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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엄마 Oct 23. 2023

2023년 10월, 김동률 콘서트에 가다.

우리 조금만 더 늙어서 만나요.



  몇 해 전부터 콘서트가 끝나기 전 인사로 그가 으레 하던 말이 무색하게, 유례없던 팬데믹으로 인해 4년 만에 그의 콘서트를 볼 수 있었다. 원래도 자주 하지 않던 김동률의 콘서트이지만 이번에는 언제 끝날지 모르던 코로나 사태 속에서 그의 콘서트가 더욱 기다려졌던 것 같다.


  그 몇 년 동안 했던 그의 활동이라고는 고작 몇 달 전 '황금가면'이라는 앨범도 아닌 한 곡을 발표했을 뿐이었기에 그의 콘서트가 2023년 10월에 열린다는 소식은 반가웠지만 꽤나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방송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소통창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있는 그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거의 소식을 전하지 않고 그마저도 툭하면 다운이 되기 마련이기에, 그에 비하면 그의 콘서트 소식은 갑작스럽고 생각보다 무척 적극적인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의 콘서트 소식을 알게 되고 언제나 그렇듯 콘서트 티켓오픈일, 오픈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고등학교 때는 열심히 전화를 하며 콘서트표를 예매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또 약삭빠르고 돈에 눈이 먼 업자들 덕에 몇 시간을 티켓팅에 허비했다. 좌석을 선택하고 결제할라치면, 이미 다른 고객님이 선택하신 좌석이라는 문구가 팝업으로 뜨는 것을 몇 백번 두 눈으로 보고 있자니 적잖이 부아가 치밀었다.


  눈앞에서 몇 천장의 티켓들이 내 눈앞에서 사라져 가고 허무하게 '매진'이라는 글귀를 마주한 순간 허탈해서 웃음이 났었다. 이대로 이번에는 정녕 포기해야 하는가,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콘서트에 가야 하는 것일까 수없이 생각하다가 티켓오픈 다음날 미친 듯이 클릭한 끝에 드디어 2층 좌석을 예매했다. 야호~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만큼 그의 콘서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면 거짓말일 게다. 삶의 무게 속에서 일상에 찌들어 이것저것 하다 보니 멀게만 느껴졌던 그의 콘서트날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깨닫고 깜짝 놀랐으니 말이다. 게다가 콘서트날에 임박해서는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생겨버려서 가기 전까지 고민을 많이 했었고, 내가 갔던 날은 금요일이라 여유 있게 출발한다고 했는데도 평소의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려 도착했을 때는 무슨 정신으로 콘서트장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번 가봤던 올림픽체조경기장이었음에도 그날따라 몇 년만의 시간 때문인지 더욱 크게 느껴졌고 내가  콘서트홀에 들어섰을 때 많은 인파가 이미 모여있는 모습이 감탄스러웠다. 여기저기 자리를 찾아 움직이며 웅성대는 사람들, 콘서트장의 탁한 공기, 빨리 입장하라는 진행요원들의 외침 등이 콘서트장의 긴장감을 더해주었고 겨우겨우 자리를 찾아 내 자리를 찾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기다리던 김동률의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매크로로 인한 불법 암표 사태에 대한 미온적 태도, 소통 부재 등에 대한 그에 대한 섭섭한 마음들은 그가 등장한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들었다. 그를 직접 보지 않는 시간 동안에도 숱하게 CD나 음악 어플을 통해 그의 노래들을 들었지만 여전히 콘서트장에서 라이브로 듣는 노래는 역시 달랐다. 여느 가수들처럼 밴드가 직접 연주함은 당연하고 오케스트라까지 직접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그의 노래들을 듣고 있는 것은 정말 감동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게다가 그의 공연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조명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인데,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조명도 같이 노래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몇십 년 전 그의 공연을 보면서 공연 조명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었을 정도다.


  전람회의 데뷔와 동시에 좋아해서 어느덧 30년 동안 그를 좋아했던 것을 깨달았다. 단발머리 학생이었던 나는 어느새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있고, 파릇한 대학생이었던 그 역시 올해로 딱 50살이 되었다. 나이를 꼭 의식해서 그런 건 아니었는데 이번 콘서트에서 본 김동률은 왠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예전엔 그저 멋진 뮤지션이었다면 이제 같이 늙어가는 친구처럼 느껴졌달까... 대형스크린으로 보이던 그의 얼굴 주름과, 염색해서 더욱 까맣게 보였을 그의 머리카락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것들은 결코 실망이 아니라 친근감이 맞을 것이다.


  맨 처음 전람회라는 그룹을 알았고 라디오에서 수없이 흘러나오던 '기억의 습작'을 들었을 때 내가 이렇게 몇십 년 동안 같은 가수를 좋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끔 주위 사람들로부터 듣는 김동률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을 만큼 그의 노래 중 수많은 곡들이 훌륭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의 전람회 시절 노래들이 좋다. 그 이유는 아마 그 음악들이 단순히 그 이후에 나온 노래들보다 훌륭해서라기보다는 그 노래가 그 노래를 들었던 시절로 나를 데려가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번 콘서트에서도 많은 멋진 곡들을 들었지만 그중 나의 마음을 유독 울린 곡들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꿈속에서'와 누가 뭐래도 전람회 대표곡 '기억의 습작'이었다. 그 노래들을 듣고 있자니 나를 어느새 단발머리 여학생이었던 시절로 데려가주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내가 왜 그토록 수많은 방해요소들을 헤치고 매번 콘서트에 오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고등학교 때부터 그의 공연을 보러 가기 시작하여, 첫째를 낳은 얼마 후 있었던 공연을 제외하고는 모든 김동률의 콘서트를 관람했던 것 같다. 그때도 대책 없이 콘서트표는 일단 예매해 놓고 도저히 안 되겠어서 콘서트 당일엔가 직거래로 정가에 아이를 안고 콘서트표를 넘겼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 시절엔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가서 콘서트를 보고, 이번에도 몇 시간 운전을 하면서까지 그의 콘서트를 보러 가는 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김동률의 콘서트에 가서 그의 노래를 들었지만 결국 그곳에서 나를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30년 전에나, 30년이 지난 지금의 나나 여전히 그의 음악을 좋아하고 듣는 나를 거기에서 만나는 듯한 벅찬 감정이 일어났다. 그동안 나이를 먹고 직장에 들어갔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하루하루 일상에 파묻혀 살고 있지만 그래도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나라는 사람은 없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가 된다. 그의 콘서트에 가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우리 조금만 더 늙어서 만나요.


  

  이번 콘서트 막바지에 김동률이 역시 말했다. 그의 바람이, 그의 약속이 이번에는 꼭 지켜지길 바란다. 오래지 않아 그의 콘서트가 다시 열리고 또 몇몇의 상황을 뚫고 찾아가서 그를 만나고 싶다. 가서 여전히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나를 마주하고 싶다. 30년 동안 꾸준히 좋은 음악을 만들어줘서, 그의 멋진 목소리를 듣게 해 줘서, 그리고 나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음악을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그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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