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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광열 Feb 17. 2024

사진관 폭파범

따뜻한 사진관_네 번째

가게를 인수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의 반응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사진관을 찾아온 목적을 바로 말하는 용건만 간단히 형. 1층 길가의 삼거리이자, 동사무소 근처에 위치한 사진관이기에 문을 열고 들어와 원하는 사진촬영을 하고 작업 후 빠르게 가게를 나가는 데까지 20분이 안 걸리는 손님들이다. 어찌 보면 사진관 매출에 가장 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뭔가 정이 없다고 할까? 그렇게 손님이 가고 나면 손에 쥔 카드명세서나 현금을 바라보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허전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또 오실까? 사진은 마음에 드셨나? 식당에서는 음식의 남김여부로 간접적으로 손님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다지만

사진관은 손님들의 직접적인 리액션이 없을 때면 사실 좀 궁금하다. 그렇다고 맘에 드세요?라고 물어보는 것도 참 그렇다. 촬영한 사진사를 앞에 두고 '별로네요...'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두 번째 유형의 손님은 사진관에 들어와 인사하는 나를 보곤 전 사장님을 찾습니다. 이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실제 단골과 단골인 척하는 사람들입니다.


척하는 손님들은 사진관을 한두 번 이용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인데 전 사장님과의 친분을 과장하는 분들이 제법 있었다. 막상 연락처를 준다거나 전언메시지가 있으면 전해주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고 그냥 단골이었다고 말은 하는데 컴퓨터로 촬영자료를 검색해 보면 7~8년 전에 촬영한 사진 한 장정도 나오는 분들이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손님들의 유형이 빤히 보이면서 나름의 손님들에 대한 느낌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해 가고 있었다.




사진관과 같은 건물 1층에는 떡집과 분식집 그리고 피부관리숍과 부동산이 있다. 떡집은 12년 전 건물이 생길 때부터 함께 오픈했다고 하고 분식집은 몇 년 후에 들어왔다고 한다. 일주일이 되는 동안 업무에 대한 적응을 해야 했던 탓이기도 하지만 가게 인테리어도 전혀 안 바꾸고 이어받은 거라 이렇다 할 개업식을 못했다. 아쉬운 데로 떡집사장님과 인사를 나누면서 떡을 사서 떡집사장님에게도 한팩을 건네주고 옆가게 사장님께 떡과 함께 인사를 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주인이 바뀐 줄도 모르고 계셨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가게에 나와서 하루종일 가게바깥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니 옆가게 사정을 잘 알기도 쉽지 않다. 오전 10시에 나와서 오후 8시까지 하루 10시간을 사진관 안에서 보내는 나에게 어쩌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더 자주 볼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웃과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이 전혀 없었다.



전 사장님이 들려준 라떼이야기

12년 전, 사장님 이곳에 사진관을 차리기 전 근처의 대기업 S전자 직원이었다고 한다. 최근엔 그 대기업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왜 사장님은 그런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사진관을 차렸을까? 그에 대한 답은 사진관 컴퓨터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동네사진관은 손님이 촬영한 사진을 다시 찾으러 오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촬영한 사진은 해당날짜와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사진관에 있는 컴퓨터는 곧 사진관의 역사를 모두 담고 있었다. 특정 연도와 해당월의 폴더로 들어가면 날짜별로 촬영된 사람들의 이름과 사진이 남아있고 월별 년 별로 폴더에 들어있는 사진 개수를 체크해 보면 대략 사진관 매출액도 따져볼 수 있었다. 사진관을 오픈했을 때 3월 입학시즌의 경우 하루에 촬영된 손님들이 200명이 넘었다. 대부분이 근처의 중고등학교 학생들 사진이었다. 당시의 가격을 따져보면 하루매출 월별매출이 계산되는데 (이는 인화나 액자등의 다른 상품을 제외한 촬영손님만 따져본 것이다.) 대기업을 왜 나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연도별로 체크해 보니 해가 갈수록 사진촬영인원이 줄고 있었고 최근 몇 년간은 매우 저조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웃 떡집사장님의 말로는 오픈당시 신입생촬영이 너무 많아서 전날 촬영한 사진작업을 떡집사장님이 떡을 만들기 위해 출근하는 새벽까지도 하고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상 속 이야기 같았다.


그렇게 나는 매출이 급격히 감소한 망해가고 있는 사진관을 인수한 것이다. 나도 앞으로 닥쳐올 미래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토록 운영해보고 싶었던 나의 첫 가게였기에

하나씩 하나씩 애정을 가지고 운영해 나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진관을 인수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 하나 

전 사장님이 전혀 하지 않은 한 가지 바로 홍보였다. 홍보라는걸 하지 않아도 손님이 끊이지 않았던 사진관이었기에 점점 줄어드는 매출에 전 사장님이 취했던 조치는 바로 직원을 자른 것뿐이었다. 처음 사진관을 할 때는 이 작은 사진관에 사장님과 직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엔 혼자서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손님들이 줄어들었기에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먼저 녹색검색창에 사진관의 이름을 쳐보았다. 그 순간 내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결과가 펼쳐졌다.


"00 사진관 폭파시켜버리고 싶다."





지나가던 00 사진관 사장님이 안 눌러볼 수 없을 만큼 강한 제목의 글이었다. 해당 블로그 글을 침을 한번 꼴깍 삼키 클릭해 보았다.


