 아이는 작년 씽씽카를 타다가 넘어지면서 새끼손가락이 부러져

 몇 주간 손가락에 깁스를 하고 다니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이날도 부러졌다고 생각을 못 해서 하루가 지나고 병원에 갔었다.

하지만 이때는 건드리기만 해도 아프다 했고 더 많이 부어있었기에 

그때와 비교해서 이번에는 부러졌다고까지는 생각을 못 했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생각해도 참 무딘 엄마다. 이러니 의사선생님이 의심의 눈초리를 내게 보냈지.

큰아이 한 명만 있었을 때는 바로바로 병원행이었는데

아이가 여럿이고 시골에 살다 보니 심하지 않으면 (보통의 경우 심하진 않다ㅠ)

 지켜보다 병원에 데려가게 된다.


좀 더 재빠르고 아이에게 민감한 엄마가 되어야 할까?

그저 이런 상황의 부끄러움은 나의 몫일까?

나의 성향인 걸까, 다자녀 엄마라 그런 걸까?

.

.

.

이런 순간순간들을 겪으며 세월은 가고 아이들은 큰다.

아이들과 함께 나도 진정한 ‘마음 깊이가 큰 한 사람’으로서 조금씩 성장함을 느끼지만 

엄마라는 자리는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님을, 지나온 시간이 말해준다.



얼마 전 마친 달담 독서토론에서 경희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엄마”임에 큰 행복을 느끼고, 아이들 키워내는 건 정말 위대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살면서 가장 잘한 게 엄마가 된 일이라고.

간혹 아이에게 민감한 엄마가 되지 못함에 부끄러움이 들 때도 있었지만

 아이에게 늘 최선을 다하는 나였음을, 지금도 그러함을,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알고 있다.

나는 오늘도 그 위대한 길을 걷노라며 나의 하루를 위안한다.


#블로그에 먼저 발행하고 추후 옮겨왔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시골 작은 학교, 이대로 좋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