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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광열 May 05. 2024

2년은 너무 길다.

따뜻한 사진관 _ 열다섯 번째

사진관 건물 1층에는 6개의 매장이 들어서있다.

떡집, 사진관, 네일숍, 김밥집, 바비큐, 부동산

그리고 2층은 원룸, 3층엔 투룸과 건물주가 살고 있다.


2002년 건물이 지어졌을 때부터 줄곧 자리를 지키고 있는 떡집 사진관 부동산을 제외하고 나머지 가게들은 2년을 버티지 못하고 교체되곤 했다. 내가 사진관을 시작한 이후에도 네일숍은 미용실이 되었다가 족발집이 되기도 하고 한동안 비워져 있다가 지금은 애견미용실이 되었다.

김밥집은 이후에 떡볶이집이 되었다. 이곳에 떡볶이집이 들어올 때 나는 또 한 명의 상권분석에 실패한 자영업자가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어오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측은 빗나갔고  떡볶이집은 이후 동네를 넘어 지역에서 꽤나 유명한 분식집이 되었다.

바비큐는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2년 후 핫도그가 되었다가 또 2년 후 고로케가 되고 이후 네일숍이 된다.


하루는 24시간, 10시에 오픈해 저녁 8시에 퇴근할 때까지 출퇴근시간을 포함하면 12시간에서 8시간의 수면시간을 빼면 3~4시간 정도  등하교시간 학원시간등 엇갈린 시간들을 빼면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한두 시간, 그에 반해 출근해서 일하는 동안 틈틈이 옆가게 사장님들과 인사하고 얼굴 보고 수다 나누는 시간들이 더 많을 것 같다. 


사진관을 오픈하고 1년이 봄날 네일숍을 운영하던 두 자매 사장님은 각자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났고 그 자리에 미용실이 들어오게 되었다. 모든 상가는 뒷문을 통해 나가 공동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화장실을 가려고 문을 열었더니 옆가게의 미용실을 준비하는 사장님 부부가 뒷문을 열고 왔다 갔다 분주한 모습이었다. 보아하니 인테리어를 따로 하지 않고 셀프로 하려는 듯 보였다. 기존 네일숍이 나가면서 원상 복구해 놓은 매장의 여기저기를 줄자로 재고 높은 곳의 전기선을 체크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옆에 사진관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아저씨는 반갑게 인사해 주었고 아줌마는 못 들었는지 아니면 집중하고 있는지 등 돌린 채 뭔가를 메모하고 있었다. 

"인테리어를 직접 하시나 봐요?" 

"네... 전에 하던 거 그대로 옮겨오고 따로 인테리어를 하진 않으려고요"

그 정도만 인사하고 방해가 되지 않게 빠지려는데 높은 곳의 잔여 벽지를 까치발로 떼고 있는 아저씨에게 

"사진관에 사다리가 있는데 빌려드릴까요?"

마침 잘되었다는 반가운 얼굴로 사다리를 받아가셨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사다리는 흰색 페인트가 덕지덕지 묻은 채로 사진관으로 돌아왔다. 

잘 썼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리고 그 사건은 앞으로 펼쳐질 어둠의 터널로의 진입을 위한 안내표지와도 같았다.






셀프인테리어를 한 미용실은 따로 개업식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러했기에 어렵게 어렵게 미용실의 이전을 하신 것이구나 생각했다. 오픈 이후에는 아저씨는 가게에 거의 나오지 않았고 아줌마가 혼자 운영하는 미용실이었다. 아줌마는 이웃들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성격이 조용한 요즘으로 말하면 E와 I 중에서 극 I에 속하는 사람 같았다. 심지어 아침에 출근하면서 뒷문으로 들어올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면 떡볶이집 사장님과 할머니가 뒤편에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재료손질을 주로 하고 있으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출근을 한다. 

하루는 미용실 아줌마가 빨래건조대를 펼쳐놓고 수건을 널고 있었고 그 옆으로 지나 사진관 뒷문으로 들어가려고 지나가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한건 아니지만 단둘이 있는 가게 뒷마당에 바로 옆으로 지나가면서 인사를 건넨 내가 무안해질 정도였다. 원래 성격이 그러하다면 그게 문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손님들을 바로 응대하는 자영업 사장님으로는 인사는 기본 중의 기본일 텐데 조금 아쉬웠다.  

'설마 가게에서도 손님들에게 저렇게 무뚝뚝하게 대하시나?' 

