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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광열 Mar 09. 2024

잠시 쉬어 가세요

따뜻한 사진관_일곱 번째

사진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는 증명사진을 찍을 수 있는 흰색 배경이 있다. 배경지는 봉에 말려있는 롤배경이라고 부르는데. 버튼을 누르면 봉이 돌아가면서 배경지를 말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할 수 있는 전동롤배경이다. 천정에 3개의 롤배경지는 흰색 검은색 파란색이 있다. 각각의 상황에 맞춰서 배경컬러를 바꿔가며 사용할 수 있다. 8평의 좁은 사진관 내부에 조명삼각대가 서있을 여유도 없기에 조명은 천장에 매달려있다. 하지만 고정된 것이 아닌 로봇팔과 같은 거치암이 있어 원하는 방향과 각도로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손님이 앉아서 찍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있다. 이곳이 촬영공간으로 전체 사진관 공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반은 촬영한 사진을 작업할 컴퓨터와 프린터 그리고 사진을 출력할 인화기까지 빼곡하게 놓여있다. 그리고 손님을 응대할 카운터와 벽 쪽에 대기손님이 앉을 수 있는 수납형 의자가 있다. 카운터 끝에는 손님이 찾아가지 않은지 오래되어 보이는 인화된 사진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그중 제일 안쪽을 보면 꽤 오래전에 맡겨두고 안 찾아간 사진들도 있다. 수날짜가 2007년인 사진도 보인다. 게다가 필름이 함께 들어있는 필름인화사진이다.



쓸모를 찾아서

사진관의 위치가 중심상가에서 한 블록 벗어난 곳에 있어서 그런지, 사진관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한 달간 유심히 지켜보니 젊은 층보다는 주로 중장년층이 많이 지나다니는 듯하다. 사진관 앞 삼거리는 신호등이 한 번에 모든 방향으로 건널 수 있는 신호등이다. 그래서 보행신호가 되기까지 일반 횡단보도보다 조금 더 보행신호가 오래 걸리는듯하다. 사진관 청소를 하다가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놓여있는 팔걸이가 있는 나무의자를 보았다. 두 개가 한  세트인데 하나는 촬영용 의자로 사용하고 있지만 나머지 하나는 배경뒤편에 두고 가족사진을 촬영할 때만 꺼내어 사용한다. 하지만 동네 작은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촬영할 일이 드물어 항상 뒤편에 쓸쓸히 놓여있다.

나는 잠자고 있던 의자를 꺼내 사진관의 쇼윈도 앞으로 옮겨 놓았다. 신호대기 중에 서계신 어르신들께서 앉아서 신호대기를 하시면 좋겠다 싶어 메모지에 내용을 작성해 의자등받이에 붙여놓았다.


"어르신, 신호 대기 중 잠시 의자에 앉아 쉬었다가 가세요"


처음엔 낯선 의자가 바깥에 놓여있는 모습에 앉아도 되나? 생각하던 어르신들께 눈 마주치며 인사드리고 신호대기 중 의자에 잠시 앉으실 것을 권해드리자 한분 두 분 의자에 앉으시곤 하셨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해의 위치가 바뀔 때는 간판아래의 차양막을 펼쳐서 그늘을 만들어 드렸다. 사진관 안에서 잠자고 있던 의자는 이제 동네 어르신들에게 잠깐의 휴식을 선사해 드리는 의자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출근 후 청소를 마치고 나면 나는 주로 컴퓨터 의자에 앉아서 작업을 한다. 간판을 바꾸거나 개업화한을 세워두거나 인테리어를 하는 등의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고 바로 인수를 해서 여전히 오시는 손님마다 전 사장님을 물어본다. (하지만 의하는 인사치레일 뿐 아쉬움이 묻어나진 않는다.)


50대 후반의 아주머니께서 사진관문을 열고 물어본다. "핸드폰 사진도 뽑을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그럼요. 사진관인데요. 들어오세요"

"요즘엔 핸드폰사진 안 뽑아주는 사진관들도 있어서요.."

