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광열 Mar 30. 2024

캐치 미 이프 유 캔

따뜻한 사진관 _ 열 번째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는 항상 걱정근심이 많다. 비가 오면 짚신이 안 팔려 걱정, 해가 나면 우산이 안 팔리니 걱정인 것이다.




따뜻을 넘어 더움이 느껴지는 완연한 여름날이다.

이런 날엔 손님들이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듯하다. 더워서 안 오시나? 어디 시원한 곳에 다들 가셨나? 야외로 놀러 가셨나? 많은 가능성을 떠올려본다. 그렇다고 막상 비가 오면 누가 빗속을 뚫고 사진관에 와서 푸석해진 헤어스타일로 사진을 찍으려 하나.

날이 더워도 비가 와도 나의 생각의 폭도 딱히 그 어머니의 마음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번달 월세, 4인가족 생활비, 거래처입금, 오전 내내 손님 없는 사진관 의자에 앉아 다양한 근심걱정거리를 머리 위 생각구름에 하나둘 떠올리고 있을 그때

딸랑~

사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조건반사적으로 의자에서 일어나며 뭉게구름을 얼굴로 터뜨리면서 인사를 한다.

"오서 오세요~온정동사진관입니다."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온 단아한 옷차림의 중년여성손님을 바라보면서 '뭐 필요하신 건 없으세요?'를 무언으로 전달하는 두 눈 동그랗게 깜빡깜빡 신호를 보내자

손님은 사진관 안으로 들어서며 가게를 주욱 훑어본다.

그리고 샘플액자 중 가장 큰 액자 앞에 멈춰서 잠시 액자를 바라보더니 말을 꺼낸다.

"혹시 집으로 오셔서 가족사진도 찍어주시나요?"


(BGM : Hallelujah~~~~~)


"네 그럼요. 출장 촬영가능합니다. 댁이 어디세요?"

"OO 타운하우스 아세요?"

사진관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럭셔리 전원주택단지가 있다는 걸 인터넷기사나 사진을 통해 본 적이 있다. 하나같이 으리으리한 집들이 모여 타운을 형성한 곳이다.


휴대폰으로 집을 찍은 사진들을 보여 주시는데  드라마에서나 자주 보는 정원이 있고 넓은 거실에 강아지가 뛰어놀만한 상상 속 낙원의 모습이었다.

바로 아랫집이 유명가수 누구라고 하시는데 이름은 생소하지만 잘 아는 듯 맞장구를 쳐드렸다.

이것이 사회생활의 기본오브기본



"그 정도 거리면 따로 출장비는 받지 않습니다.

가족이 몇 분 이실까요?"

"애들 두 가족 하면... 총 10명이고요. 애들 각자 집에 액자 이 정도로 (벽에 걸린 20R사이즈) 하고, 저희는 이보다 하나 더 큰 사이즈로 하면 될 거 같네요."


머릿속에서 현금통 열리는 효과음이 울리면서 어느새 책상 위에서 가져온 노트에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오롯이 손님과의 상담에 집중하고 있는 이 시간

쇼윈도 바깥에서 자전거 브레이크소리가 들린다. 끼익~

시선을 짝 돌려 바깥을 보니 미스터리 오 씨 아저씨가 자전거를 가게 앞에 세우고 유리창에 손을 대고 매장 안을 들여다보고 계셨다. 순간 나는 창밖을 향해 손으로 x표시를 그어 보였고 오 씨 아저씨는 눈치챘다는 듯 끄덕이고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갈길을 가셨다. 일단 안도. 중요한 타이밍에 오 씨 아저씨가 방을 놓아 손님이 맘 상하실까 사전에 차단을 시켰다.


"10인가족 출장에 메인액자 비용 80만 원이고요, 추가액자는 원래 따로 촬영하면 40만 원인데요 2개 추가에 60으로 해서 140만 원에 해드리겠습니다."

 하나의 완성본을 만들고 난 이후의 추가분에 대해서는 제작원가만 제하면 마진이기에 할인의 범위가 여유롭다.

가격흥정을 할 때는 상대방의 표정하나하나를 예의 주시한다. 혹시나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싶은 그때


"혹시 앨범도 제작이 되나요? 이왕이면 한번 찍을 때 앨범도 만들까 해서요"


(Sound effect : 띠용~~)


묻고 더블로 가!



"앨범을 하시면 촬영분량이 많아야 좋은 결과물이 나요.

스튜디오가 아니니까 의상콘셉트는 서너 콘셉트를....."


그리하여 액자에 앨범까지 더해지고 미니액자 여러 개에 인화사진까지 해서 200만 원에 모든 금액을 결정하고 가능한 날짜를 두세 개 정해서 확정을 하기로 했다.


성함과 주소 잔화번호를 예약표에 적고 금액과 서비스 등을 상세하게 다시 한번 적으며 확인시켜 드린다.


그때 손님의 전화벨이 울렸다.

"어 유경아, 왜? 어디? 분당? 누구랑 있는데? 어~~

아직 점심 안 먹었지 넘어갈까? 알았어 알았어."


