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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들을 춤추게 하는가

춤이 좋아 광주까지 간 내향인의 댄스 탐방기.

by 잡이왼손

2021년 하반기를 강타한 댄스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

각종 유행어와 밈들을 생산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너나 나나 박수를 짝짝 쳐대고 팔을 휘적거리게 만들었다.


나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춤에 매료되었고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그 여운을 잊지 못한 채 유튜브의 바다를 헤엄치며 각종 춤 대회의 영상들을 찾아다녔다. 댄서들은 무대를 날아다녔고 사람들은 댄서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감탄하며 환호성과 박수를 보낸다. 유튜브 영상은 왠지 모르게 방송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편집이 없는 날 것이 영상이라 그런 것일까 이유들을 생각했지만 그건 분명 댄서들을 둘러싸고 있는 관객들 때문일 것이다.


대회의 무대는 대부분 평평한 바닥에서 진행된다. 단상이 있는 공간이 있어도 그곳은 음악을 책임지는 DJ가 자리를 잡는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무대로 바꾸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이다. 대회에 참여한 사람들(댄서이든 관객이든)은 중앙을 중심으로 빙 둘러 바닥에 앉거나 주변을 에워싼다. 그럼 자연스레 탈춤 공연처럼 제4의 벽을 허물어 댄서와 관객을 소통하게 만든다. 댄서들은 관객의 코앞까지 와서 호응을 유도하고 사람들은 그 호응에 반응하여 소리를 질러주거나 어떨 때는 뛰쳐나와 춤을 같이 추기도 한다. 영상을 보는 내내 무대를 보는 게 아니라 이웃집 잔치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댄서가 관객이자 관객이 댄서가 되어 그들이 만들어내는 순간은 너무나 흥미로웠다.


그래서 직접 보러 떠났다. 인천에서 광주로.


광주에서는 매년 '빛고을댄서스'라는 팀에서 배틀 라인업이라는 댄스대회를 개최한다. 2014년부터 건전한 청소년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스트릿댄스 장르 대중화를 위해 매년 개최하고 있는 행사로, 말이 댄스대회이기는 하나 힙합, 팝핑, 왁킹, 프리스타일 등 스트릿 댄스의 여러 장르 부문들이 한 데 모이기에 댄서들 사이에서 이 대회는 '댄서들의 명절'이라고 불린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영상들을 보면 댄서들이 서로서로를 다 알고 친해서 터지는 웃음 포인트들이 있다. 그래서 가끔씩 명절에 친구네 집에 와서 내가 모르는 친척들 사이의 대화에 어색하게 하하하 웃고 있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게다가 '빛고을' 댄서스라니, 광주의 순우리말 같은 이름이 더욱 댄서들의 명절 같아 피식 웃는다.







대회장에 들어가서 느낀 감상은 이러했다.

1. 음악소리가 크다.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소리보다 진동이 더 크게 느껴졌다. 공기를 통해 들리는 음악보다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진동이 먼저 "여기서부터 대회장입니다." 하는 문장을 머릿속에 내던진다. 내 목소리도 한 30db 정도 올라간다.


2. 모두가 리듬을 탄다.

갑자기 옆에 계시던 스태프분이 팔을 막 돌리다가 팟 멈춘다. 순간 흠칫-한 나지만 주변에 그 누구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 하나 없다. 아 여기 다 춤추는 사람들이지. 스태프분들도 다 댄서라는 사실을 순간 망각한 나였다. 하나 둘 빼고 다 음악에 맞춰 어깨를 흔들거나 무릎을 구부리며 두둠칫거린다. 이것이 댄스 대회의 풍경이구나.


관람객 티켓을 받은 나는 짐을 따로 보관할 곳이 없어 참가자분들이랑 같이 짐을 보관해야 했다. 대기실에 들어간 나는 본능적으로 주변의 눈치를 살핀다. 이틀만 있다 갈 건데 잠옷부터 노트북에 기차에서 읽을 책까지 바리바리 싸매 터질 듯 한 백팩을 멘 나는 잘못한 거 하나 없는데 뭔가 찔려 쭈뼛거렸다. 다행히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고 댄서분들이 각자 연습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는 풍차마냥 팔과 고개를 계속 돌리고, 또 누구는 컴퍼스처럼 다리를 찢고 있고, 중앙 의자엔 빡센(?) 화장에 유광 가죽의 옷을 입고 의자에 다리를 꼬고 꼿꼿이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분도 계셨다. 마치 도끼가 날아드는 장애물 달리기를 하듯이 열심히 대회를 준비하는 댄서분들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까 요리조리 피해 가며 짐을 두고 나왔다. 분명 기가 죽을만한데 그런 댄서들 사이에 나도 모르게 목으로 리듬을 타며 공연장에 들어갔다.