내용인즉슨, 전사장님의 불친절한 응대에 분노한 손님이 블로그에 글을 남긴 것이다. 증명사진을 촬영하는 비용이 아까웠던 손님은 핸드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에 옮겨서 편집프로그램을 이용해 4x6인치 사이즈로 작업해 8장의 증명사진을 1장의 사진파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파일을 usb에 담아 사진관을 찾아왔고 4x6인치 한 장을 인화해 달라고 했다. (4x6인치 한 장의 인화가격은 400원이었다.) 그러자 전 사장님은 그런 건 안 뽑아준다고 말했고 손님은 사진인화를 해주는 사진관인데 왜 안 해주냐고 따져 물었다. 전 사장님은 막무가내로 1장을 인화해 주는 가격을 증명사진 촬영가격인 15000원을 내던가 아니면 다른 데로 가라고 했고 손님은 말도 안 되는 사장의 요구에 분노해 사진관을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때의 상황을 블로그에 적고는 파격적인 제목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해 둔 것이다.

물론 그 분노의 블로그글은 전 사장님의 눈에 전혀 띄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인터넷에 본인의 사진관에 관한 검색을 해보지 않았을 테니, 그렇게 1년간 그 글은 인터넷의 바다에 둥둥 떠다니면서 혹여나 00 사진관을 검색한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가뜩이나 줄어든 손님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 것이다.


일단 해당 사건은 1차적으로 가게를 내놓고 점점 일하기가 싫어진 전 사장님의 잘못이 크다고 수 있고, 거기에 보태어 굳이 사진관측의 입장을 대변하자면 동네사진관의 현실을 전혀 이해해주지 못한 손님에게도 조금은 잘못까지는 아니어도 양해를 구하고 싶다.


먼저 사진관의 입장으로 보자면 자본을 들여 기술을 가지고 사진관을 차려 운영한다, 동네사진관의 가장 핵심매출요소는 증명사진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나는 지난 1년간 증명사진을 찍었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오라는 답을 할 확률이 높다. 질문의 앞에 '동네사진관에서'라는 조건을 추가한다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즉 손님 한 명이 증명사진을 찍으면 다시 사진관을 찾을 가능성이 몇 년간 없을 수 있는 그런 상품을

400원에 제공해 준다면, 사진관을 찾지  손님들이 늘어난다면 아마 사진관은 머지않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사진관의 입장이고

손님의 입장에서 보자면 15000원을 내고 만들 수 있는 증명사진을 사진의 퀄리티야 조금은 떨어질 수 있겠지만 400원에 만들 수 있다고 하면 안 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본 판사는 이렇게 판결하고 싶다. 손님을 막대하고 고객의 기분을 나쁘게 한 전 사장 유죄! 그리고 사진관을 망하게 할 수 있을뻔한 손님의 행동 - 미필적고의 판결불가


이 폭파예고 사건이 있고 나서 내가 한 첫 번째 조치는 포털사이트에 해당글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사진관 계약서를 첨부해서 해당글은 이전사장님 때 벌어진 일이고 지금은 그 가게를 내가 인수했다. 그 글이 해당사진관을 검색할 때 최상단에 노출되는 만큼 사진관이미지를 훼손하고 있기에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해당글은 다음날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내가 한 다음 행동은 바로 메뉴의 개편이었다. 해당 사건은 손님과 사진관의 입장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로 서로 간의 납득할만한 지점이 있었다면 발생되지 않았을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손님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 사진관의 매출에 큰 데미지가 발생되지 않는 선에서 조율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에 나는 이렇게 메뉴를 수정해 보았다.


-증명사진 15000원 (촬영+보정+출력) 8장

-증명사진 추가 출력 (촬영 후 추가로 출력을 원할경우)  8장 10000원

-외부파일 증명사진출력  8장 10000원

(증명사진으로 사용할 목적의 출력의 경우 해당사진관에서는 증명사진 추가출력의 가격을 받습니다.)


따라서 위의 손님이 포토샵을 이용해 4x6인치에 8장의 사진을 만들어와도 증명사진 추가출력에 해당되므로 본 사진관은 1만 원의 비용을 받고 출력해 줄 수 있습니다.

(단, 이때 손님이 작업해 온 사이즈가 증명사진에 맞는 규격인지 재차 확인 및 수정/ 간단 보정의 작업 가능)

때로는 손님이 맞춰서 작업해 온 규격이 막상출력했을 때 사이즈가 안 맞는 경우도 있기에 그런 것들을 감안해서 사진관에서 촬영하지 않은 사진을 증명사진으로 원할경우 잘 맞춰서 출력 규격에 맞게 잘라서 주는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가격을 5천 원 저럼 하게 만들었기에 손님은 오천 원만 더내면 사진관에서 제대로 촬영해서 보정까지 할 수 있기에 선택의 여지를 손님께 넘겨주게 되는 거죠.

이렇게 사진관의 룰을 정하고 오신 손님께 설명을 드리고 난 이후로 단 한 번도 같은 문제로 손님과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물론 우리의 메뉴구성을 이해하고 순순히 다른 출력소로 간 손님은 계셨지만 사진관을 폭파시키고 싶을 정도의 분노를 가지고 돌아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싸움이 일어난다. 그 의견을 잘 조율해 양측이 납득할 만하면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나는 사진관의 폭파를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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