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꼴이 아닌 모습으로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얼마나 지냈는지 모르겠다. 기운을 내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하면 내가 예전처럼 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몰랐고, 솔직히 그러할 의지도 없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이제와 돌이켜보면 나를 구렁텅이에서 건져 준 몇 가지가 있었노라고 기억한다.
다른 날처럼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시선을 멈추게 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바로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였다. 평소 오은영 박사님을 좋아해서 '금쪽같은 내새끼'는 넷플릭스로 가끔 봐왔는데 연예인 특혜라는 생각 때문에 거부감이 들어서인지 그 프로그램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팬까지는 아니지만 그녀의 노래 중 많은 곡을 좋아했던 가수 이수영이 나오고 있어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평소 활발하고 유머러스한 모습과는 달리 출연하자마자부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그녀는 공황장애를 오래전부터 앓고 있었고, 그런 탓에 한 번도 만족스러운 무대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증상이 심해 보였는데, 그건 그녀의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많은 연관이 있어 보였다. 오은영 박사님이 어린 시절의 이수영을 가리켜 '전쟁고아'같다고 표현을 하셨는데, 그 어린아이가 받았을 상처와 힘겨운 삶이 감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마지막에 어머니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부탁에 망설이다가 결국 한 마디도 못하고 엎드려서 엉엉 우는 모습을 보고 나도 덩달아 따라 울었다. 그냥 흐르는 눈물이 아닌 통곡을 하듯이 마치 내가 그녀가 된 듯이 울었다. 같은 공황장애라고 하더라도 같은 직업군도 아니고 어린 시절의 상황이 같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그 무렵 집 근처에서 클래식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자체에서 무료로 개최하는 야외공연이었다. 평소에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연주를 한다는 그룹을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그들의 연주를 본 적이 있었는데, 너무 감동받아서 눈물이 났었다. 그때 들었던 곡은 들어본 적 없는 대중가요였는데, 궁금해서 찾아본 원곡보다 그들의 클래식 버전이 훨씬 듣기 좋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몸도 성치 않고 날씨도 비가 오다 말다 하여서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애기들한테 가자고 준비도 시켜놓은 상태라 결국 갔는데, '안 갔으면 어쩔 뻔했나.'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곡도 곡이지만, 그들이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 자체가 무척이나 감동스러웠다. 나의 무기력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일에 그렇게나 열정적으로 임한다는 생각이 부럽게 느껴졌던 걸까.. 눈물이 날만한 곡이 아니었는데도 마스크 사이로 몇 번을 눈물을 닦았는지 모르겠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이 다시 읽고 싶어 졌다. 평소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 분야 책들을 가끔 읽는데, 유독 가슴에 더 와닿았던 책이었다. 몇 년 전 처음 읽었을 때 내용이 좋아서 소장하고 있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 뒤로 꺼내보진 못했었다. 몇 년 만에 다시 읽는데, 역시나 앞에 몇 장부터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들었다. 읽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책장을 덮고 한참을 울다가 다시 읽기도 했다. 마치 저자는 나의 분노와 억울함과 절망과 같은 심정을 알고 있다고, 당신의 감정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냉정했던 정신과 의사며 섣불리 조언을 해주던 사람들의 태도는 잘못된 거라고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고백하건대, 어느 것이 먼저 일어난 일인지, 어느 것을 먼저 했는지 그것에 관한 기억은 정확히 나질 않는다. 머리에 심한 충격이 가해진 것처럼 그때의 일들은 안개가 낀 것처럼 나에겐 그저 뿌옇게 기억될 뿐이다. 이수영의 TV 프로그램과 클래식 공연, 그리고 정혜신의 책은 얼핏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나에겐 모두 고마운 것들이었다. 울고 싶어 그것들을 핑계 삼아 울었는지, 순수하게 그것들로 인해 울게 되었는지, 그건 누가 알겠냐만... 분명한 건 그렇게 실컷 울고 나니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그것들을 경험한 후, 나는 조금 더 얕은 곳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