3. 박수소리는 쉴 새 없이 들린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장르별 예선이 치러지고 있었다. 한 장르당 A, B, C조부터 많게는 Z조까지(알파벳을 넘어 가, 나, 다가 있는 장르도 있었다) 조별로 3명씩 동시에 나와 30초간 춤춘다. 무대 중앙에 3명의 저지(심판)들이 각자 한 명씩 총 참가자 80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을 그 짧은 시간 안에 모두 평가한다. 전국의 수백 명의 사람들이 광주에서 30초 동안 춤을 추기 위해 모였다. 그 사이에서 오직 16명만이 본선에 진출한다. 순간 입시 시절이 오버랩되어 내 그림도 수백 점의 다른 그림들 사이에서 30초도 안 되는 순간에 점수가 매겨진 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 잔혹함의 일면에도 그들은 춤 추는 동안 행복해 보였다. 공연장에 끊임없이 환호와 박수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그 짧은 30초 사이 시작부터 끝까지의 순간에 환호와 박수소리가 계속된다. 무대 앞뒤 좌우를 빼곡히 채운 수많은 댄서들이 서로가 서로의 30초를 빛나게 만든다. 이 대회는 어떤 대학의 시험도 자격증을 따기 위한 테스트도 아니기에 서로가 서로를 기꺼이 응원하고 박수칠 수 있다. 뮤지컬이나 영화를 볼 때와 달리 계속 댄서에게 호응을 해주는 것이 댄스의 맛을 살려주는 에티켓이다. 나도 처음에는 어정쩡했지만 내가 그들의 춤을 응원하면 그들도 나를 응원을 해주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맛을 느낄 수 있는 무대는 흔하지 않다. 만약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무대를 볼 수 있다면 기꺼이 응원하고 응원받자. 짜란다 짜란다 짜란다



참가자 중 춤추는 도중에 목을 다쳐 깁스를 하고 돌아온 분이 계셨다. 하늘색 셔츠를 입어 목에 두른 하늘색 깁스가 오히려 어색하지 않았다. 내가 만약 다쳤으면 "암, 내 몸이 더 소중하지"하고 곧바로 포기했을 텐데 그분은 꿋꿋하게 30초를 다 채웠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것이 스포츠 정신인가 생각하며 뭐가 그토록 그를 춤추게 만든 건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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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굳이 피상적이고 허접한 이유들을 나열하지 않아도 나는 안다. 그냥 춤이어서 좋은 것이다. 나도 춤이 너무나 좋아서 "맨날 반에서 공부만 하던 내가 중학교 졸업무대에선 댄스 팀을 이끄는 리더?!"와 같은 라노벨 제목 한판 뚝딱 지을 것 같을 일을 벌이기도 했다. 내가 꽂힌 춤은 셀럽파이브의 "셀럽이 되고 싶어"였다. 10대들이 좋아하는 여타 아이돌도 아니고 개그우먼 5명이서 색색깔 빤짝이 옷을 입는 그 춤을 꼭 추고 싶어 친구 4명을 1주일 동안 꼬드겨 팀을 만들었다. 한 달 내내 주말까지도 학교에 모여 연습을 했고 결국에 아이돌 춤이 판치는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다(뇌피셜).

그때의 내가 왜 그리 춤에 진심이었나 지금 생각해봐도 결국엔 춤이 좋아서라고 귀결되기만 한다. 중3에서 고1로 올라가는 공백기가 너무 지루해서? 졸업하기 전에 친구들과 좋은 추억 하나 만들고 싶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이유는 없다.

아무튼 춤이 좋아서. 쓰다 보니 춤에 대한 내 사랑을 고백하는 글이 되어버렸지만, 내가 그날 본 하늘색 깁스의 그분도 나와 같았을 것이다. 이 날을 떠올리면 내가 나중에 춤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릴지라도 다시 찾았을 때 싫어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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