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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아빠 Apr 30. 2024

#10. 말할 수 없는 이유

너는 왜 그렇게 잘못된 선택을 하니?

나에게는 어디에서든지 잘 지낼 수 있는 특별한 생존 전략이 있다. 내가 선택한 생존 전략은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눈에 띄지 않으니 미움받을 이유도 없고, 관심받다가 실망할 이유도 없다. 이 전략 하나로 나는 생존해 왔다. 이런 전략에도 반드시 치러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약간의 외로움과 침묵. 그것만 지켜진다면 이 전략은 어디에서든지 누구를 만나던지 먹히는 전략이다. 누구는 멍청하다고 했고 누구는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어떤 누구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난 이 전략을 계속 실천할 것이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 


중학교 3학년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 나는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가고 싶은 학교를 골라야 했다. 당시에는 원하는 학교 세 곳을 적어냈고 그중에 한 곳으로 가는 제도가 있었다. 나를 비롯한 모든 학생들이 가고 싶은 고등학교를 적어 냈고 선생님과 1:1 면담을 했다. 번호 순서대로 우리는 선생님과 약 10분가량의 개인면담을 했다. 내 순서가 왔다. 선생님은 내가 써낸 세 곳의 고등학교가 적힌 종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 정말 공부할 생각이 있니? 너 여기 써낸 학교들 보니까 놀기만 하려는 것 같은데..."


선생님의 첫마디에 나는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그냥 진짜 내가 가고 싶은 학교를 적어서 냈을 뿐인데 내가 잘못했다는 식의 말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리고 선생님의 말은 계속됐다.


"자~봐봐. 네가 지금 적어낸 학교들 모두 남녀공학이잖아. 공부 포기하겠다는 거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남녀공학인지 몰랐다. 남녀공학인 학교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설령 남녀공학이라도 왜 가면 안 된다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선생님은 새로운 종이를 꺼낸 뒤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세 곳의 학교를 다시 적었다. 그리고 나한테 이중에 한 곳을 가라고 하셨다. 


'이럴 거면 왜 가고 싶은 학교를 적어내라고 한 거지? 그냥 선생님이 써서 내면 되는 거 아닌가?'


정말 물어보고 싶었다.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공부하려면 자신이 정해준 학교에 가면 된다고? 만약 내가 그 학교에 가서 공부를 못하면 선생님이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있을까? 정말 나를 아껴서 그런 결정을 한 건가?'


선생님은 내 얘기를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었다. 단지 내가 써낸 학교들이 공부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내 의심에는 변함이 없다. 짧은 면담 아니 갑작스러운 통보가 끝나고 나는 교실에 돌아왔다.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 책임은 내가 짊어지고 선택은 다른 사람이 하는 이 상황에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면서 도저히 화를 멈출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해 부모님께 오늘 일을 말씀드렸고 부모님의 말에 나는 더 화가 났다.


"그래! 잘했네! 선생님 말 들어야지! 어련히 알아서 너를 위해서 그러셨겠지? 선생님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신 거야!"


이유를 말해줬다면 화가 나지 않았을 것 같다.


"이제 성적이 오르고 있고, 이 학교는 이런 이런 점이 좋아서 네가 공부하기에 좋은 곳이야.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떠니?"


최소한 한 번쯤은 이렇게 물어봐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남이 내 신분증으로 대출해서 사기를 치고 나는 그 빚을 갚아야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누구에게도 내 생각과 내 선택을 잘 들어내지 않게 되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나에게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도록 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나 내 선택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기만 했다. 그건 조언이 아니었다. 아주 심각한 강요이고 폭력이다. 물론 그들의 선택을 따라갔던 건 나였지만 이제 더 이상 그들이 조종하는 데로 살기 싫었다. 


결국 난 더 소심한 그림자 같은 아이가 되었고 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너는 뭘 좋아하니?", "내가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 한번 해봐!", "그거 멋진데!"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본 적이 없다. 내 주변에 어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저 "그거 아니야!", "내가 하는 말 들어!", "한심하다! 한심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하는 말과 반대로 살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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