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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광열 Apr 27. 2024

닭똥

따뜻한 사진관 _ 열네 번째

딸랑~


얼굴이 검게 탄 40대.....인 줄 알았던 30대 초반의 남자손님이 사진관에 들어왔다.

이력서에 넣을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관상을 통해서 그 사람의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조차도 지금 이 순간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비친 이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남자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

그것도 아주 단기간에 많이...


찰칵~

표정의 변화가 없다.


"즐거운 생각을 해보셔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지실 거예요. 그리고 눈에 힘을 살짝만 주시면~"


역시 변화가 없다.


남자는 지금 아주 무거운 삶의 무게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어 보였다. 방법이 없다. 그냥 찍는다.

찰칵~


"자 이쪽으로 앉으세요. 바로 모니터 보시면서 보정해 드릴게요."


모니터에 촬영된 사진을 띄우자, 본인의 얼굴을 마주한 손님은 뭔가 내적인 동요를 느끼는 듯했다.

"네 뭐 괜찮습니다. 보정으로 미소와 표정도 다 만들어 드리는 시대니까요"

피부가 밝아지고 표정이 화사해지는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손님도 기분이 좀 풀리는 듯 보였다.

그리고 묻지도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남자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아버지보다는 엄마를 닮은 그는 성향도 엄마를 닮았다. 한때 배우의 꿈을 꾸었던 엄마의 피를 이어받은 남자는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았다. 어린 시절 엄마가 불러주는 노래가 좋았고 여러 악기들을 통해서 음악을 연주하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이러한 예술적인 행동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였다.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는 그런 아내와 아들의 행위가 못마땅했고, 그 시절 연애도 없이 아이먼저 생겨 결혼한 부부는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는 일 투성이에 남편은 술에 취하면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엄마는 결국 어린 아들과 함께 하지 못한 채 이들을 떠났고 남은 아들은 아픔 속에 성장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와의 여러 가지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 없이 자란 남자는 늘 외로웠고 음악과 악기만이 그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색소폰 연주를 잘하는 남자는 교습소를 차리고 싶었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건 노동과 저축이 아닌, 부유한 아버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아버지가 내건 제안은 시골의 지인 농장으로 내려가 3년간 닭똥을 치우면 돈을 주겠다고 했단다. 호기롭게 시골로 내려갔던 남자는 6개월도 못 버티고 그곳에서 탈출했다.




친구의 권유로 밴드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이력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는데 업소나 지역행사를 다니는 밴드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음악이 하고 싶었다고...


사진이 보정되는 그 사이에 남자는 많은 이야기를 꺼냈다. 힘들었고 외로웠구나 생각이 들었다. 처음 들어와 사진을 찍을 때보다 한결 표정이 밝아져 보였다. 차라리 지금 다시 사진을 찍으면 보정해서 만든 표정보다 더 환한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다시 또 더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점심시간이 많이 지나고 있어서 그랬을까.


보정을 마치고 출력해 사진을 봉투에 담아 손님에게 건넨다.

완성된 사진을 잠시 바라보고는 미소를 띤다. 종이봉투에 담고는 계산하고 사진관을 나가며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조만간 또 오겠노라며 돌아갔다.


남자가 떠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린 시절 나도 저 친구만큼이나 외로웠었다. 마찬가지로 국민학교 때 어느 날 뿅 하고 엄마가 사라졌고 새엄마, 중학교입학과 전학,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 등 많은 변화를 받아들이기엔 어린 나이였다.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내 옆에는 뭐가 있었을까 떠올려본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다. 악기와 함께 했던 그 손님이 조금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색소폰을 부는 남자 손님이 다시 사진관을 찾았다.

손님의 이름은 용식, 며칠 전 반명함 사진을 찍을 때와는 많이 달라져 보였다. 패션도 컬러풀하게 세련되어 보였고 무엇보다 표정에 생기가 돌아보였다. 어깨에 둘러맨 큼직한 가방이 눈에 띄었는데 의자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꺼낸 것은 색소폰이었다. 프로필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한다. 얼마 전 이력서 제출한 밴드와 함께 음악활동을 하게 되었고 멤버 소개에 넣을 프로필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촬영을 위해 조명을 세팅하고 있을 때

용식은 거울을 보며 색소폰을 들고 이렇게 저렇게 포즈를 잡아보면서 표정도 체크하고 있었다. 사뭇 진지한 그의 표정이 역시 제물 만난 물고기 같아 보였다.

촬영은 순조로웠고 좋은 포즈의 사진이 많이 나왔다.


사진으로 출력하고 파일로도 보내주었고 추가로 아크릴액자제작까지 주문해 주었다.

사진관을 나서는 용식 씨를 보면서 앞으로 왕성한 활동을 기원하며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

.

.

.

그의 음악활동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닭장에서의 탈출과 업소에서의 활동이 아버지의 귀에 들어갔고

어떤 상황과 이야기가 오갔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용식은 음악활동을 접었다.

그리고 맞선을 보았다고 한다.



딸랑~

어서 오세요 온정동사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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