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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광열 Mar 02. 2024

멋쟁이 신사와 한밤의 달리기

따뜻한 사진관_여섯 번째


3년 전 5월, 일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부부. 만삭의 아내는 한 달  출산을 앞두고 있다. 당장 머물 집부터 구해야 했다. 부동산중개업자의 말만 믿고 계약한 대출금이 많이있는 작은 월세아파트는 이후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었다.  아이는 딸이었다. 2년 후 둘째는 아들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이듬해 사진관을 인수한다.

온정동 사진관 


2주 전

신분증 사진 재발급을 위해서 사진관을 찾아온 남자손.

보통의 키에 평범해 보이는 외모의 그에게는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화려하게 멋을 부리지 않은 정장재킷을 입고 있었지만, 한눈에 봐도 그에게는 패션에 대한 남다른 감각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맞춤옷을 입은 듯, 입고 있는 옷이 그의 몸에 딱 맞아 보이면서 어딘지 잘 어울려 보였다. 남색재킷, 검정바지, 브라운컬러의 양말, 구두까지 잘 어울리는 남자.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보며 미소를 지어 달라는 사진사의 주문에 그 남자의 입꼬리 근육은 마치 경련이 일어나는 듯 씰룩씰룩거렸다. 두세 컷 촬영한 사진을 모니터로 보여주자

"참~~ 못생겼네 ㅎㅎ"

사진관에서  사진사가 절대 말하지 못하는 금기 표현을 본인의 얼굴을 보면서 스스로 말하는 멋쟁이손님

"에이 무슨 말이세요. 얼굴도 멋있고 오늘 옷차림도 너무 멋고 잘 어울리시는데요~"

이럴 땐 무조건 칭찬을 드리면서 일단 결여된 자감을 높여드려야 한다.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로 옮겨 모니터에 띄우

"자 그럼 이제부터 더 멋있게 만들어드릴게요. 먼저 머리스타일부터 보겠습니다. "

포토샵으로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을 살짝 올려서 볼륨업을 해드리자 모니터를 보시던 손님 신기해한다.

"이 정도면 괜찮으세요?"

보통 만족하거나 조금더를 요구하기도 한다.

"딱 마음에 들어요. 안 그래도 요즘 머리숱이 없어서 고민인데 ㅎㅎ "

"자 벌써 미용실 드라이비용 벌어드렸습니다. 다음은 피부과 가볼게요"

피부의 잡티를 하나둘 제거한다. 이때 중요한 건 점이나 원래부터 있던 상처는 꼭 손님의 의견을 물어보고 진행한다.

"눈에 띄는 잡티(잡티라는 표현이 조금은 듣기에 거부감이 덜하고, 검버섯이나 주근깨 등 명확한 명칭을 이야기하면 손님들이 좀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를 먼저 제거했고요.

이번엔 메이크업을 좀 해드릴게요. 여성분들 화장하는 거라고 보면 되세요. 먼저 파운데이션을 톡톡 두드리듯 피부를 좀 두드려드릴게요."

어두웠던 피부톤이 화사해진다. 손님의 표정을 살짝 스캔해 보니 이제는 조금 본인의 모습이 변화되는 과정을 즐기는 듯 보인다.

"이 정도 어떠세요? 너무 과하게는 하지 않습니다.  손님의 요청이 있으시면 더 해드릴 수는 있는데요. 이 정도만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

보정 전 사진과 보정 후의 사진을 번갈아가며 비교되는 보여주자 포의 사진보다 많이 업그레이드된 모습이 멋쩍은 듯 미소 지으며 끄덕이며 말했다.

"오~좋아요. ㅎㅎ"


다른 스튜디오들도 각각의 다양한 그들만의 방식이 있을 테지만 흔히 뽀샵이 과하다고 불리는 사진관들 특히 대표사진사가 없는 직원에 의해 운영되는 사진관들의 경우, 촬영조명도 과하고 보정도 과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손님들이 더욱 과한 보정을 요구하니 시스템은 그 기준을 점점 높이게 된 것이다. 마치 그게 모든 고객의 니즈인 것처럼 일반화된 것이다. 그래서 온정동 사진관의 경우는 보정의 강도를 더욱 약하게 한다. 과한 보정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그리고 그 과하지 않음을 손님들께 보여드리고 설명드리면서 이해시켜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요즘의 디지털로 촬영된 상업적 인물사진들은 너무 과한 후작업이 들어가기에 이용하는 손님들도 이 시장 자체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듯하다. 사설이 길었다. 다시 사진관으로 돌아가보자.


"피부과에 메이크업까지 받으셨고 다음은 성형외과입니다."

먼저 눈코입을 체크한다. 눈은 아주 살짝 키워준다. 여기서도 포인트는 손님이 촬영할 때 눈을 조금 크게 떴다고 생각할 정도의 키움이다. 그래서 코는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거나 미세하게 만져주고, 입은 살짝 미소 짓는 표정이 증명사진에 잘 어울린다. 손은 작업을 하고 있고 입도 나름의 손님응대를 열심히 한다.


