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정지해 있는 것은 없다. 멈춰있는 것 같아 보이는 것도 멈춰 보일 뿐 땅 속에서 씨앗의 발아도 새싹에서 생장을 하려고 움트는 식물들도 모두 눈에 띄게 성장하지 않아도 조금씩 변한다. 2010년대만 하더라도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안전'한 삶은 없다. 굴뚝 청소부가 더 인공지능에서 안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그것은 누구도 장담 못한다.
이런 시대, 피조물이 신이 되고 싶어하는 시대에 왜 말씀을 읽냐고 말한다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광을 보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난 정작 시편과 이사야서를 좋아한다. '골짜기 마다 돋우워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길이 평지가 될것이요.(이사야 40장 4절)'라는 말과 '너희는 이전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반드시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낼 것이라(이사야 43장 18~21절) 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의 가슴에 감동을 주는 글은 다 그만의 힘이 있다. 우리에게 어느 시대에나 사람의 삶은 힘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대를 막론하고 힘이 되는 글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듯 하다. 나는 그 위로를 성구에서 받는 것 뿐이다.
사람들은 '때'라는 게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바꾸는 것은 나의 능력을 힘입은 고자세가 아니라 나에 능력에 더해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大天命)임을 알고 '최선을 다하는' 겸손과 인내이다. 꽃이 필 때가 다 다르듯 다 잘될 때가 다르다. 골짜기가 돋우워지고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고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하게 되는 것은 광야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더 나아가 내 삶의 길을 터준다는 말씀이기에 더 마음이 간다.
광야에서 우리는 홀로 어둠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때 누군가 나와 함께한다는 그 것 하나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세상에는 정지해 있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내 믿음과 삶도 성장해 나가야 한다. Ai는 결국 21세기의 바벨탑이 될 위험을 갖고 있는 고위험의 테크놀로지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지만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우리 삶이 겸양과 미덕을 더 갖추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