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광열 Mar 23. 2024

그 손님이 알고 싶다 (feat. 황수정 찾기)

따뜻한 사진관 _ 아홉 번째

딸랑~

어서 오세요~  아 아저씨 안녕하세요.

일전에 이지아 사진을 뽑아가신 미스터리아저씨가 재방문하셨다.


사진관으로 들어오신 아저씨는 지난번과 같은 옷차림이셨다

보통 사진관에 촬영이나 인화 액자제작 등의 목적을 가지고 온 손님들은 들어오자마자 용건을 말하곤 하는데 아저씨는 들어오시면서 사진관을 기웃거리셨다. 정수기로 다가가서는 자연스레 믹스커피를 하나 꺼내어 종이컵에 타서 온수를 내리고는 믹스커피 봉지로 저어서 마신다.
그러더니 갑자기

"사장, 절권도라고 아나?"

"네?"


그 후 아저씨의 절권도에 대한 수강신청하지 않았는데 재생된 강의가 시작되었고 나는 그저 "아... 네..."정도의 반응을 하면서 이야기의 끝이 어디일지 기다리고 있었다. 키가 작고 몸이 다부진 아저씨는 몇몇 동작을 보여주기까지 하였다. 그때 사진관의 문이 딸랑 열리고
인화사진을 카톡으로 맡겼던 손님이 사진을 찾으러 들어오셨다. 들어서면서 주먹을 쥐고 펀치를 날리는 듯 서있던 아저씨를 힐끔 보고는 못볼걸 보셨다는듯 외면한채  나에게 시선을 돌리셨다.


"어서 오세요. 사진 찾으러 오셨죠?" 

난 손님을 보자마자 어떤 용무의 손님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조금 전 카톡으로 주문 들어와 있던 사진 속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등산 중 찍은 사진들을 보내왔다.  

“김순옥 님 사진 다 뽑아놨습니다.  10장이고요. 4천 원입니다.”

손님의 카드를 받아 들면서 이어말했다.

"이렇게 카톡으로 주문하시니까 더 편하시죠?"

"네, 이사진 오늘 찍은 거예요. 오전에 광교산 다녀왔어요. 오는 버스에서 카톡으로 보냈는데 바로 찾아가니 편하네요."

"와~ 카톡사진인화를 가장 잘 활용 하시네요 앞으로도 자주 이용해 주시고요. 주위에 소문 많이 내주세요. ^^ 감사합니다."


여성손님이 가시자 미스터리아저씨는 말을 이어갔다.

"아... 그래서 절권도는.."

난 못 들은 척 안 듣는 척 인화기의 용지 부분을 열어 용지교체를 하고 다시 닫았다.

다음 출력할 사진에 맞게끔 인화지를 교체했다

그때 등뒤로 아저씨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곤 절권도에서 다른 주제로 옮겨갔다.



"이번엔 '황수정'을 좀 인터넷에 쳐봐"

"황수정이요?"


아마도 내가 절권도이야기에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저씨는 작전을 바꾼 듯 보였다.

그도 그런 게 내가 절권도 이야기를 듣고 있을 이유가 없었고. 그러고 있을 시간에 인화작업을 해놓는 게 좋겠다 생각해서였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아저씨의 반응을 보자 든 생각이

나에게 뭔가 매출을 올려줘야겠단 생각을 하신 것 같다.


검색창에 황수정을 검색했다. 배우 황수정이 출연한 많은 작품의 사진과 인터뷰사진등 다양한 사진들이 검색되었다.

아저씨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컨트롤하지 않고 입으로 나에게 지시를 내렸다.

올려봐 올려봐 분명 많은 사진들이 검색되었고 내가 볼 땐 예쁜 사진들이 많은데도 아저씨는 한 장 한 장 까다롭게 고르고 계셨다.

아니 어쩌면 감상을 하고 계신 게 아닌가 싶었다.

그냥 두면 세월아 네월아 보고만 계실 것 같아서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요건 어떠세요? 예쁘게 나왔는데요?"

"아냐 아냐. 올려봐 한복 입은 건 없나?

이사진 저 사진 다양한 사진들을 보면서도 패스를 하는 아저씨를 보면서 문득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은

어쩌면 아저씨는 황수정의 사진을 찾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아저씨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어떤 인물이 황수정의 모습 속에 있었고, 이지아를 닮았던 그 누군가의 표정을 기억 속에서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하지만 지난번에도 이지아 팬이시냐고 물어보았을 때 대답을 피하시면서 멋쩍은 웃음을 지으셔서 오늘도 따로 물어보진 않았다. 나에게는 그 정도 깊이의 수사권은 주어져있지 않기에... 그렇게 네이버에서 다음에서 구글에서 각각 검색된 황수정 중에서 추리고 추린, 오직 한 명의 심사위원이 선정한 미스 황수정대회 진선미가 골라졌다.


이소룡과 황수정 찾기로 오전시간이 눈깜짝할세 지나고, 점심을 먹고 난 이후로는 유난히 손님이 안 오시는 오늘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손이 많이 가는 사진관의 구석구석을 뒤져본다.