처음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후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어떤 사진을 뽑으실 거예요?" 나의 물음에 아주머니는 컴퓨터에서 고르고 싶다고 말했다.

아주머니의 핸드폰을 받아 서랍에서 케이블을 꺼내어 컴퓨터와 연결을 했다.

컴퓨터에 연결된 핸드폰 속의 사진폴더를 찾아 들어갔더니 많은 사진들이 주르륵 읽힌다.

갤러리를 확인해 보니 전체사진파일수가 3000을 넘는다.

"사진이 많이 나오는데 언제 찍으신 사진이세요?" 컴퓨터화면 속에 나온 썸네일들을 본 아주머니의 시선이 정신없다. 핸드폰 속의 갤러리로 볼 때는 보기 편한 사진들이 컴퓨터에 연결해 폴더로 확인할 때는 많은 양의 사진들이 모니터에 작은 썸네일로 보여서 갤러리로 볼 때와 이질감이 든다.

쉽게 해당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직접 찍은 사진과 카톡으로 받은 사진이 휴대폰갤러리에서는 한 번에 보이지만 폴더로 들어가서 찾을 때는 전혀 다른 폴더에 각각 들어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주머니의 기억과 진술을 토대로 사진들을 찾아야 한다.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준 사진을 저장했다고 하여서 해당폴더를 찾아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드렸다. 그제야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화색이 돋았다.

"맞아요 이사진이에요."  그렇게 말한 아주머니는 나에게 비키라는 듯 마우스를 직접 잡아서 사진을 보기를 원했고 순식간에 뒤에서 있던 아주머니와 나의 자리는 바뀌었다. 사진은 얼마 전 친구들과 등산을 가서 찍은 사진이었고 아주머니는 사진관의 큰 모니터로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감상하고 있었다. 가끔은 사진에 대한 설명까지 해주시기도 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이게 00봉인데 여기가 코스가 두 군데고..."

사진을 보며 추억담을 들려주시는데 나는 '아, 네~~'정도의 반응을 하면서 지켜봤고

아주머니가 "이사진을 뽑을 거고... 요건 패스"등의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메모지에 사진번호를 적고 있었다.


....


"다 골랐어요."

30분간 아주머니가 고른 사진은 7장이었다. 원하는 사이즈는 4x6사이즈이고 인화비용은 장당 400원이었다. 하지만 사진관에는 최소주문금액이 정해져 있었고 그 비용은 4천 원이었다. 즉 4x6사이즈 10장을 인화하거나 혹은 그 이하로 인화해도 4천 원을 받는 것이다. 그리 설명해 드리니 아주머니는 다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추가로 사진을 골랐다. 그리고 10장의 사진을 인화하고 아주머니는 가셨다.

거의 40분가량의 시간을 들여 사진을 고르고 인화해서 결제까지 매출은 4천 원

처음 아주머니가 들어오면서 하셨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요즘 핸드폰사진 안 뽑아주는 사진관들이 많아서..."

그랬구나, 그래서 안 뽑아줬구나. 아니 이렇게는 뽑아드릴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가 가시자 급 허기가 밀려왔다. 가게 문에 점심시간 메모를 붙여놓고 문을 잠그고 바깥으로 나왔다. 봄바람이 따뜻하게 부는 6월날씨는 실내보다 더 따뜻하고 포근했다.


오늘점심은 제육덮밥이다. 밥을 먹는 내내 머릿속에 조금 전의 아주머니 손님이 사진관에 들어오실 때부터 나가실 때까지의 일들을 복기해 보았다. 결론은 더 이상 사진관에서 핸드폰 사진을 고르게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진관에 오기 전에 사진을 고르던지, 아니면 와서 고르더라도 컴퓨터에선 안된다 그러면? 핸드폰 안에서 골라야 하고 파일의 전송도 핸드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 핸드폰에서 사진을 고르게 하고 카톡으로 사진을 받자"


이 말이 지금은 너무나 뻔한 것일 수 있으나 그 당시 2014년의 작은 동네에서는 그다지 당연하지 않았다.

