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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주니어 Oct 12. 2022

게으름쟁이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1)

머릿글 - 9월 넷째 주를 마무리하며 드는 잡다한 생각들로부터

< ISFP의 특징 (출처-티스토리) >
취업 전

2020년 즈음 들어 언젠가부터 MBTI, 즉 16개로 분류된 인간의 성격 유형이 큰 붐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세계 인구가 70억가량인데 고작 16개로 성격을 나눈다니, 단순히 참고고 재미고를 떠나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본인 역시 성격 유형 검사를 마치고 난 후 생각이 달라졌다. 맹신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신빙성 정도는 갖추고 있는 검사라고.


검사 결과, 필자의 성격 유형은 ISFP. 흔히 "잇프피"라고 불리는 이 성격은 "게으름"이 가장 주된 키워드로 꼽히는 유형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건 정말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성격, 그것이 바로 ISFP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설명과 일치하는 점이 많았던 것을 발견했던 필자로서는 생각이 바뀔 만도 했던 것이 이제까지 필자가 걸어온 행보들을 보면 분명 뭔가 한 번 일을 시작하면 그 누구보다 집중해서 잘 하는데, 그놈의 시작을 하기 귀찮은 것이 탈이었다.  

    

매일 편의점 알바에 매달리며 남들이 하나씩은 갖고 있는 자격증이나 어학 점수 등의 스펙도 변변찮았던 필자에게 취업 준비 기간은 우울함 그 자체였다. "왜 진작 준비를 안 했을까"하는 후회에서 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가급적이면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은 가지지 않기로 다짐했으니까. 이 우울함의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적 관념에 있었다. 그 누구에게서도 빚이나 신세를 지는 것을 매우 싫어하다보니, 내 힘으로 스스로 번 돈을 이용해 "받는 입장"이 아닌 "베푸는 입장"이 되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당연히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다.      


그러나 직장이라는 곳이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받아주는 동아리 같은 곳이던가? 명문대를 나오고 훌륭한 스펙을 가진 이들조차도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자자한데, 그보다도 못한 내가 직장을 쉽게 들어갈 수가 있겠는가. 그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눈치만 보면서 아르바이르로라도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면접에 수없이 미끄러지고,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아 도서관에서 휴대폰만 보다가 오는 날이 늘어나자 이러한 필자의 한심한 모습에 대한 좌절과 의욕 저하가 반복됐고, 그냥 다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만 두 탕 세 탕 뛸까 하면서도 놓지 않았던 것은 오직 딱 하나였다. 포기만 하지 말자”. 취업 전에 의식됐던 것 중 하나는 “남들은 다 어린 나이에 좋은 기업 가서 돈도 많이 버는데 너는 뭐하냐”라는 소리 없는 비웃음이었는데, 언젠가 갑자기 “그래, 이미 물에 빠진 거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라는 역발상이 떠올라 좋은 기업 나쁜 기업 가리지 않고 이력서를 마구마구 넣어댔다.     

 

그러다가 우연히 기회가 닿게 되어 스스로가 보기에도 부끄러운 이력서를 가진 나 같은 사람도 받아주는 지금의 회사를 만났고, 간단한 면접까지 합격하여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집에서 거리도 멀거니와, 규모도 크지 않았고, 나 같은 변변찮은 사람을 받아주는 걸 보니 최악의 경우 “블랙 기업”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걱정도 들었지만 당시의 나에겐 그런 것을 가릴 여건 따위는 없었다. 발밑을 기어서라도 일단은 살고 보자는 심리가 강했고, 그것마저도 안 통하면 자존심이라도 강하게 내세워 난장판이라도 만들고 오자는 각오로 입사했다. 하지만 신께서 아직 나를 버리지 않으신 것인지, 회사 규모는 작을지언정 나름의 비전도 갖추고 있던 데다가 모두가 선한 품성을 갖고 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하였던가. 남들이 잘 때 무리를 해서라도 더 공부한다던가 거대한 노력, 물론 존경과 찬사를 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이제 막 정신을 차리고 뭔가 시작해보려고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금방 지치기 쉬운 일이다. 그래서 이 속담에서 말하는 “스스로를 돕는 방법”이란, 이러한 거대한 노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을 믿고 그것이 잘 되든 안 되든 포기하지 마음만이라도 놓지 않고 아주 사소한 어떤 행동이라도 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토익 공부를 부지런히 해야하는 건 아는데 막상 하기는 귀찮은가? 포기만 하지 마라. 평소에 자신이 게을러서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을 봤다면, 이번에는 의자에 앉고 펜을 잡은 뒤, 문제집을 펴놓은 뒤 유튜브를 보며 놀아볼 것을 진심으로 추천한다.     