떡집 남자사장님도 무뚝뚝 하지만 인사는 잘 받아주는데 미용실사장님은 좀 아쉬웠다. 


그리고 얼마 후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사진관의 뒤쪽에 화장실이 붙어있었고 사진관 보다 폭이 좁았기에 그로 인해 사진관의 뒷문은 사진관 우측 끝에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미용실의 뒷문은 좌측 끝에 있었다.

화장실을 가려고 사진관 뒷문을 열었더니 웬 기둥과 벽체가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뭔가 표시가 되어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자재들과 표시를 둘러보니 미용실의 뒷공간에 가벽을 세워서 추가공간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옆쪽 떡볶이집이나 핫도그가게 부동산도 뒷문으로 나오면 작은 짐들을 정리할 수 있는 작은 창고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하지만 그쪽은 출입문이 서로 붙어있지 않았고 이웃에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순간 심각해졌다. 여름엔 환기를 위해 주로 뒷문을 열어두기도 하고 손님들이 화장실을 물어볼 때 뒷문으로 나가면 좌측의 화장실을 안내했는데, 미용실이 그곳에 창고를 만들면 사진관 뒷문을 열면 햇빛을 가리는 어둡고 좁은 골목이 나오게 되고 그걸 지나야 비로소 화장실에 다다를 수 있다. 

나는 바로 사장님을 불러 바닥에 표시된 대로 이곳에 창고를 만들 건지 확인했다. 

무뚝뚝한 미용실아줌마는 그렇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면서 무슨 문제 있냐고 따져 물었다. 


나는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드렸다. 사진관 뒷문을 열었을 때 햇빛이 전혀 안 들게 되고

그쪽으로 이동할 때 폭이 너무 좁게 된다고 설명했다. 몇 시간 후 미용실 아저씨가 오셨고 그들은 나의 이의제기를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결국 창고는 만들기로 했고 사진관 후문 쪽에 빛을 가리는 걸 최소화하도록 앞뒤 폭을 조금 줄이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약간의 불편함은 서로 간의 나아갈 길을 생각하면서 조금씩 참고 견뎠다. 뒷문을 열고 약간 좁아진 채로 이동하는 것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무렵

사진관에서 촬영 후 손님과 함께 앉아 보정작업을 하려는데 뒷문 쪽에서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손님과의 의사소통에 불편함은 있었지만 잘 작업을 마치고 사진을 전달해 주고 뒷문 쪽으로 아이들의 소리가 나는 쪽으로 뒷문을 열고 나갔다.  초등학생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뒷마당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 둘은 분위기를 읽었는지 점차 조용해지면서 사진관 옆의 미용실 창고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랬다. 미용실 아주머니의 아들 딸이었다. 미용실의 창고는 사실상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온 아이들을 집에 둘 수 없기에 미용실 뒤편에 공간을 만들어 아이들이 들어가서 쉬거나 공부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사정이니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다. 

참았다. 아이들을 조용히 시켜달라는 말조차도 잔소리로 들릴 것 같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사진관건물이 약간의 경사가 있는지 앞문으로 들어가면 경사가 없는데 뒷문으로 나올 때는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그리고 천정의 높이가 많이 높다. 사다리를 이용해 1.5층 창고를 쓰고 있을 정도로 (그래서 사다리를 미용실에 빌려줬었다.)  정문쪽천정이 낮고 그 위를 창고로 쓰고 있고 후문쪽공간은 높은 천장을 그대로 쓰면서 조명을 천정에 고정해 놓았다. 좁은 사진관이지만 공간활용이 잘 되어있었다. 

그날도 증명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조명을 끄려고 시선을 들었는데 천정에 연기가 뭉게뭉게 모여있었다. 그 연기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조금 전부터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그리고 천정의 연기가 고여있는 걸 보게 된 것이다. 바로 냄새가 나고 있는 사진관 뒷문을 열었다. 바로 옆 창고 안에서 고기 굽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내가 문을 열자 문틈으로 스며들었던 연기가 본격적으로 사진관 안으로 흘러들어왔고 층고가 높은 사진관 천정에 연기가 점차 쌓이고 있었다. 


바로 미용실 아주머니를 불렀다. 그리고 상황을 전달했다. 아줌마는 나의 이의제기에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미안하다거나 생각 못했다는 등의 상대방 감정배려한 대답은 기대할 수 없었다. 어쨌든 나에게 벌어진 상황을 전달했으니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하고 사진관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정확히 이틀 후 미용실은 또다시 창고에서 고기를 구웠다. 

