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치미 Mar 27. 2023

나의 장례식날

남편과의 관계회복


결혼 11년 차.

어떻게 하면 서로를 화나게 만들 수 있는지, 어떤 지점에서 내가 숙이고 들어가야 서로 평화로워지는지 알지만 그럼에도 가끔씩 참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김지윤 부부소통전문가는 오래된 부부들은 발작하는 순간이 있다고 표현하더라. 발작한다는 게 너무 맞는 표현이라 무릎 탁!


여러 번의 싸움 끝에 겨우 붙여놓았던 남편과의 관계가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니 밑도 끝도 없이 다시 깨지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에게 좋았던 순간은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왜 처음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했을까. 이런 관계로 계속 살아가는 것이 맞는가. 이혼을 하고 각자 편히 살자로 결론 내리면서.


그렇게 11년 차 결혼기념일을 갓 넘기자마자 피 터지게 싸운 우리는 냉랭하게 식어버렸다. 보통은 하루도 못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대게는 남편이) 꺼내고 서로에게 상처 주었던 것을 보듬어주었지만,

이번만큼은 남편이 사과를 한다고 해도 내 마음의 상처들이 나을 것 같지 않았다. 사과를 해도 절대 받아주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왠걸? 남편도 사과를 하지 않고 그렇게 불편한 하루를 넘겼다.


서로를 없는 사람처럼 투명인간 취급하면서도 우리는 밥을 차리고 아이들을 먹이고, 집안일을 나눠서 하고 하필 주말이라 아이들과 산책도 다녀오고! 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가득 안고 있으면서 그럼에도 같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산책에서 돌아와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매고 이불속에 누워 저녁을 차리지 않겠다는 반항 신호를 보내고 유튜브 소비를 시작했다. 유튜브로 이혼후기를 검색하니, 이후 나도 모르는 알고리즘이 이혼전문변호사들의 경험담을 줄줄이 소환해 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착잡해졌다. 내가 정말 원한게 이혼이었을까?


그러다가 유튜브를 꺼버리고 정말 우연히 어떤 작가의 인스타툰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이 나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자, 눈을 감고 상상해 보세요.

어느 한적한 공원에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푸르른 잔디가 끝도 없이 펼쳐진 예쁜 장소에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이네요. 엄마, 아빠, 남편, 아이들, 친구들.. 어쩐지 좀 슬퍼 보이기도 하고 그래요.

네, 오늘은 당신의 장례식날입니다.
당신을 사랑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네요.

당신은 이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보통 부부상담 시 충격요법으로 하는 상상 중 하나라고 한다. 바로 나의 장례식.


상담을 오랫동안 공부했고, 실제로 매일 상담을 진행하는 직업을 가진 나이기에 웬만한 상담기법으로는 나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역설적으로 자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만화라 너무나 가볍게 보아서였을까?

내가 모든 방어를 풀고 마음을 풀어놓아서였을까?

아무튼 나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을까.

일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 예쁘고 매력적인 사람?

아니었다.

나는 내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주고, 아껴주고 언제나 든든했던 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정작 내가 먼저 죽는다면 나를 장례 치를 남편을 생각하며, 그에게 그 어떤 따뜻함도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솟구쳐 나왔다.


나는 왜 늘 남편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남편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고 변할 수가 없다고 했을 때 지독한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했을까?

나도 그만큼이나 쉽게 변할 수 없는 사람이면서.



그날 나는 마음을 먹고 남편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구했고, 남편은 역시나 자신이 죄인이고 늘 잘못은 내 탓이라 탓했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 사과할 면목이 없어 너를 놔주는 것이 맞을까, 말을 꺼낼 수 조차 없었다는 말에 이 사람을 더 이상 궁지로 몰지 말자 생각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

우리는 또 싸우게 될 테고, 또 서로의 변함없는 모습에 질리고 공격의 날을 세울 순간이 오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의지를 가지고 사별까지 함께 가기로 결심했다.


결혼은 노력하지 않으면 썩어버리는 관계라는 것을 깨닫는다. 연애할 때보다 더 의식하여 해도 들게 하고 물도 주어 가꾸어가야만 건강하게 자라는 것임을. 저절로 자라는 사랑이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버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