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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광열 Apr 20. 2024

할머니의 비빔밥

따뜻한 사진관  _ 열세 번째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다고 첫인상이 중요치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오씨아저씨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첫인상에서는 점수를 드리기 부담스럽다.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 험상궂은 외모와 조금은 괴팍한 성격 탓에 누구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가끔씩 처음 본 손님에게 생뚱맞은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손님들 역시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1층 상가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가게들은 더더욱 아저씨를 경계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래서인지 즘들어 부쩍 사진관에 오시는 횟수가 점점 잦아지는 것 같다.


처음엔 인화를 많이 해 가시니 나로서는 소중한 고객이시자,  이용해 주심에 감사했고,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준 이후로는 오씨아저씨도 눈치껏 잘 따라주셔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가지 후회로 남는 건 그때 사기꾼에게 집중하려고 아저씨를 문전박대(?) 한 것이다. 만약 아저씨가 들어와 럭비공 같은 질문을 헤대었다면 사기꾼도 멘탈붕괴로 힘들어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오씨아저씨의 단골가게가 된 온정동 사진관은 점점 아저씨의 방문이 잦아졌다. 요즘엔 사진주문보다는 마실의 공간으로 역할이 변경된 듯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달라진 것은 아저씨의 선물(?)이었다.

한 번은 조명이 가치대에서 달그락거리는 걸 확인하고 고정하려 했더니 육각렌찌가 필요했다. 사진관에서 자주 사용하는 공구가 아니다 보니 서랍여기저기를 얼어가며 찾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저씨는

"나사장, 뭐 찾아?"

"네, 육각렌찌가 어디 있나 찾고 있어요. 조명 좀 고정하려고요."

"잠깐만 있어봐.."

그러고는 문을 열고 나가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셨다.

잠시 후 돌아온 아저씨는 사용감이 있는 육각렌찌를 두 세트 가지고 오셨다.

"그거 여기 놓고 써"

"오~ 감사합니다. 하나만 있어도 되는데요."

"하나 여기 두고  하난 집에 가져가. 난 많아"


그 뒤로 아저씨는 사진관에 필요한 공구 잡화 소품등 장르불문 별의별 중고 아이템들을 가져다주셨다.

한 번은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외국 자동차 모형을 주시며 아들 가져다주라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아이들 취향이 아닌 어른을 위한 모형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어른들이 취미로 수집한다는 고가의 다이캐스트 모형 자동차였다. 문도 열리고 본넷과 트렁크도 열리고 그 안에 엔진룸까지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었다.

오토아트 다이캐스트 1/18 재규어 xj13

위 사진에 보이는 반대쪽 문이 없는 하자품이긴 했지만 나의 능력으로는 살 수 없는 장난감(?)이었다. 집에 가져가긴 헸지만 아들에게 건네주진 않았고 TV장 위에 전시해 두었다.


'아무리 봐도 오씨아저씨가 구입한 것 같진 않은데... 어디서 이런 걸 가져다주시는 걸까?'


그러던 어느 날

직장인들의 최대고민거리인 '오늘은 어떤 점심을 먹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오씨아저씨가 문을 열고 들어와

"나사장, 점심 안 먹었지?"

"네? 네네 아직.."

"오늘 점심은 나랑 같이 먹자고 따라 나와~"


가게문을 닫고 점심식사 중 팻말을 걸어놓고 아저씨를 따라갔다. 사진관 뒤편은 주택단지였다. 골목을 돌아 돌아 걸어가시더니 1층이 셔터가 내려져있는 상가주택에 다다랐다. 건물 입구 옆 철문을 열고 들어가신다. 따라 들어가니 1층 상가의 뒷문이 있었고 불 꺼진 안으로 들어가자 깜짝 놀랄만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담담하게 글로 썼지만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나는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을 안 들어간다.)



네*버지도로 실제 장소를 찾았다.

불 꺼진 실내는 정면은 셔터로 막아져 있었고 뒷문과 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으로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책상들이 깔려있었는데 그 위로 다양한 만물들이 펼쳐져 있었다. 뭐랄까 커다란 프리마켓에 참여한 것처럼 잡다한 물건들이 책상 위아래 벽장 등등에 놓여 있었다. 와중에 눈에 띄는 건 나름의 정돈이 되어있었다. 분류를 해놓은 것 같다. 뭐랄까 다이소의 중고버전이라고 하면 될까? 우산들, 공구들, 각종오디오, 비디오 장비들 모두 '들'이라 불릴 만큼 모여져 있었다. 여긴 어디고 이건 다 뭔지 궁금했지만 아저씨가 저쪽에서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해서 그쪽으로 갔다. 1층 상가를 임대했다면 2개~3개의 작은 점포가 될 듯한데 안쪽 공간으로 가니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

"비빔밥 두 개요~"

아저씨는 빈테이블에 앉으며 이미 정해져 있는 오늘의 메뉴를 주문했고 나는 맞은편에 앉으면서 할머니께 인사드렸다.


다양한 나물과 반숙 계란프라이가 얹어진 비빔밥이 나왔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더해서 비볐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서 그런지 비빔밥은 나에게 향수 어린 음식이었다. 그 시절 입맛 없을 땐 괜히 반찬 깨작이지말고 그냥 집에 있는 반찬 이것저것 넣고 계란프라이 하나 넣고 고추장에 참기름이든 들기름이든 넣고 대충 비벼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입맛 없을 땐 무조건 비빈다.


 할머니가 눈앞에서 만들어주셔서 그런지 더욱 정겨운 맛이었다. 매일 근처 식당에서 대충 혼자서 점심을 해결했는데, 오늘은 전혀 예상 못한 낮선장소에서 먹는 고향의 맛이었다. 그릇을 다 비울 때쯤 더 먹으라는 이야기가 어찌나 기쁘던지 덥석 그릇을 내밀며 감사를 전했다.

어른이 해주신 음식을 먹을 땐 그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최고의 답례라는 생각이 든다. 맛있게 두 그릇 뚝딱 해치우고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나왔다.




믹스커피를 먹겠냐는 아저씨의 물음에 커피는 사진관에서 마시겠다고 먼저 그곳을 나왔다.


'저곳이 집이신가? 할머니는 어떤 관계실까? 아저씨의 어머니 같지는 않고..'

궁금했지만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거니 생각했다.

요즘의 우리들은 누군가를 만나면 마치 호구조사라도 하듯 질문들이 많다. 그것이 상대방에 대해서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대답하기 곤란한 아픔일 수도 있다. 오씨아저씨도 아저씨의 삶의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고 때가 되면 하나씩 풀어주실 거라고 생각한다.


비빔밥으로 든든한 그날 오후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띵동~

어서 오세요. 온정동 사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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