"의류회사 대표님이세요? 옷차림이 너무 잘 어울리세요"

처음 사진관을 들어설 때부터 느꼈던 패션을 칭찬해 주자 기분이 좋아진 그가 대답한다.

"한때는 그랬죠....."

"네?"



그는 90년대에 여성의류매장을 크게 운영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기술의 발전에 따라 온라인쇼핑을 통해 전국적으로 판매를 하면서 소위 말하는 대박이 터졌다고 했다. 옷을 옥션쇼핑몰에 등록하기 바쁘게 팔려나가면서 점차 규모가 커지고, 의류공장들에 직접 제작을 하기도 하면서 연간 몇십억씩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를 이어갔다고 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 온라인판매사들의 세문제가 불거졌. 옷을 사 와 이윤을 붙여서 판매를 했는데 그 당시 판매금의 10프로에 해당하는 부가세에 대해서는 온라인몰도 언급하지 않았고 판매자도 그런 지식이 없었다고 했다. 결국 온라인몰은 그 책임을 판매자에게 떠넘기게 되었고 몇 년간의 판매기록을 세무사에 넘긴 것이다. 당시엔 공장에서 옷을 8천원에 현금주고 가져와 옥션에서 만원에 팔면 수수료를 떼고 광고비 빼면 천원정도 이윤을 냈다. 지금은 부가세와 소득세등의 세무적인 계산하에 매입자료와 판매가를 정하지만, 아무런 지식도 안내도 없었던 그당시는 그랬다고 한다. 판매기록은 있었으나 매입자료를 남기지도, 남겨야 하는지도 몰랐던 사장은 수억원의 세금폭탄을 맞으면서 모든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몇몇 양심적인 의류공장들은 그간의 큰손고객이었던 사장에게 조금씩 돈을 보태주었지만 등을 돌린 공장도 있었다. 그렇게 사장은 한순간에 모든 걸 잃고 큰 빚을 떠안은 채 길바닥으로 내몰렸다고 한다.


그 이후의 일들이 너무 궁금했지만 고생스러웠을 지난 십수 년간의 이야기는 생략한 채 지금은 낮에는 기업간부의 운전기사로 일을 하고 밤이 되면 대리운전을 병행하면서 가족들만 바라보며 밤낮으로 열심히 달리고 있다고 했다.




"어쩐지.. 패션센스가 예사롭지 않으시다 했어요"

지나온 힘든 삶과는 다르게 모니터 속의 멋쟁이신사는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살짝 기울어진 어깨선을 바로 잡아주고 모든 보정을 마무리한다.

"자, 다 되었습니다. 어떠세요?"

보정과정을 함께 보면서 왜 이런 보정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 손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진행했기에 대부분 마지막에 만족도가 높다.

"야~~ 내가 그렇게 못생기진 않았네요. 허허허"

처음 촬영된 사진을 보고 외모를 혹평했던 그는 한 장의 증명사진으로 자존감이 꽤나 높아진 듯 보였다.

"밤에 대리 운전까지... 힘들지 않으세요?"

"어쩌겠어요. 이게 다... 내 운명인 것을 ㅎㅎ "

힘든 이야기를 꺼내어 들려준 그에게 나 역시 고민을 꺼내어본다.

"대단하요. 저도 이번 달에 사진관 인수했는데요.

손님이 너무 없어서 집에 월급을 제대로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서로의 속내를 이야기해서 그랬는지 더욱 친근해진 멋쟁이사는 오히려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명함을 한 장 건네주다.

"혹시라도... 대리운전 해 볼 생각 있으면 연락 줘요. 내가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이것저것 조언해  수 있으니까"




핸드폰과 두 다리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술 취한 누군가를 대신해서 운전을 해 주면 되는 일이다.

그 행위자체가 직업의 이름이 되었다. 대리운전


가로등 불 빛이 골목을 비추는 어두운 밤길을 검은 실루엣의 남자가 달려가고 있다. '지 이이이 잉~' 손에 든 휴대폰의 진동이 울린다.

"네 2분이면 도착합니다."

그리고 어둠 속을 달린다.


남자는 운전하고 뒷자리엔 술 취한 손님이 잠들어있다.


차에서 내려 돈을 받고 손님과 인사하고 아파트 단지를 나온다.


낯선 동네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고 있는 남자를 향해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두 줄기 빛이 다가온다. 남자 앞에 차가 멈춰 선다. 승합차의 뒷문을 열자 불 꺼진 어두운 승합차 뒷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휴대폰의 불빛에 비추어 보인다. 차에 올라탄 남자가 문을 닫자 승합차는 또다시 어둠 속으로 속력을 내어 들어간다. 어둠 속에서 핸드폰의 불빛을 통해 남자의 얼굴이 비친다.

온정동 사진관의 사진사의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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