지난 12년간 혹은 그보다 더 오래 사용해 오던 방법을 한순간에 바꾼다는 것은 굉장한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그렇게 그동안 시도하지 않던 새로운 룰을 이해하시는 손님은 편하게 카톡으로 뽑을 사진을 보내셔서

pc에서 바로 다운로드할 수 있었고

연세가 있으신 손님들은 바뀐 룰에 적응하기 힘들어하셨다. 물론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 주긴 했지만...


-----

"카톡, 카톡, 카톡"

"어떤 사이즈로 뽑을까요?"

"4x6사이즈로 뽑아주세요."

"네 바로 뽑아놓을게요. 10분 후에 오세요"


더 이상 손님이 가게의 컴퓨터로 사진을 고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사진을 고를 수 있고

사진관 카카오톡인 나의 폰으로 사진을 전송해 주면 됩니다. 그리고 원하는 사이즈를 알려주시고요.

편한 시간에 사진관에서 찾아가면 되는 방식으로 변경했습니다.


"이제 핸드폰 사진인화는 사진관에서 사진을 고르실 필요가 없습니다.  카카오톡으로 뽑고 싶은 사진만 보내주시고 사이즈 알려주시면 됩니다"


낯설어하던 60대 할머니께 (요즘 60대를 할머니라고 부르기 어색하지만  손녀딸의 사진을 뽑아가시기에 할머니로)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자, 처음에는 당황하시며 거부감을 드러내셨다.

"아우, 난 그런 거 잘 못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드렸다. 삼일 후 할머니께서 가게문을 열고 물어보신다.

"그때 카톡으로 사진 어떻게 보낸다고 했는지 까먹었어요"

"네  다시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세 번 정도 가르쳐드리고 난 이후부터는 사진관을 이용하는 다른 누구보다도 편하게 잘 이용하고 계신다. 매주 손녀의 사진을 10장씩 뽑아가셔서 앨범에 정리하는 게 소소한 행복이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

내가 생각하는 우리 사진관을 이용하시는 손님 중 가장 행복한 손님이 아닐까 생각된다. 바라만 보아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손녀딸의 사진을 매주 차곡차곡 앨범에 정리하며 얼마나 많은 행복한 미소를 지을지 그 기쁨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어떤 건강보조식품보다도 강력한 효능의 명약일 것이다.


"카톡으로 보내니까 더 편하시죠?"

사진관에 와서 사진을 고르다가 다른 손님이 오면 불편했던 인화손님들이 이제는 집에서 카페에서 버스 안에서 여유 있는 시간에 뽑고 싶은 사진을 카톡으로 바로 보내놓고 사진관으로 찾으러만 오면 되기에

손님들도 편하고 나 역시 받은 사진 파일을 바로 인화하는데 1분이면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요즘도 사진을 인화하는 손님이 계시냐고요?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서 그렇지 꽤 많이 사진을 인화하신답니다. 봄이 되면 꽃과 함께 여름에는 친구들과 함께 가을엔 낙엽과 함께 겨울엔 눈과 함께

동네사진관에서 사진을 출력해 가는 대부분의 손님 중 4050 중년여성분의 비중이 가장 높다. 아마도 과거 필름시대 때부터 사진을 찍고 뽑는 것이 익숙해져 있던 세대라 그런 걸 지도 모른다. 사진은 자고로 출력해서 앨범에 넣어서 보는 게 당연하고 익숙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핸드폰의 카톡울림소리 만들어도 손님이 사진을 보내는 건지 알 수 있다.


"카톡카톡카톡카톡카톡카톡....."


누군가에게는 sns 알림 소리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저 소리가 돼지저금통에 돈 떨어지는 그 소리처럼 들리더라 ㅎㅎ


"땡그랑땡그랑땡그랑~ "


어떤 날은 자고 일어나 카톡을 확인해 보니 밤새 사진을 전송하신 아주머니 손님이 700여 장의 사진을 보내놓으셨다.


온정동 사진관 카톡사진인화,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주시고 원하는 사이즈만 알려주세요.

어떠세요? 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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