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진짜일까

지원자와 고용자,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단 하나의 기준

by Lee

테크 업계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 세계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것들이 자주 빗나간다.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이 실제로는 팀을 몇 번이나 키워본 창업가일 수 있고, 반대로 말끔한 복장과 유창한 발표로 분위기를 장악하는 사람이 실무의 핵심은 전혀 모를 수도 있다.


처음에는 나도 자주 헷갈렸다.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봤고, 빠르게 답하는 사람에게 실행력을 느꼈다. 자신감 있는 태도에서 묘한 안정감을 읽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사람을 안심하게 만드는 말과,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의 말은 서로 전혀 다르다는 것을.


특히 테크 업계에서는 그 차이가 더 교묘하다.


이곳에는 늘 그럴듯한 말이 떠다닌다.

혁신, 실행력, 최적화, 확장성, 애자일, 피벗, 업데이트.

어떤 사람들은 이런 단어를 아주 능숙하게 사용한다. 잠깐 듣고 있으면 마치 이미 절반은 해낸 사람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 말들이 실제로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공기일 때가 많다는 점이다.


“됩니다.”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 부분은 다음 버전에서 해결하면 됩니다.”

“일단 가시죠.”


이런 말은 빠르다.

너무 빠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유능해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여러 번 부딪히고 나면 보이기 시작한다. 빠른 결정과 정확한 이해는 전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어떤 사람들은 상대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결론부터 낸다. 질문을 듣는 순간 이미 자기 머릿속에 준비된 답을 꺼내 든다. 상대가 어떤 맥락에서 그 질문을 던졌는지, 어떤 제약 안에 있는지, 무엇을 진짜 걱정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빨리 답하는 것이다. 빨리 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것이다.


한동안은 그런 태도를 실력이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건 실력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정확히 이해하기 전에 먼저 말하는 습관. 책임질 준비 없이 낙관하는 습관. 틀렸을 때는 “상황이 바뀌었다”거나 “원래 스타트업은 그런 것”이라고 말하며 빠져나가는 습관.


그때부터 사람을 보는 기준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스펙보다 다른 것을 보게 됐고, 말솜씨보다 다른 것을 듣게 됐다. 그리고 결국 꽤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기준을 갖게 됐다.


내 말을 끝까지 듣고, 그것을 자기 언어로 다시 말할 수 있는 사람인가.


지금은 이 기준이, 누군가를 믿을지 말지를 판단하는 데 가장 강력한 필터가 됐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기준이 한쪽에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원자를 판단할 때도 이 기준은 유효하고, 회사를 판단할 때도 똑같이 유효하다. 고용자와 지원자는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지만, 결국은 같은 것을 보고 있다.


이 사람은 정말 이해하고 있는가.

이 사람은 말한 것에 책임질 수 있는가.


고용자의 관점: 왜 어떤 지원자는 불안한가


채용 과정에서 많은 지원자들은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성과를 말하고, 기술 스택을 정리하고, 문제 해결 경험을 어필한다. 물론 그것들은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로 함께 일할 사람을 판단할 때는 생각보다 다른 장면이 오래 남는다.


가령 질문을 던졌는데, 지원자가 질문을 끝까지 듣지 않는다.

질문의 맥락보다 먼저 답을 꺼낸다. 내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보다, 자기가 준비한 답변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밀어 넣을 수 있는지에 더 집중한다. 이런 지원자는 대체로 비슷한 인상을 남긴다. 많이 준비한 것 같지만 이상하게 불안하다. 말은 유창한데, 같이 일하는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사람은 질문에 반응한 것이지, 질문을 이해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지원자는 다르게 반응한다.

질문을 듣고 잠깐 멈춘다. 그리고 자기가 이해한 바를 자기 언어로 다시 정리한다.


“그러면 지금 질문의 핵심은 제가 이 기능을 만들 수 있느냐보다, 불확실한 요구사항 안에서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했는지를 보시려는 거죠?”


이런 답변을 들으면 바로 느껴진다.

아, 이 사람은 면접을 통과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이 대화의 목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구나.


고용자의 입장에서 신뢰가 생기는 순간은 바로 여기다.

지원자가 질문을 자기 언어로 다시 정리해준다는 것은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상황을 구조화할 줄 안다는 뜻이고, 상대의 의도를 해석할 줄 안다는 뜻이며, 무엇보다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갈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회사 입장에서 정말 위험한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듣지 않는 사람이다.

이해하지 않은 채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다.


실무에서는 정보가 늘 불완전하다.

지시도 완벽하지 않고, 요구사항도 자주 바뀐다.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정답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불완전한 입력값 속에서도 핵심을 다시 정리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고용자는 결국 그런 사람을 찾게 된다.

