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폐인(廢人)'이었다.
살면서 어찌 매일 행복할 수 있을까. 가끔씩 우울감이 밀려와 일주일, 혹은 열흘, 그것도 아니면 더 오래 전반적으로 기분이 다운되기도 했었던 적은 무수히 많았지만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확연히 달랐다. 예전에는 감정상태를 그래프로 그린다고 생각하면 바닥을 때릴 듯 말 듯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치고 올라갔다면 그때는 바닥을 뚫고 아래로 내려간 것 같았다.
공황장애에도 전이(轉移)라는 게 있는 걸까? 정신과 약을 꾸준히 먹자 공황장애의 흔한 증상인 숨쉬기 힘들다거나 가슴 두근거림과 같은 증상은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다른 증상들이 새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의사가 써준 진단서에 '공황장애'와 더불어 적혀있던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보고 의아함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상태는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울증 환자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그보다 큰 문제는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먹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그 무엇에 대한 호기심도 없어졌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침대 위였고, 엄마라는 역할의 최소한의 의무(가령 애기들 밥을 차려준다던지, 학교에 데려다준다든지)를 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 외에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책이라도 볼까 해서 펼치면 이상하게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려 그만두곤 했다. 평소에 잘 보지 않던 TV 채널을 여기저기 돌려보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잠자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또 다른 증상은 외출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산책을 하라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강아지도 산책시킬 겸 나가려고 하면 혼자서는 도저히 용기가 안 나서 항상 딸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운전을 좋아하는 내가 아이들을 태우고라면 그래도 10분 거리에 있는 마트 정도는 갈 수 있겠는데, 나 혼자 운전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꼭 초보운전자처럼 덜덜 떨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더 안 나가게 되고, 더 집에 머물게 되었고, 그럴수록 사람들 만나는 게 부담스러웠다. B팀장님과의 약속이야 썩 편한 사이는 아니어서 그랬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지만 거의 30년을 알고 지낸 친구가 외국에 몇 년 나간다는데 마지막 인사를 못하고 보낸 미안함은 지금도 문득문득 나를 괴롭힌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하고 물건을 거의 두고 다니는 법이 없던 내가 자꾸 뭘 흘리고 다니기도 했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간 걸 알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별 거 아닌 일에 화가 나기도 했고, 별 거 아닌 일에도 잘 웃던 내가 웃음을 잊은 채 거의 무표정으로 지내고 있었다. 첫째가 '엄마가 요즘엔 잘 안 웃는다.'라는 뼈 때리는 말로 정신이 번쩍 들긴 했지만, 여러 번 미안하다고 사과는 하면서도 억지로 웃고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렇게 포커페이스도 아니고 연기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기에....
어느 순간부터 휴대폰 벨소리만 들려도 깜짝깜짝 놀라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원래도 전화보다는 문자로 말하는 게 편하긴 했지만 마음이 한없이 약해진 상태에서 이루어진 팀장님들과 고충상담원과의 몇 번의 통화가 폰포비아 증상을 더욱 강화시켰던 게 아닌지 추측해본다. 그리하여 휴대폰을 항상 '무음'으로 설정해놓고, 꼭 해야 하는 통화가 아니면 모른 척 넘어가기도 했다. 문자 하나에도 답변을 충실히 하는 나로서는 이것도 상당한 변화라면 변화였다.
무엇보다 나를 정말 힘들게 했던 건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필요가 있긴 한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세상에 있기는 한가?라는 의문들이었다. 부장의 부당한 지시에 항의도 못하고, 뭐라도 해볼까 싶어 용기를 겨우 꺼냈던 직장 괴롭힘 신고조차 못하는 내가 정말 한심했다. 부장을 원망했다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억울함이 들었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머릿속을 한참을 헤집어놓으면 뭘 하지도 않았는데 막노동이라도 한 것처럼 지쳐버리곤 했다.
산후우울증이니, 육아 우울증이니... 그런 것도 남의 일이었었는데, 내가 이런 증상을 겪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집 앞에 찾아온 팀장도 '그렇게 밝은 애가 무슨...?'이라거나 회사 메신저가 항상 꺼져있다며 궁금해서 전화한 예전에 같이 일했던 다른 부서 동료도 '그런 건 좀 평소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걸리는 건데..'라며 웃음 섞인 소리로 거짓말하지 말라는 듯한 그들의 반응도 무리는 아니다. 나 조차도 나의 그런 증상들이 낯선데 그들은 오죽할까.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내가 내가 아니었다.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순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