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을 부정하기보다 내 인생을 긍정하기로 했다.
다 군으로 응시한 대학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앞서 본 가,나 군 대학도 모두 불합격에 예비번호를 받았다. 가 군은 23번이었고 나 군은 비밀유지로 예비번호를 알려주지도 않았다. 낮은 순번대의 예비번호는 입시가 처음인 19살의 나에게 희망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불합격의 절망을 안겨주기에도 충분했다.
세 군의 대학 모두 나의 순번까지 예비번호가 빠지지 않고 나의 3년간의 입시생활은 그렇게 끝을 맞이하는 듯 싶었다. 그렇게 계획에 없던 재수를 해야하나 생각이 드는 즈음에 나는 또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정시 추가모집에 합격이 된 것이다.
보통 정시 가,나,다 군의 일정이 끝나면 그 해의 입시가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몇몇 대학은 다시 한 번 추가모집을 한다. 수시, 정시모집이 다 끝나고도 예상 모집인원 수에 결원이 발생하면 대학은 그 빈틈을 메우려 한다. 나 또한 우울함과 막막함, 인생에 대한 부정과 허탈함에 뒤덮인 와중에 추가모집에 지원을 하였다. 그 중 한 곳으로부터 합격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 마저도 처음에 예비번호를 받았다.) 추가모집은 대개 한 두명을 뽑기 때문에 경쟁률이 1:300에 육박한다. 등록의사를 밝힌 뒤에, 마냥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구나 생각하면서도 이 결정이 맞는지 나는 뇌 한켠에 방을 내어 계속 고민하였다.
학창 시절 동안 지켜온 꿈인가, 당장의 재수 탈출인가를 고민하던 나였다. 이러한 고민을 한다는 것부터가 내 꿈에 진심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재수를 한다해도 돈도 시간도 많이 드는 미대 입시를 너는 다시 할 것인가, 다른 진로를 찾는다면 1년 이내에 다시 찾을 수 있는가, 만약 찾는다해도 이전의 너보다 더 노력할 자신이 있는가, 다시 합격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너는. 내 머리 속에 내가 나에게 묻는 무수한 질문들이 결정을 하기 전에도 한 후에도 나를 괴롭혔다.
학교를 다니면서 통학을 하는 지하철에서도, 수업을 듣는 강의실에서도, 핸드폰으로 유투브를 보는 와중에도 줄곧 생각하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당위성을 만들었다.
3년간 입시를 준비하면서, 아니 내 학창시절 동안의 노력들이 불합격이라는 이름 아래에 아무것도 아니게 되버리는 것이 나는 용납할 수 없었다. 내 꿈은 절대 입시의 합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꿈을 부정하기보다 내 인생을 긍정하기로 했다. 불합격이라는 일순간이 아니라 내가 매 순간 노력해온 인생의 시간을 더 바라보기로 하였다. 이렇다고 해서 당장의 내 모든 불안감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뿐이라도 이렇게 붙이니까 한꺼풀 마음이 놓였다.
이 때로부터 1년의 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이라고 해서 명확한 진로를 정한 것은 아니지만, 동아리도 들어가고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면서 지금에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어떤 좌절을 겪을지는 모르지만 이 때의 내가 어떻게 이를 극복했는지 기억한다면 그 순간에도 나는 내가 해온 노력들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