취업 후

입사 직후 필자의 초심과 열정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너는 아무것도 안 돼"라고 소리 없이 비웃었던 많은 이들에게 보란 듯이 이 치열한 사회 속에서 잘 살아가는 내 모습을 실현하기 위해, 그럴 듯한 계획도 몇 가지씩 세웠고 당시 면접을 봐주셨던 이사님께도 초기에는 일을 배우면서 퇴근 후에도 일 공부도 하고 어학 공부 등 자기계발도 열심히 하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쳐댔었다.     


다른 일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필자의 업무는 특히나 피드백의 중요성이 높았다. 추후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일종의 상담 업무 또는 CS직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게시판에 쇄도하는 질문이나 불만 등 다양한 유형의 문의에 오해없는 깔끔한 답변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실시하는 서비스를 모두 숙지하고 있어야했다. 그 많은 내용을 별도의 공부 없이 듣자마자 바로 익힌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복습의 중요성이 상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게으름뱅이의 본성이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2시간이나 걸리는 퇴근길을 거쳐 집에 도착하면 씻고 밥 먹고 양치질하는 게 다였고, 하루 일과에 대한 보상에만 급급해 휴대폰만 두드리다가 잠들어버리는 게 다였다. 그런 습관이 반복되다보면, 무슨 일을 어떻게 처리했었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매일 들어오는 유사한 유형의 문의 외에, 아주 가끔씩 들어오는 까다롭고 특별한 유형까지도 내 힘으로 척척 해내고 싶은 욕심은 충만했지만 의지는 그 욕심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쓰라고 존재하는 일기를 한 달에 한 번밖에 쓰지 않는 것이 그러한 예 중 하나였다.  

   

해야하는 걸 알면서도 몸은 침대에 붙어있는 매우 골치 아픈 상황은 나를 또다른 와신상담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분명 필자는 앞서 “평소에 자신이 게을러서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을 봤다면, 이번에는 의자에 앉고 펜을 잡은 뒤, 문제집을 펴놓은 뒤 유튜브를 보며 놀아보자.”라고 번지르르하게 말했지만, 정작 필자 자신도 그조차 실천하는 날이 많은 아이러니를 겪고 있는 것이었다. 독자 여러분이 필자를 어느 정도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상상 이상으로 지독한 게으름뱅이였던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로 와신상담하고 있던 어느 날, 필자의 소중한 연인이 다가와 <업(業)세이>라는 글쓰기 모임에 참가해보자고 제안했고, 필자는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필자에게 있었던 또 하나의 문제점은 바로 “혼자”라는 것이었다. 의지도 약한 사람이 그동안 혼자만의 힘으로 사회생활이며, 자기계발이며 모든 것을 해결해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어떤 모임에 참석하여 함께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진다면 글쓰는 습관도 들일 수 있을 뿐더러 한 번 더 업무를 숙지할 수도 있고, 추후에 내 과거를 추억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일들을 상기하는 과정에서 업무 처리 방식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나 말고도 이 대한민국 안에서 고된 현생을 살아가게 될 모든 사회초년생들이 이 글을 읽고 공감함으로써 어떤 위안을 얻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글이 누리는 최상의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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