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일한 지도 어느새 2년이 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 건 그녀의 선택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남동생과 옥탑방의 작은 인쇄소에서 일하는 엄마. 엄마의 임금만으로 대학교에 진학하는 건 무리였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선택한 것은 체인 제과점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빵 만드는 일을 좋아했기에 선택한 진로였다. 그녀는 장래에 자신의 빵 가게를 차리는 것이 목표였다. 새벽 일찍부터 쉴 새 없이 빵을 만드는 일정에도 그녀는 지칠 줄 몰랐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같은 계열사의 생산 공장으로 이직하게 됐다. 주간 근무와 야간 근무를 일주일 단위로 반복하는 고된 작업이었지만 제과점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준다고 했다. 그녀는 아직 젊기에 그 정도 고생은 감수하기로 했다. 쉬지 않고 일하면 원하던 빵 가게도, 좋은 집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근무를 하던 어느 날, 동료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어제 소식 들었어?”
“아뇨? 무슨 소식이요?”
“아니, 어제 벨트에 손 낀 사람 있었대. 절반이나 들어갔댄다.”
“어떡해요... 많이 다쳤대요?”
“다행히 부러지거나 잘리진 않았는데, 이놈들이 집합을 시켜서 30분이나 잔소리를 해댔댄다. 누가 책임자냐고. 작업 지시한 사람 찾아내겠다고 난리가 났었대.”
바쁘게 일하던 손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더 기가 막힌 게 뭔 줄 아니? 다친 사람도 30분 동안 같이 서있었대. 그러고 나서 병원 간다고 하니까 보건실에서 얼음찜질만 시켰다 그러던가? 아무리 파견이래두 다친 사람을 병원에 안 데려가는 게 말이 되냔 말이야. 어휴... 여기서 다치면 다 내 잘못이고, 다 내 책임이라니까.”
종종 들려오는 사고 소식은 그녀를 잔뜩 긴장시켰다. 평소에도 수십 키로 포대를 지고 옮기는 일을 하다가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질 뻔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넘어지는 것은 오히려 나았다. 매일 만지는 기계는 무척 크고, 차갑고, 빠르고, 힘이 셌다.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음식들과, 날카로운 칼날로 저어지고 있는 소스를 바라볼 때면 정체 모를 공포심이 몰려오기도 했다. 가끔은 내가 기계를 조작하는지, 내가 기계에 딸려가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정신없이 일하는 날은 신체가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음료를 픽업해서 계단을 올라가다가 음료를 모두 엎을 것처럼, 도미노를 세우다가 모두 넘어뜨릴 것처럼, 핏빛 상상은 고개를 내저어도 머리에서 저절로 재생되고 있었다. 기계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그럼에도 매일 일터에 나와야 하는 무력감이 공존하는 일상. 그럼에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라는 다짐을 속으로 말하고, 또 말하는 것뿐이었다.
