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정신과에 갔던 날, 의사가 물었다.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나요?"
그날 받은 질문 중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음... 우리 딸이요."
우리 딸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애기 때부터 둘째가라면 서러울 '예민이'였다. 다섯 살까지 통잠을 안 잤고, 낮잠을 자다가 깨면 어김없이 한참을 울었다. 낮잠이든 밤잠이든 깊게 자지 못해서 약간의 소리가 나기만 하면 금방 깨버려서 걔가 잘 때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애기 잘 때 설거지를 한다거나 청소기를 돌린다는 엄마들이 신기하고 부럽기도 했다. 아토피가 심해서 원래도 예민한 아이가 여기저기 가려워서 깨면, 걔는 긁으면서 울고 나는 약을 발라주며 울던 날들이 셀 수 없었다. 낯선 장소에 가거나 낯선 사람을 만나면 일단 울고 봐야 해서 어딜 데리고 가기가 겁났다. 어른들은 '애도 참 별나게 기른다.'라고 말하거나, 상담센터에 데리고 가라는 말도 했었다. 그래서 때론 '나는 이 아이를 키우기에 그릇이 작나?',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는 걸까?'라는 자책을 하기도 했다.
그랬던 아이가 언젠가부터 '해피해피(happy happy)'가 되었다. 내 기억으론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하던 나이, 한 여섯일곱 살 정도 되던 때부터 많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 같다. 마치 '그동안 제가 내준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했으니 이제 보상을 줄게요.'라는 듯 애기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엄마 얼굴만 보면 항상 방글방글 웃고 매일 행복하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나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해준다.
최근에 너무 힘들어했을 때 역시 첫째는 누구보다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어쩌면... 어쩌면... 우리 딸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숨 쉬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공황장애 때문에 힘들어하니 회사에 가지 말라고 당부했던 것도, 고충 상담사가 전화해서 공포를 느꼈을 때 옆에 있던 사람도, 정신과에 갈 때마다 항상 동행해준 사람도 첫째였다. 내가 약간이라도 숨쉬기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1초도 안돼 자동으로 '괜찮으세요?'라고 물으며, 약 먹었는지 확인하고 약을 챙겨주기도 했다. 어디서 공황장애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었을 텐데 신기하게 내가 어딜 나가야 하는 상황이면 '엄마, 제가 같이 가드릴까요?', '엄마, 혼자 가기 무섭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게다가 '엄마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에요.', '전 엄마를 믿어요.'라거나 '엄마랑 있으면 너무 행복해요.', '엄마랑 대화하면 너무 재미있어요.'와 같은 말을 해주곤 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던 내가 여전히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줬다.
누군가는 '어린애한테 무슨 위로를 받아.'라고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의사가 질문한 순간, 우리 딸 얼굴 밖에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이토록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누구보다 친구들과 엄마를 좋아했지만 정작 그들은 내가 힘들 때 곁에 있어주지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지금의 남편을 포함한 몇몇의 남자들이 과연 이 아이처럼 그저 순수하게 나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해 주었을까? 부끄럽지만 나는 우리 딸에게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배웠다. 가끔 '신이 존재하여 나를 가엽게 여기셔서 이 천사를 나에게 보내준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
오카다 다카시의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라는 책에 등장하는 안전기지라는 개념을 읽으며 우리 딸이 떠올랐다. 어떤 치료기법보다 핵심 개념으로 등장하는 '안전기지'란 안정감을 회복시키는 존재이며 어느 때든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존재이다. 내가 지금처럼 다시 살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안전기지인 우리 딸이 옆에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아이를 낳았지만, 그 아이가 나를 살게 해 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딸에게 가끔 '생명의 은인'이라고 부른다.
며칠 전 자려고 누웠는데 첫째가 다가와 말했다.
"엄마가 다시 좋아져서 다행이에요. 엄마, 이제 상처받지 마세요."
눈물이 베개를 타고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