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덜컥 인수한 작은 동네사진관을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웃기고 때론 화도 나고, 뭉클한 사람 사는 이야기입니다. 이곳에 소개하는 모든 이야기는 실화를 기반으로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그날도 나는 중고 사진인화기 매물을 찾고 있었다. 내가 찾고있는 사진인화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포토프린터가 아니다. 은염인화기라는 고전적인 사진인화장비다. 예전의 필름 사진을 생각하면 되는데 종이에 잉크를 분사해서 출력하는 요즘의 잉크젯프린터가 아닌 할로겐화은(silver)이 함유된 감광유제(인화지)에 빛을 비추어(감광) 필름의 이미지를 인화지에 상으로 기록하여 만들어지는 사진이다. 오래된 사진들은 모두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약품의 관리와 취급의 복잡함과 더욱 선명한 컬러의 구현 등으로 은염사진장비들은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붉은색 불빛이 켜져 있는 어두운 암실에서 약품 속에서 집게로 건져낸 사진을 보는 장면을 옛날 영화 속에서 본 기억이 있을 거다. 사람이 일일이 수동으로 작업하는 게 아닌 자동으로 약품 속에 사진을 담가 이미지가 나타나게 하 말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진인화기(기계에 관한 이야기만으로 할 얘기가 많지만 일단 패스한다.) 과거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한 경험 있던 나에게 은염인화기를 통해 만들어진 사진은, 점점 자취를 감춰 사라지기 전에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은 친구 같은 존재였다.
사무실에 남는 공간에 인화기를 들여놓고 내가 뽑고 싶은 사진들도 인화하고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아서 판매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이곳저곳을 뒤지던 중, 검색어인 '인화기'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검색된 사진관 매매 글을 보게 되었다. 사진관의 위치는 지금 사무실이 있는 곳에서 차로 10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판매하고 있어서 신기했지만, 그 글이 올라온 지는 이미 몇 개월 전, 게다가 그 글은 인화기만 판매한다기보다는 사진관 전체를 매매한다는 글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그 인화기를 포함해 카메라, 컴퓨터와 배경, 조명시설까지 다 갖춰줘 있고 12년간 운영해서 어느 정도 거래처와 손님도 있는 영업 중인 사진관을 단돈 500만 원에 매매한다는 글이었다. 인화기만 200만 원 정도에 사려고 생각했었던 지라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 텐데, 운명에 이끌리듯 어느새 나도 모르게 10분 거리의 그 사진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중심상가에서 한 블록 떨어진 인적 드문 삼거리 건널 앞에 위치한 사진관은 한눈에 보아도 작아 보였다.
사진관이라기보다는 후지필름 간판이 붙어있는 사진현상소 같은 느낌이었다.
"딸랑"
출입문에 달 방울 소리에 TV를 보던 사장님은 조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문 앞에 서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외모에 '사진사'와는 조금 달라 보이는 평범한 동네아저씨로 보였다.
"오전에 전화했...."
"아~ 가게 보러 왔군요, 거기 앉으세요"
벽을 따라 서너 명 앉을 수 있을 정도의 선반의자에 앉아 사진관 내부를 둘러보았다. 밖에서 볼 때 왼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계산가 있었고 뒤쪽에는 사진인화기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옆으로 책상 위엔 두 대의 컴퓨터와 그위로 걸려 있는 벽걸이 TV는 컬러가 조금은 틀어진, 딱 봐도 오래되어보이는, 그 시절엔 꽤 비싸게 샀을 것같은 디자인의 TV가 걸려있었고, 양쪽 벽에는 가족사진액자들이 걸려있었다. 안쪽 벽에는 컬러를 바꿔서 내릴수 있는 전동배경지와 좁은 사진관에 세워놓을 공간이 없는 조명들은 로봇팔 같은 장치로 벽에 양옆으로 걸려있었다. 그 아래엔 증명사진 촬영용 의자가 놓여있었다.정말 작은 사진관 안에 알차게 빈틈없이 이것저것 채워져 있었다.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서 나에게 건네준 사장님은 사진관에 관한 이야기들을 꺼내어 주셨다. 2002년에 처음 이곳에 상가건물이 생길때부터 시작한 사진관이었고 핸드폰카메라가 등장하기 이전의 사진관들이 그러했듯 그 당시에는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사장님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던중에 문이 열렸다.
"딸랑"
남자손님 한 분이 들어오셨고 사장님은 바로 손님을 응대하면서 조명의 스위치를 켰다.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한번 쓸어올리곤 바로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사장님 컴퓨터 옆 의자에 앉아서 촬영된 사진의 보정작업을 지켜보았고 나 역시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사장님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모니터 속 손님의 사진이 증명사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인화기가 가동되는 소리가 나고 잠시 후 사진이 인화되어 나왔다. 사장님은 능숙한 솜씨로 커터기로 8장의 사진을 잘라 봉투에 담아 손님께 전해드리고는 2만 원을 받았다.
사진을 건네받은 손님은 급하게 사진관을 나가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 동사무소로 향했다. 사장님은 의자에 앉아 내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마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사진관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오셨다.
그렇게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손님 2명의 증명사진이 뚝딱 만들어지는 걸 목격하고는 머릿속에서 희망계산기를 꺼내 계산을 해본다.
'1시간에 2명의 손님만 와도 4만 원, 사진의 원가는 잉크와 인화지뿐, 하루 8시간을 일한다면 8×4=32만 원?' 한 달은 30일이니 960만 원 ㅎㅎ (정말 말도 안 되는 제멋대로 공식)
그리고 다음날 나는 계약서에 도장을 꾹 찍고 말았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