그리고 사진관 안으로 똑같은 연기들이 닫아둔 문틈으로 스며들어 천정에 고이게 되었다. 


나는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큰소리치면 해결해 준다'는 말을 싫어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큰소리로 눈에 불을 켜고 따지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참 싫다. 그런데 반대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이상하게 조용히 말하면 그냥 무시당하는 경우가 있다. 내 목소리가 작아서 그런 건가? 그렇게 생각도 해보게 된다. 


분명히 이틀 전에 창고에서 고기를 구운 것에 따른 사진관의 피해를 전달했는데 이렇게 또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이웃의 불편함 따위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만 생각한다.

두 번째는 문제제기를 했던 기억을 잊었다. 선택적 기억상실이거나 듣고 싶지 않은 말은 입력자체를 안 한다거나 이 두 가지 말고는 뭐라고 해석할 수가 없었다. 


다시 뒷문을 열고 열려있는 미용실 창고를 통해 매장 안의 사장님을 불렀다.

그리고 동일한 컴플레인을 전달했다. 분명 이틀 전에 말씀을 드렸는데 왜 또 이렇게 고기를 구우시는 거냐?

그러자 그동안 조용했던,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도 않던, 미용실 여사장님은 내 가게에서 내가 굽는 데 뭔 상관이냐를 시전 하며 적반하장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한숨이 나왔다. 


"이곳에 창고를 설치한 것부터가 무허가 시설입니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고기를 굽는 것 또한 화재의 위험이 있는 위험한 행위이고요. 그로 인해서 피해를 말씀드렸는데도 지속적으로 이렇게 나오시면 저도 더 이상 말로 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를 받아주는 응대는 짧고 명료했다. 

"맘대로 하세요"


안 맞아도 너~~ 무 안 맞았다. 문제는 이제 막 오픈한 가게라는 점이다. 계약은 최소 2년을 했을 테고 장사가 잘되면 더 연장할 텐데. 답답한 마음을 떡볶이사장님께 풀었다. 이럴 땐 맵고 달달한 컵뽁이가 명약이다. 

처음 사다리를 빌려주었다가 페인트 묻은 채로 돌려받은 일, 창고를 만든다며 사진관의 뒷문 출입구를 좁게 막아버리려 했던 점, 그리고 이번의 삼겹살 연기사건까지 나의 고충을 들어주고 반응해 주는 건 떡볶이 사장님이었다. 그렇게 속풀이를 하고 떡볶이를 먹고 나니 좀 나아졌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전화가 올 때 대부분은 사진관에 일찍 찾아온 손님들이 내가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는 전화가 많다. 그날도 손님의 전화를 받고 건물 뒤편의 주차구역에 주차할 시간도 없이 가게 도로가에 세우고 서둘러 문을 열고 촬영을 해드린 적이 있다. 사진관 앞은 횡단보도가 있고 사진관과 미용실을 걸쳐서 그 앞에 차를 세우고 증명사진촬영하고 작업해서 출력까지 한 20여분 걸렸고 이후 차를 건물 뒤쪽 주차구역으로 옮긴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통의 우편물이 왔다. 주차 단속 통보였다. 딱 그날이었다. 바로 구청에 전화를 했다. 가게 앞이었고 평소에 주차 단속을 하는 시간대도 아니었고 딱 20분간 서있다가 옮겼다고 했는데 담당직원의 말인즉슨 민원의 요청에 의한 단속이었다고 한다. 

'민원의 요청?'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미용실사장님이었다. 


주차 단속 고지서를 들고 미용실로 갔다. 

"0월 0일 9시 반에 여기 가게 앞에 잠시 세웠던 제 차를 '주민신고'로 주차 단속을 나왔다고 하는데 사장님이 신고하신 건가요?"

법정에서 검사가 피고인을 압박질문을 할 때 피고인이 심적 부담을 느껴서 말실수를 하곤 한다. 갑툭튀 등장한 나의 구체적 행위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아니라고 말할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는지 무척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당황한 표정과는 반대로 진술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사장님이 아니면 이날 이 시간에 누가 신고합니까? 구청직원이 '가게 앞에 주차'했다고 연락 왔다고 하던데요"

(이건 내가 직원에게 들은 말은 아니고 순간적으로 찔러보기식 수사였다. 그러자..)

