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엔 날아가는 비행기도 영어 듣기 시간 35분간 대한민국 전역에서 이륙도 착륙도 안된다고 한다. 늦잠을 잤는지 차가 사고가 났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험표를 보여주면 경찰관이 사이렌을 울리며 학교까지 긴급호송을 해주는 장면도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대한민국 교육에 대해서 반대하는 말들도 많고 해외의 사례들을 언급하며 비교하기도 하는데 관련산업의 시장규모가 어마어마하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함부로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사진관 역시 '수능사진'이라는 관련산업에 해당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입학시즌에 증명사진이 사진관의 대목이듯 11월 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한 원서접수기간인 8월이면 사진관이 또 한 번 대목이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각 학교에 졸업앨범을 촬영해 주는 업체(그들도 또한 대부분의 사진관들이 계약을 따내고 있다)가 타업체와의 경쟁상품으로 졸업앨범을 촬영하면서 수능사진까지 함께 촬영해 제공하거나 약간의 추가비용을 받고 촬영해주곤 한다.
결국 그로 인해 수능사진을 찍으러 오는 손님은 정해져 있다.
재수생이다.
수능사진 규정에 최근 6개월 이내에 촬영된 사진이라고 되어있기에 사진촬영날짜가 찍혀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3 졸업앨범 촬영할 때 교복 입고 찍은 사진을 재수하는 학생이 졸업 후 다시 교복을 입고 찍는 경우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어서 (우기면 해주려나?) 무튼 재수생들은 작년에 사용한 교복 입은 수능사진대신 새로 촬영한다.
그리고 스포츠 선수들이 징크스에 예민하듯 작년에 수능시험을 망쳤는데 올해 시험을 보면서 작년에 사용한 사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예민한 사람도 분명 있을 것 같다.
딸랑~
"어서 오세요. 온정동사진관입니다. 어떤 사진이 필요하세요?"
"수능사진이요."
"네, 이쪽 거울 보시고 준비하고 계시면 바로 촬영해드릴게요"
수능규격 = 여권사진규정에 맞춰서 사진을 촬영 후 보정작업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보정은 규격에 맞는 사이즈 작업이나 약간의 잡티정도의 기본베이스 보정이라고 보면 된다. 원칙적으로는 배경을 지우는 보정이라던지, 얼굴의 골격을 변형하는 보정작업이나 필터링 작업은 안된다고 되어있다. 사진보정을 과하게 하는 사진관들은 제발 '증명' 사진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맞게끔 '적당히'들 좀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제나 그렇듯 보정작업을 하는 동안 손님과 나누는 이야기들이 다양하지만 수능사진을 찍을 때만큼은 대부분 비슷한 레퍼토리의 이야기를 한다. 과거에 내가 겪은 수능이야기.
특수고등학교여서 제대로 된 교육과정이 없었기에 첫해는 수능을 망쳤고, 알바를 하며 재수를 했지만 열심히 하지 않았고
결국 삼수의 선택을 했는데 삼수 끝에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가 나왔다. 사진을 전공하고 싶었기에 예체능계열로 시험을 치렀고 계열 상위 3프로라는 높은 성적을 받고, 고등학교의 특성상 내신측정이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수능시험의 성적에 따라 내신등급을 정해준다고 했다. 상위 4%까지가 1등급이었기에 내신또한 매우 높게 측정되어서 내가 원했던 중*대 사진학과 특별전형접수가 상위 9% 까지였고 내 점수면 무조건 합격인상황, 졸업한 고등학교를 찾아사 수능성적표를 보여드리며 특별전형신청서를 받아 들고 접수처로 향했다....
여기까지가 손님께 이야기드리는 내용이다.
(뒷이야기는 이글의 말미에 추가한다)
그러면서 나의 수능대박의 기운을 이 사진에 담아 촬영과보정을 통해 완성했노라 의미부여를 하고는 고객께 건네드린다.
"이번 시험 꼭 대박 나세요~"
수능이란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것이 물론 가장 중요하겠지만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모든 컨디션과 마인드 컨트롤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작은 에피소드와 응원이 조금의 긴장을 풀어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수능전날 밤 11시 30분
막 잠을 자려고 하는 찰나에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온정동사진관이죠?"
1시간 전 밤 10시 30분
수능시험을 하루 앞두고 그동안 정리해 온 노트를 훑어본 뒤 마무리한다. 내일의 컨디션이 중요한 만큼 빨리 잠을 자야겠다. 검색창에 수능준비물을 검색 후 가방에 미리 넣어놓...... 아야 하는데
뒤적뒤적
두리번두리번
??
1번 준비물 수능수험표가 보이지 않는다.
엥? 내가 분명 가방 안쪽 포켓에 넣어둔 것 같았는데 왜 없지?
방안구석구석을 쥐 잡듯이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어.. 엄마! 큰일 났어!! 수험표가 안 보여..."
밤 11시 15분
"더 이상 찾지 마 수험표 분실해도 당일에 재교부해준데 사진 1장이랑 신분증 챙기면 된데, 사진 있지?"
"사진? 무슨 사진?"
"수험표에 있는 그 사진"
"사진은 없고 파일만 메일로 받았는데?"
엄마는 당황한듯 잠시 멈췄지만 머릿속은 빠르게 생각중인듯하다.
