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광열 Feb 05. 2024

한번 실수는 병가의 상사

따뜻한 사진관_두 번째

덜컥 계약한 사진관의 첫 출근, 보통 매장계약을 하면 인테리어를 새로 하거나 간판이나 어닝을 교체하기도 하지만 나에겐 창업지원대출로 겨우 마련한 보증금이 전부였기에 인테리어나 장비교체등을 할 여유가 없었다. 사진관을 찾는 사람들이 볼 때는 어제까지 12년간 운영하던 사장이 사라지고, 알바인지 직원인지 모를 조금은 젊은 사람이 사진관을 지키고 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막상 사진관에 나 혼자 있다는 생각에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감정을 느끼면서 사진관 이곳저곳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구석구석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는 켜켜이 쌓인 먼지들이 보였지만 당장 시급한 건 언제라도 저 문을 열고 들어올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다. 문 앞에 던져진 대출명함이나 신호대기 중 누군가가 버리고 간 사탕비닐등을 손으로 줍고 가게 앞을 쓸었다. 가벼운 청소를 마치고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날짜로 분류해 놓은 폴더 속 사진들을 하나씩 보았다. 지금까지 어떻게 사진을 찍었는지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대부분 무표정이었고 드문드문 웃음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다짐을 해본다.


10시에 오픈해서 오후 1시가 될 때까지 아무도 저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오늘 공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막 들려던 그때

"딸랑"

"어서 오세요."

여권사진을 찍으러 온 중년남성. 유난히 과묵하시다. 사진촬영에 대한 안내 외에는 말을 걸기가 어렵다. 사진을 몇 컷 찍고 보정작업을 한 후 바로 출력해 여권크기로 잘라 봉투에 담아 건네드렸다. 아직 일이 손에 익지 않아 20분이 좀 넘게 걸렸고 중년남성은 사진을 확인하고는 아무런 감정변화 없이 가격을 묻고는 자갑에서 2만 원을 꺼내어 건네주고 사진관을 나갔다. 들어올 때의 목적이 여권사진이었으므로 그 목적을 이루자 그대로 자신의 갈 길을 간 것이다. 손에 든 첫 매출 2만 원을 보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작업된 컴퓨터파일을 저장하던 중 조금 전 작업한 여권사진 규격이 틀린 것을 확인한 순간 등으로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앗!"

짧은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왔다. 여권사진은 사진 속 얼굴크기가 정수리에서 턱까지 3.2~3.6cm 크기 여야하는데 방금 작업한 사진은 얼굴크기가 3cm뿐이 되지 않았다. 이럴 경우 여권발급처에서 소위 말하는 '빠꾸'(거절)를 당할 수 있다. 긴장한 탓에 서둘러 작업한다고 하면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미 손님은 가셨고 연락처를 적어놓은 것도 아니었기에 손님께 연락할 방법은 없었다. 그 후 그 손님은 사진관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여권 발급거절을 당하고 여권민원실 근처 사진관에서 재촬영을 하진 않았을까 상상만 해볼 뿐이다. 첫 개시부터 뭔가 찜찜하다.


한번 실수는 병가의 상사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이후로 같은 실수는 두 번 다시는 없었다. (물론 다른 실수를 하긴 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손님께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딸랑~"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을 때쯤 사진관으로 들어온 오늘의 두 번째 손님이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등산복 이너패딩을 티셔츠처럼 입으셨다. 새치가 없는 검은머리, 짧은 스포츠머리지만 얼굴의 주름을 보면 60대로 보였고, 키는 작아보여도 건강하고 단단해 보이는 아저씨였다.

미스터리 오씨아저씨, 이 수식어는 내가 만들었다. 앞으로 전개될 사진관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주연급 배우의 등장이다.

"두둥"

이전 01화 작은 동네사진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