"그래 내가 했어요. 우리 가게 앞에 차를 댄 거 맞잖아요. 뭐 잘못되었어요?"

"사장님 같은 건물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끼리 이건 아니죠"


힘들게 하루를 장사하는 사람들

하루 중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한 건물 안에서 함께 보내는 사람들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고 하여 매우 가까운 이웃을 이웃사촌이라 부른다는데 

새로이 사온 이웃이 알고 보니 원수였다. 


사다리를 빌려주었다가 지저분하게 돌려받고, 매일아침 반응 없는 인사를 건넸다가 하루의 시작기분을 망치고, 화장실로 향하는 뒷공간을 좁게 만들고 햇빛을 막아버리고, 아이들의 소음과 삼겹살의 연기까지 새로 이사 온 지 한 달도 안 된 이웃에게 겪은 일들로 연일 신경이 쓰이는 와중에 주차로 인한 신고는 전쟁선포나 다름없었다. 제가 뭘 잘못했길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신고를 하려면 제가 해야죠? 건물뒤에 지어진 공간은 창고가 아닌 아이들 방이고 엄연한 무허가시설 아닌가요?"

"신고해요~"

대화도 통하지 않고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나오는 저런 무필터 대화는 상대방의 감정을 더 자극했다.. 

남의 가게에 들어가 오랜 시간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다른 손님들 보기에 좋지 않아 보여서 일단 자리를 피했다. 분한 감정을 혼자 삭히긴 힘들어 떡볶이사장님에게 찾아가 읍소했다. 떡볶이 사장님도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지만 그럼에도 모자란 공간은 가게 뒤에 앵글선반 하나 놓고 올려놓고 쓰고 있다. 이 정도는 인정해 줄 만하다. 



그 뒤로도 아이들의 소음과 취사행위는 근절되지 않았다. 

신고할 테면 신고해 보라는 도발까지 받은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신고를 할 수 없었다. 

6개의 가게 중 핫도그집이 뒤쪽에 창고를 만들어 사용 중이었다. 물론 미용실창고에 비하면 더 작은 크기였다. 

그리고 핫도그가게의 창고는 양옆의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았다. 말 그대로 창고의 용도 그대로였다. 

따라서 내가 미용실의 창고를 무허가시설로 신고할 경우 피해는 그대로 핫도그사장님에게도 미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물주사장님은 나 몰라라 니들끼리 잘해봐라로 피하곤 했다. 분명 건물주에게는 창고를 만든다고 이야기했을 것이고 내가 만약 건물주였다면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진관과는 타협해서 만들라고 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랬을 것 같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6명의 가게는 자영업자다. 초기자본을 투자하고 매달 월세를 내가며 봉사활 도을 하러 온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모든 자영업 자은 모두 자신의 이익추구가 최우선일 것이다. 오랜 시간 삼고초려 끝에 최종적으로 핫도그 사장님에게 찾아가 이야기했다. 

"신고를 해야겠습니다. 저희 가게의 손님을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찾았습니다. 핫도그 사장님도 피해를 입으실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핫도그 사장님은 모든 정황을 들어 알고 계셨기에 내심 서운한 마음은 있으시지만 나의 뜻을 그리고 나의 미안한 마음을 받아주셨다. 



그리고 얼마 후 미용실창고는 철거되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집이나 도서관 같은 아이들에게 더 좋은 장소는 있을 것이다. 물론 엄마가 곁에 있어주지 못하지만 대한민국의 많은 자영업자 맞벌이 부모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더 많은 방과 후돌봄시설들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미용실은 2년 후 족발집으로 바뀌었다. 

족발집 사장님은 인심 좋고 성격 좋은 사장님이었다. 

2년은 너무 길었다




p.s

주차위반 고지서에 이의신청 할 수 있다고 되어있었다. 우리처럼 1층 도로변 상가의 경우 가게로 짐을 싣고 옮길 때 부득이하게 가게 앞에 차를 세울 수밖에 없다. 그날 단속된 위치에 차를 세워 사진을 찍고 차량소유주와 사업자등록증 상의 대표이름과 주소를 확인할 수 있도록 첨부해서 구청에 제출했더니 며칠 후 주차단속통지를 취하한다는 연락이 왔다. 혹시라도 내 가게 앞에 잠시 주차했다가 단속에 걸리는 자영업 사장님 계시면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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