한때 필름카메라는 특별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한 가장 소중한 도구였다. 그 시절 사람들은 중요한 이벤트나 여행을 떠날 때마다 필름카메라를 챙기는 것이 필수였다. 필름의 종류에 따라서 24장, 36장을 찍을 수 있었고(앞뒤로 여유분까지 촬영한다면 +2~3컷) 하프카메라라고 해서 필름한컷을 반으로 나누어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도 생겨나 한번에 70장이 넘는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다. 물론 필름을 반으로 나누어 사용하기에 사진의 퀄리티는 다소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배의 결과물은 당시에 대단한 혁신이었다. (내 스마트폰의 저장공간이 두 배가 된다고 생각해 보라) 게다가 촬영한 필름은 사진관이나 동네슈퍼등에서 현상과 인화과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사진 한 장의 가치가 컸던 그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급기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촬영 후 바로바로 사진을 볼 수 있고 휴대폰에서 언제든 볼 수 있는 세상이 되면서 더 이상 사람들은 필름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운영 중인 사진관을 그대로 이어받다 보니 구석구석 정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들이 있다. 오늘은 카운터 테이블 구석에 놓여있는 손님이 찾아가실 완성사진보관함이다. 여기엔 최근에 카톡으로 주문하셔서 인화해 놓은 사진 찾아가실 것도 보관 중이지만 점점뒤로 가면 갈수록 시간이 오래된 사진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중엔 필름과 함께 들어있는 사진들도 꽤 있다. 이리도 많은 사진들이 의뢰인의 기억 속에서 잊힌 채 몇 년째 보관 중이었다. 과거엔 사람들이 필름을 너무 많이 맡겨서 이곳의 인화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고도 했다. 주말에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월요일에 몰린다면 충분히 그럴 것도 같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몇몇 접수증에는 접수자의 이름만 있고 전화번호가 없는 사진들이 주로 찾아가지 않은 사진들이었다.



이렇게 연착처가 없고 이름만 있는 상황에서 사진봉투 하나를 꺼내어본다. 사진 속 촬영날짜는 2005년이다.

조금 더 단서를 찾아본다. 사진 속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딸과 엄마의 사진이 있다. 그리고 사진의 배경은 교회... 라기보다는 성당의 느낌이었다.

'성당? 아, 그러고 보니..'

사진관 근처에 성당이 하나 있었다.





녹색검색창에 성당의 이름을 입력해 보고 이미지카테고리를 클릭해 본다. 성당의 외부에서 촬영한 사진과 내부에서 미사 중에 찍은 사진등 여러 가지 사진들이 나온다. 인화된 사진 속 성당의 배경과 검색된 사진 속 성당의 배경이 동일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진관의 컴퓨터 촬영데이터에 사진봉투에 적힌 이름을 검색해 봅니다. 2006년에 중학교 교복을 입고 학생증 촬영한 딸의 사진이 검색되었다. 인화사진 속 인물과 동일인이다.

찾았다. 접수증의 이름은 엄마의 이름이 아닌 딸의 이름이었다.


정리해 보자면 2005년에 중학생이었으니 지금은 스무 살이 넘었을 것이다.

검색창에 나와있는 성당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사진관을 밝히고 상황을 설명한 뒤에 해당이름을 여쭤보자 사진관 바로 앞의 아파트가 주소지인 신도가 확인된다고 했다. 하지만 연락처는 알려줄 수 없다고 하여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사진관에서 맡긴 지 9년 된 사진을 안 찾아가고 계시니 꼭 사진관으로 연락 달라고 부탁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하나씩 드러나는 단서, 아... 이맛이구나.

평소 '그것이 알고 싶다'를 즐겨보던 사진사의 형사놀이는 계속됩니다.  




며칠이 지났다. 성당 측과 연락이 닿았을 때만 해도 바로 사건이 해결될 것만 같았는데 모든 게 내 맘 같지는 않았다. 어제 사진관을 방문하신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성당을 다니신다고 하셔서 얼마 전의 수사상황을 보고 드리자 손님이 다시 한번 연락해 준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녀의 모습을 보자 어린 시절 떨어진 이산가족을 상봉하기라도 한 듯 나는 한눈에 손님을 알아보고는 밝게 인사드렸다. 오히려 손님보다 내가 더 반가워하고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다.

무엇보다 사진 속 엄마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는데 함께 들어온 사진 속 중학생 딸은 어엿한 20대 성인이 되었다. 엄마손님은 사진관에 필름을 맡긴 사실조차 잊고 계셨다고 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빛바랜 사진봉투를 건네드리자 봉투 속 사진을 꺼내어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엄마와 딸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진사 또한 웃고 있었다.

사진의 가격은 당시에 적어놓은 9년 전 가격으로 받았다. 더 받으셔도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사진관에는 보관료라는 항목은 없기에 그리고 이번 같은 경우는 없었기에 그 어떤 사진관의 규정도 없으므로 9년 전에 접수봉투에 적어놓은 가격을 받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오래전 추억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 한마디에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오래된 미제사건을 해결한 형사님의 감정일까?


오늘은 9년 전의 사건파일.. 아니 사진파일 하나를 해결했습니다.

아직도 온정동사진관에는 개인개인들의 각각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틈틈이 탐정놀이를 통해 모든 미제사건을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온정동지 구대 나형사였습니다. 빰밤밤 밤밤밤~~~(이 멜로디가 귓가에 들린다면 당신은 옛날사람)


따뜻한 사진관에는 많은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사진 한 장 속에 담긴 다양하고 재미있고, 때로는 코끗찡한 삶의 이야기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온정동사진관입니다.


 



이전 08화 손님, 맥주 한잔 하시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