그날은 야간 근무 날이었다. 항상 사람이 부족한 야간 근무는 몸도 마음도 피로했다. 평소 ‘씩씩이’로 불릴 만큼 밝고 열정적인 그녀였지만 힘든 건 다를 바 없었다. 특히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소스를 배합하는 일은 남자 직원들도 두 명씩 짝을 지어하던 일인지라 유난히 버거웠다. 사람은 왜 이리 부족하고, 포대는 왜 이리 무겁고, 시간은 왜 이리 느리게 가는지. 퇴근을 두 시간 앞둔 오전 6시였다. 주간 근무 때 일이 밀리지 않으려면 오늘 배당받은 업무를 두 시간 안에 마쳐야 했다. 묵직한 소스 포대를 열어 배합기에 넣을 준비를 했다. 그녀와 같은 조로 배정된 직원은 부지런히 소스의 재료를 나르고 있었다. 그래야만 때 맞춰 해낼 수 있는 작업량이었다. 배합기까지 재료를 끌고 가서 1m가 넘는 통에 재료를 넣는 일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 들어도 들어도 낯선 묵직함. 그러나 익숙해져야만 하는 일이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씩씩하게 배합기 뚜껑을 열고, 상체를 잔뜩 숙여 깊은 배합기에 재료를 쏟아부었다. 조금이라도 재료를 더 넣으려고 허리를 숙여보던 그녀. 무거운 재료들이 우수수 쏟아지며 만들어 낸 반동에 그녀는 휘청- 하고 중심을 잃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배합기로 빨려 들어갔다. 찰나였지만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남겼다. 비상 정지 버튼을 눌러 달라는 짧은 구조 신호였다. 소리를 듣고 동료가 달려왔을 때, 그녀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녀의 동료들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그녀의 흔적을 수습했다. 방금까지 함께 일하던 동료를, 내가 일하던 기계에서 꺼내 수습해야 했다. 비참했다. 끔찍했다. 참혹했다. 수습한 직원들에게는 일주일의 휴가가 주어졌고, 시신을 수습하지 않은 직원들은 다음날 곧장 출근해야 했다. 그녀를 집어삼킨 배합기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고, 다른 배합기는 바쁘게 돌아갔다. 배합기 주변 바닥에는 여전히 그녀의 선혈이 남아 있었다. 회사는 어제의 일이 지독한 악몽이었다는 듯 말했다. 이제 모두 악몽에서 깨어나 다시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그들을 다독였다. 겨우 하루였다. 그녀가 떠난 건 고작 하루 전이었다. 그들은 삼켜지지 않는 울음을 몰래 흘렸다. 그녀가 아니라 나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그럼에도 또 이곳으로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만약 이곳을 떠나더라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의 목을 졸라왔다. 그날도 샌드위치를 만들어야 했다. 눈물이, 두려움이, 분노가 묻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이물질이 발견되면 또다시 집합일 테니.
회사는 언제나 그랬듯,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원인을 잘 파악하겠다. 작업 환경을 개선하겠다. 시설에 투자하겠다. 라며 준비된 사과문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안전 수칙을 어긴 것은 직원들이라며 넌지시 책임을 전가했다. 허울뿐인 2인 1조 수칙과 출근하면 곧장 서명해야 했던 안전교육 명부는 회사가 준비해둔 무기였다. ‘임직원 가족 여러분’이 다치거나 죽었을 때 꺼낼 수 있는 최선의 무기. 사람의 목숨 값보다 저렴한 가성비 좋은 무기. 그렇게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작은 죽음들을 소리 소문 없이 지워온 무기. 그럼에도 여전히 잘 통해서 좋은 무기. 그 앞에서 노동자들은 한없이 무력해졌다.
조금의 애도와 죄스러움도 없는 것은 경영자의 미덕인 걸까. 그들의 행태를 보아하니, 그녀가 죽는 바람에 회사가 안게 된 손해에 대해서는 골똘히 생각하고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앞으로 회사는 눈에 띄게 큰 금액을 기부하거나 노동자 권익을 위한 캠페인을 몇 차례 벌이며 시선을 돌리려 할 것이다. 변화한 자사를 지켜봐 달라며 그녀의 유가족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비굴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살며시 그녀의 자리에 새로운 직원을 채용할 것이다. 그들에게 *노동자란 ‘불사’의 존재이니 말이다. 죽지 않아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 죽지 않아서 사라지지도 않는 그녀의 자리는 또 다른 '불사'의 존재가 채울 것이다. 좋은 집을 마련하겠다며, 아이의 등록금을 대겠다며, 짐이 되기 싫어 스스로 노후 자금을 만들겠다며 말이다. 그리고 그녀처럼 씩씩하게, 성실하게 일할 것이다. 우리는 늘 그래 왔으니까.
*인용_ 존 버거, 제7의 인간(원제: A seventh man), 2004
- 작업 환경을 묘사한 부분은 모두 유족과 동료들의 인터뷰에서 인용했으며, 그 외 부분(대화 상황 가정, 심리 묘사 등)은 사실과 관계없는 글쓴이의 상상과 추측으로 채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