"일단 빨리 옷 갈아입어. 엄마랑 사진관으로 가자"
밤 11시 30분
"여보세요? 온정동사진관이죠?"
"네,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시죠?"
"네?! 수험표를 분실했다고요? 내일이 수능인데요?"
통화를 하며 사진관의 cctv를 확인해 보니 가게 앞에서 통화하고 있는 엄마와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 사진파일이 있으시다고요? 그러시면 제가 비밀번호를 알려드릴 테니까 일단 사진관 안으로 들어가세요
000000* (덕분에 2년 된 사진관 비번을 변경할 수 있었다.) 누르시면 됩니다.
아이고 어쩌다가.. 제가 해결가능하니까요. 너무 걱정 마세요.
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몇 가지 작업을 해야 해서요. 아드님 좀 바꿔주세요."
아무래도 엄마보다는 아들이 컴퓨터를 잘 다룰 거라 생각해 아들을 바꿔달라고 하고 컴퓨터를 켜달라고 했다.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수험생의 놀란마음을 진정시켜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많이 놀랐겠어요. 바로 출력가능하니까 안심해요. 켜졌으면 바탕화면 메뉴 중에 0000이란 프로그램을 실행해 주세요."
나도 거실로 나와 노트북을 켜고 원격제어 프로그램을 실행하며 통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사진관의 컴퓨터와 노트북을 연결시킨 뒤
학생에게 메일로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고
사진관 컴퓨터에 연결된 노트북으로 포토샵을 실행하고 메일함에서 사진파일을 불러와 수능사진규격에 맞는 사진사이즈로 확인한다.
"자 이제 컴퓨터 옆에 프린터기 전원버튼을 눌러주세요. 그리고 뒤에 용지함에 선반 위에 있는 사진용지를 넣어주면 바로 출력해 줄게요"
'인쇄' 버튼을 누르자 전화기 너머 사진관 프린터 작동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엄마 좀 바꿔달라고 했다.
"네 어머님 사진 바로 나오니까요. 가져가시면 됩니다. 제가 있으면 잘라드리는데 그건 어머님께 맡길게요.^^
그리고 놀랐을 텐데 우리 수험생 빨리 잠잘 수 있도록 해주세요."
"사장님 너무 감사합니다. 사진가격은 얼마죠?"
"아니에요 어머님 돈은 안 주셔도 돼요. 괜찮으니까요. 빨리 들어가세요."
"아니 그래도...."
"자 그럼 컴퓨터 제가 종료하겠습니다. 들어가세요 나가실 때 문만 잘 잠겼는지 체크해 주세요~
수능파이팅입니다."
학생도 놀랐겠지만 엄마도 얼마나 놀랐을까 수능이 어디 학생만의 시험이랴 시험시간 내내 정문 앞에서 정성스레 기도하는 우리 엄마들의 모습을 뉴스로 볼 때면 자식 잘되길 바라는 우리네 엄마아빠의 마음이 뜨겁게 느껴진다.
수능당일
오늘도 평소보다 추웠다.
날씨도 수험생들을 응원해 주는 건지 졸지 말라고 추워지는지 혹은 앞으로 수능 이후 더욱 차디찬 인생의 길들이 펼쳐지는 것을 암시라도 하듯 찬바람을 불어주는 건지 이것저것 의미부여를 해본다.
아침뉴스엔 여전히 경찰차를 타고 시험시간 임박해서 시험장에 들어가는 학생의 모습이 뉴스에 나왔다. 시험 잘 보라며 선배들을 응원하는 후배들의 모습과 정문에 엿을 붙이고 기도를 하는 엄마들의 모습까지..
딸랑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cctv속 엄마와 아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지금쯤 아들은 시험을 잘 치고 있겠지? 생각해 봤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려고 하는데 키보드 앞에 5만 원권 한 장과 메모지가 있었다.
감사하다며 어머니가 놓고 가셨다.
잠시 그 돈과 메모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그 돈은 단순한 5만 원의 가치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받지 않겠다고 말씀드렸기에 그 돈의 소유는 내가 아니기도 하다.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그 돈은 내가 갖기보다는 더 필요한 곳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맞다.
네이버 해피빈의 기부를 통해 따뜻한 마음이 필요한 곳으로 흘려보냈다.
ps,
중*대 사진학과 접수처까지 도착했던 나는 과연
그 후에 어떻게 되었냐고?
그 원서를 창구에 접수만 하면 당연히 합격하는 상황이었고 (내신까지 감안하면 장학금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게 탄탄하지만은 않았다. 사진과 함께 영화도 좋아했던 나는 재수시절 지역의 극단에 들어가 연극배우로의 도전을 했고, 그해겨울 춥고 배고팠던 지하실 연극연습실의 기억은 나로 하여금 가난한 배우가 되기보다는 부유한 스타가 되고 싶다는 환상에 빠져들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속에 숨어있던 작은 갈망은 중*대 사진학과 접수처 맞은편으로 보이는 연극과 접수처를 보는 순간 봉인이 풀린 듯 솟아 나와 특별전형추천서의 학과를 '연극과'로 수정해 접수하게 된다.
그리고 유명한 중견배우교수님의 심사하에 실기시험을 매우 긴장하고 치르고 나와서 시원하게 낙방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