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사진이 많아짐에 따라 휴대폰분실이나 기기오류로 사진을 날려버릴까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다. 보통 컴퓨터에 저장해 두거나 클라우드에 실시간 백업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핸드폰 속 사진을 인화해서 앨범에 정리해서 보관하는 사람들이 있다.
손에 잡히는 사진이 데이터(사진파일)와 실체(인화사진)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래서 과거의 필름시대를 경험한 세대에게는 여전히 핸드폰 속 사진들은 언젠가는 뽑아놔야 하는 밀린 숙제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사진에는 추억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사진관을 찾는 모든 손님들이 행복한 추억을 사진으로 인화하시는 건 아니다.
일반적이지 않는 기억에 남는 인화손님들을 떠올려보면.. 요즘은 앱으로 폰으로 찍은 사진을 바로바로 첨부하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리고 아직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직접 사진을 인화해서 서류와 함께 우편으로 접수하기도 한다. 보험회사에 제출용으로 사진을 인화하러 오셨다며 사진파일을 보내주신 손님. 나는 평소와 같이 아무 생각 없이 사진파일을 열었는데..
"으악~!!!"
GPT에게 절단된 손가락을 모자이크 처리해 달라고 했더니...ㅋㅋㅋ
화면 속에는 잘린 손가락과 피가 흥건한 모습의 사진이 나타났다. 피의 컬러는 사진이었지만 너무나 선명한 붉은색이었고 잘린 손가락은 에버랜드 귀신의 집 굿즈샵의 어설픈 소품이 아닌 진짜 리얼 손가락이었다.
내가 소리를 벌컥 지르자 아저씨 손님은 상황설명을 해주셨다. 작업 중에 사고를 당했고 다행히 봉합수술을 빠르게 잘 마쳐서 회복 중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이제 사진과 신청서류를 보험사에 제출하신다고...
좀비가 나오는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나 역시 워킹데드라는 미드를 좋아하는데, 느릿느릿 움직이며 사람들을 잡아먹으려는 좀비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장면이 그다지 잔혹해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컬러 때문이다.
워킹데드의 채도 빠진 화면은 잔혹함을 덜 느끼게 만들어준다.
영화 속 피는 전혀 피로 느껴지지 않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첫 시즌을 볼 때보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점점 무뎌지는 나를 발견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정말 진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항상 조심하자.
사랑과 전쟁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인화손님은 카톡이나 문자로 주고받은 내용을 인화하신 손님이었는데 대화를 인화한다는 건 그걸 기념하거나 추억하기보다는 거의 대부분이 법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용한다. 보험회사는 앱으로 전환하면서 편하게 첨부가 가능해졌지만 아직 법적인 부분에서는 많은 서류와 증거들을 일일이 인화하고 출력해서 제출한다고 한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아시는 분 댓글부탁드려요)
그래서 주고받은 대화를 일일이 캡처해서 사진으로 출력해 A4용지에 붙이시기도 한다.
대화의 내용이 잘 나오게 출력을 해드려야 하기에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이들의 대화를 볼 수밖에 없다.
아내분이 직접 찍은 사진을 출력하시면서 문자 내용도 캡처를 해서 인화한 손님이었는데,
사진은 모텔의 주차장이었다. 모텔 문에서 나오고 있는 남자와 여자를 촬영한 사진인데 아마도 촬영자는 아내분인 것 같았다. 몇 장의 사진을 유추해 볼 때 아내가 바람피우는 남편을 미행한 것 같았고 남편과 내연녀가 모텔로 들어가는 것까지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 순간에 찍은 사진이 없는 건 아마도 운전을 하며 미행하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 현장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피가 솟구치는 분노가 일어났을 텐데, 과거였다면 경찰에 신고해 경찰관과 함께 모텔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두 범죄자를 현장검거 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불륜이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간통죄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가진 경우 그 사람과 상간자를 처벌하기 위한 법 조항으로 1953년 형법에 명시되었다. 그러다 2015년 2월 헌재가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림에 따라 간통죄는 62년 만에 폐지되었다. -시사상식사전-
남편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아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모텔아래 주차장에는 피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가 있었다.
그리고 모텔에서 나오는 두 남녀를 핸드폰카메라로 촬영한다. 아내를 주차장에서 만난 남편과 상간녀는 당황한 듯했지만 몇 장의 사진을 더 보면 당황보다는 짜증의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둘은 타고 온 차에 올라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어진 문자의 대화 내용은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예상할 수 있게 해 준다.
아내는 끝까지 손을 내밀었지만 남편은 어쩔 수 없다는 내용으로 끝을 말했다.
결국 이 사진과 문자내용은 법원에 제출되어 이혼에 대한 책임을 무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런 사진을 작업할 때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 외에는 그 어떤 말도 건넬 수가 없다.
사진관 안은 인화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온다.
매주 사진을 인화하러 오신 중년의 남자손님이신데, 승용차의 번호판을 찍는다거나 건물을 찍은듯한데 흔들린 사진 아파트 입구를 찍은 사진 도통 무슨 사진을 왜 뽑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여쭤보았더니 처음엔 대충 말을 돌리시더니 한 번은 하소연하듯 입을 열었다.
아내의 행동이 수상해 외도를 의심하고 흥신소에 의뢰했고, 그들이 아내를 미행하면서 보내준 불륜증거들(사진)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더욱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볼 땐 이런 사진이 증거가 되는 거냐고.사진만으로 나는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몰랐고 지금 이야기를 해주셨는데도 이 사진이 과연 증거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번엔 흥신소가 일을 너무 못하는 것 같다는 식의 컴플레인 읍소를 나에게 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아내의 스케줄을 알려주면 각각의 시간에 카톡으로 아내의 위치를 답변받는 것과 핸드폰으로 찍은 형편없는 사진들, 그러면서 비용도 적지 않다고 했다.