많이 아는 사람보다, 정확하게 듣고 정확하게 다시 구성할 수 있는 사람을.



지원자의 관점: 왜 어떤 회사는 들어가면 안 되는가


흥미로운 것은 이 기준이 거꾸로도 정확히 작동한다는 점이다.


지원자 역시 회사를 평가해야 한다.

연봉, 복지, 직함, 기술 스택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다.


이 회사는 나를 제대로 이해하려 하는가.

이 리더는 내가 하게 될 일을 자기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가.


면접을 보다 보면, 위험한 회사들은 의외로 빨리 티가 난다.

지원자의 말을 듣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듣지 않는다. 답변을 끝까지 듣기 전에 이미 평가를 내려버린다. 혹은 직무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추상적인 단어만 반복한다.


“주도적으로 하시면 되고요.”

“오너십 있게 보시면 됩니다.”

“스타트업이라서 유연하게 다 잘하셔야 해요.”

“일단 들어오시면 판이 커요.”


이런 말은 얼핏 가능성처럼 들린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어보면 책임의 주체가 흐릿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지,

누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이런 질문에 대해 회사가 자기 언어로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건 내부에서도 아직 구조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뜻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그 모호함은 입사 후 지원자의 몫이 된다. 기대는 높은데 역할은 흐리고, 책임은 큰데 권한은 불분명한 자리로 이어지기 쉽다.


반대로 괜찮은 고용자는 다르게 말한다.


“지금 우리 팀에 필요한 건 단순히 개발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명확한 요구를 정리해서 팀이 움직일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겪는 문제는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니라, 기획과 실행 사이에서 맥락 손실이 크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역할은 생산성보다도 정렬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 느껴진다.

아, 이 회사는 적어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구나. 적어도 남을 채용할 만큼 자기 문제를 이해하고 있구나.


지원자가 회사를 믿게 되는 순간도 바로 여기다.

화려한 비전보다, 자기 문제를 정확히 설명하는 언어. 추상적인 열정보다, 역할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구조화하는 문장.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한 신호가 된다.


지원자가 결국 들어가는 것은 회사의 슬로건이 아니라, 그 회사의 운영 로직이기 때문이다.


결국 양쪽이 보는 것은 같다


겉으로 보면 고용자와 지원자의 질문은 달라 보인다.


고용자는 묻는다.

이 지원자는 일을 맡겼을 때 맥락을 제대로 이해할까.


지원자는 묻는다.

이 고용자는 나에게 일을 맡길 때 맥락을 제대로 설명할까.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두 사람은 결국 같은 것을 본다.


이 사람은 정말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해는 언제 드러날까.

나는 그게 늘 자기 언어화(Paraphrasing)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남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유행하는 표현을 조합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들은 것을 자기 안에서 소화하고, 핵심을 다시 구조화해서, 상대가 “맞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게 그거예요”라고 답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수준의 일이다.


바로 그때 신뢰가 생긴다.


누군가가 내 말을 자기 언어로 다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단지 내용을 기억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 복잡한 맥락을 자기 사고 안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무엇이 핵심인지, 무엇이 주변부인지, 어디가 문제의 본체인지 한 번 걸러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의 말은 더 이상 가벼운 말이 아니다.

자기 언어로 말하는 순간, 그 말은 남의 말이 아니라 자기 책임이 된다.

그래서 자기 언어가 있는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쉽게 장담하지도 않는다.

대신 정확하게 듣고, 신중하게 정리하고, 책임질 수 있는 수준까지만 말한다.


나는 그 차이가 결국 사람의 깊이와 태도를 동시에 드러낸다고 믿는다.



신뢰는 결국 언어에서 드러난다


이제 나는 사람을 볼 때 스펙보다 이 장면을 먼저 본다.


질문을 들은 뒤,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다시 말하는지.


답변을 들은 뒤,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다시 이해하는지.


지원자든 고용자든 마찬가지다.

끝까지 듣지 않는 사람은 대체로 위험하다. 자기 언어가 없는 사람은 대체로 책임도 없다. 이해하지 않은 채 빠르게 확신하는 사람은, 결국 누군가에게 비용을 떠넘기게 된다.


반대로 믿을 만한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하다.

잘 듣고,

정리하고,

다시 말한다.


그 짧은 과정 안에 그 사람의 사고력과 책임감이 함께 드러난다.


좋은 채용은 결국 좋은 스펙을 찾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좋은 이직 역시 더 좋은 조건을 찾는 일만은 아니다. 내가 맡게 될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에 가깝다.


지원자도, 고용자도 결국 같은 시험을 치르고 있다.


당신은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그것을 자기 언어로 다시 말할 수 있는가.


어쩌면 신뢰는 늘 거기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진짜인가? 나도 모르겠다.

오직 결과가 증명할 뿐일 것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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