통화가 끝나고 예약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사장님 저기.. 지금 내게 분당을 넘어가야 하는데

오늘 급하게 나오느라 지갑을 안 가지고 나왔지모야.

그래서 말인데 택시비로 5만 원만 줄 수 있을까?

다음에 계산할 때  다 깊이 해줄게"



네? 네~네, 압니다. 알아요. 여러분들이 하시는 말

무슨 말인지 어떤 뜻인지 저도 다 알아요.

평소 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살았어요.

보이스피싱에 당한 사림들을 보면서 답답해했고

사이비종교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심해하기도 했으니까요.

그 순간 저도 딱 알았어요.

그런데요.....


뭔가 '엥? 이건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 건데...

그럼 우리 가족 생활비는? 이반달 월세는? 액자공장 입금은? 나의 이성과 감성이 격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

'그런데 만약 이게 다 사실이라면?'

어두운 그림자 뒤에서 자고 있던 욕망이 갑자기. 튀어니와 모든 상황을 결정해 버린다.


"오늘 아직 개시를 못해서 만 원짜리 삼만 원뿐인데요.."

그러면서 돈통에서 3만 원을 꺼내어 차마 건네지는 못하고 손에 들고 있으니 손님은 그거라도 달라며 내손에 있던 3만 원을 낚아채고 유유히 문을 나선다.


나가는 손님의 뒷모습이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재생되면서 그 짧은 순간에도 이성과 감성과 욕망은 나를 마비시킨 채 그저 망하니 서서 나가는 손님만 바라보게 만들었다.




정확히 2분 뒤

장신을 차렸다. 그제야 사진관 밖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어디에도 그 손님은 (아니 처음부터 그 여자는 손님이 아니었으리라) 그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예약목록에 적어놓은 전화로 전화를 걸어보니 바로 받았고

상함을 확인하니 다른 분의 번호였다.


당첨확률이 매우 낮은 걸 알면서도 즉석복권을 5만 원어치 사서 긁고 낙첨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어떨까?

아마도 지금의 나와는 다른 감정일 것이다.

그 작은 확률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복권을 구입해

바로 긁어서 낙첨여부를 알게 되는 것과

의도된 접근을 통해 교묘한 언변술로 유혹해 기대감을 부풀린 끝에  완전히 짓밟아가며 농락한 희망고문사기꾼의 가스라이팅은 나에게 더욱더 큰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억울했다.


cctv화면을 돌려가며 다시 그 사기꾼을 보았다.

멀쩡했다. 누가 봐도 멀쩡한 저 모습을 하고, 온갖 사탕발림으로 희망풍선을 불게 한 뒤 한순간에 바늘로 터뜨려버렸다.


화면 속 얼굴을 다시 보자 불쌍한 50대의 여자가 보였다.

멀쩡한 외모에 탁월한 언어구사능력을 가지고

그 능력을 선한 방향으로 사용했다면 지금 그녀는 더 나은 삶을 누리고 있을 텐데...

타인을 속여서 돈을 갈취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인생을 상상해 보았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니?


얼굴이 보이는 화면을 캡처해 경찰에 신고했다.

사진관을 방문한 여자 경찰관은 잡기는 어려울 거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적된 신고들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해 본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사진관을 찾은 오 씨 아저씨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드렸고 아저씨는 함께 아니 나보다 더욱 화를 내며 차마 내가 입에 담지 못한 욕설을 퍼부어주셨다. 


그리고 그날 유난히 더웠던 바로 그날

이상하게 사진관에 손님이 많았던 바로 그날

뭔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감지한 나는 손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깜짝 놀랄 소식을 접했다.

매달 발행되는 마을신문에 사진관의 이야기가 기사로 실렸다는 것이다.

신호대기 중 힘드신 어르신들을 위해 의자를 내어놓고 잠시 쉬어가시라는 메모를 써붙인 사진사의 마음을 마을을 취재하던 신문사 기자님이 보시기에 따뜻했나 보다.

신문이 어제 발행되어 동네 곳곳에 배달되고 기사를 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빠르게 동네에 퍼저나 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주신 손님도 기사를 보고 따뜻한 마음에 기분이 좋아져 겸사겸사 휴대폰 속 사진도 인화하고 액자도 하나 만들러 '돈쭐'내주러 오셨다는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금전적으로 심적으로 많이 힘겨운 한 주를 보내고 있던 메말라 갈라져버린 나의 마음에 단비와도 같은 따뜻한 소식이었다.




그후 마을주민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아 6주간의 무료사진강좌를 개설했다.



비가 오니 짚신장수 동생이 우산 파는 형을 돕고 해가 뜨니 형이 동생을 도와 인건비절감과 돈독한 우애를 다지고 그리 번 돈으로 어머니께 효도하니 더 이상 어머니는 날씨에 따라 자식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비가 오기도 하고 날이 맑기도 한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받아들이는 마음자세를 바꾸자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딸랑~

어서 오세요~ 온정동사진관입니다.






이전 09화 그 손님이 알고 싶다 (feat. 황수정 찾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