"네? 그렇게 비싸요? 와.. 도동 놈들 아니 뭘 한다고 저렇게 많이 받아요? 그럴 바엔 차라리 저한테 연락 주세요. 제가 출장비만 받고 찍어드릴게요.
아니 그러지 말고 직접 찍어보시는 건 어떠세요?"
"제가요?"
"네~ 핸드폰으로 밤에 촬영하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요즘은 카메라들이 워낙 잘 나와서 밤에도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고도 충분히 촬영이 가능해요. 카메라와 렌즈는 중고로 구입을 하셔서 촬영하시고 필요한 사진들을 다 찍으시면 다시 중고로 되팔면 됩니다. 뭐 원하시면 제가 장비는 알아봐 드릴게요."
그렇게 거래는 성사되었고 나는 미션(?)에 필요한 장비들을 준비하게 되었다.
얼마 후
장비가 다 준비되었다는 문자를 받은 남편분은 퇴근 후 사진관에서 1대 1 긴급속성 사진교육을 듣게 되었다.
사진에 관한 기본과 촬영노하우, 카메라 조작법, 렌즈의 특성에 맞는 세팅법 등등 시간이 많은 것이 아니고 다양한 사진을 찍을 것이 아니기에 딱 맞춤형으로 교육을 해드리고 바로 실전임무에 투입시켰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카메라가방을 메고 사진관으로 들어온 남편은 나에게 메모리카드를 건넸다. 그리고 모니터 화면을 통해 함께 사진들을 보았다. 마치 사진교육 후 출사를 다녀와 촬영된 사진을 보면서 감상평을 듣는 듯 한 느낌이지만 우리의 사진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전에 흥신소가 보내준 흔들린 휴대폰 사진보다는 훨씬 좋아졌다.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등장했다. 하지만 백여 장의 사진을 넘겨보는 동안 이거다 싶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아무리 속성교육을 했다고는 하지만 평생 한 번도 다뤄보지 않은 DSLR카메라와 커다란 망원렌즈를 들고 능숙하게 찍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사진관의 입장에서 나야 백장의 사진을 다 뽑으면야 돈이 되지만 내 눈높이로 이번 숙제는 불합격입니다.
단 한 장도 건질 게 없습니다. 이게 쉬운 게 아니라고 생각한 남편분은 최후의 카드를 꺼내봅니다.
"사장님이 찍어주실 수 있나요?"
"네?"
어두운 골목
검은색 승합차
운전석과 조수석의 두 명의 검은 실루엣
맞은편 상가건물을 주시하고 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카메라를 들어 촬영하고 바로 몸을 숙인다. 연습이었다. 우리가 주차한 곳은 맞은편 상가의 계단이 보이는 위치였다. 하지만 밤이라 차량의 선팅 때문에 정면으로 찍을 수는 없었고 차를 돌려 조수석 쪽 창문을 살짝 내리고 그 틈으로 계단을 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차가 서있는 뒤 전봇대의 가로등 불빛으로 인해 반대로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우연히 시선을 들어 열린 차창문의 나와 혹은 카메라와 마주칠 수도 있는 거리와 환경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촬영을 하고 재빠르게 몸을 숙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사진관에 있다가 남편분의 전화를 받았다. 알려준 위치는 사진관에서 차로 15분 거리. 사진관 문을 닫고 현장에 도착하자 남편분은 상황설명을 해주었다. 저 상가 2층의 댄스교습소로 아내와 불륜남이 들어갔고 얼마후면 저 계단을 통해 내려올 것이다. 그때 사진으로 두 사람의 얼굴이 선명하게 찍히도록 찍어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막상 현장에 도착해 어둠 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느껴졌다.
카메라의 셔터를 연사로 설정해 두고 아마도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의 짧은 순간이면 건질 수 있는 사진은 두세 컷 정도일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30여분. 드디어 계단으로 내려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한발 한발 한발
"촬칵촬칵촬칵촬칵~~~~~"
연사로 사진을 찍은 나는 재빠르게 카메라를 내리고 몸을 숨겼다. 그들이 이쪽을 바라봤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시야에서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난 후 방금 찍은 사진들을 확인했다.
"잡았다. 요놈들!"
모텔에서 나오는 명백한 증거 사진이 아닌데 괜찮냐는 나의 질문에 요즘은 불륜행위 자체만을 놓고 보기보다는 가정생활에 배우자에 대해 소홀히 하는 행위와 기간들도 위자료를 분할하는데 쓰인다고 하네요. 듣고 보니 육체적인 외도가 아니더라도 배우자에게 정을 주지 않고 바깥으로 떠도는 아내와 그 기간이 길어진다면 부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도 판단이 되네요.
뭔가 해낸 것 같으면서도 왠지 모를 찜찜함도 남고 묘한 감정을 가지고 집으로 퇴근했습니다.
얼마 후 남편분은 카메라 장비 일체를 가지고 사진관을 찾아와
이제 더 쓸 일이 없다고 되팔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되판 금액에서 일부를 사진교육비였다며 챙겨주셨다.
그 후 그 손님은 더 이상 사진관에 나타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그 사랑은 식어버렸고 사람만 남았다.
이혼을 준비하며 금전적 배분을 위한 증거를 수집했는데, 이혼을 잘하셨을까? 생각한 만큼 위자료를 받았을까? 그 액수를 보면서 만족스러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