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킨(도너츠)에 대한 추억

by 조각들

2007년, 광주 충장로 시내에 있는 던킨도넛에 자주 들렀다. 휴가 또는 야간당직 후 오프인 평일 낮에 주로 갔던 것 같다. 매장 2층이 넓고 조용했는데, 중절모를 쓰고 '던킨도나쓰'를 먹는 어떤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다. 겨우 두 번 마주쳤지만, 그것이 그의 반복되는 일상이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커피는 필요하지 않는 듯 보였던 그는 오직 단것이 묻은 밀가루 빵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카운터 직원에게 호기심에 물은 바에 따르면, 그는 거의 매일 도너츠를 먹으러 오는 손님이다. 유난히 단 것을 좋아하시던, 1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전주 평화동 한성아파트 거실에 쭈구리고 앉아 빠다코코넛을 먹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2009년, 내가 말년 중위일 때 갓 이등병 하나가 부대에 전입했다. 그는 군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이른바 자살충동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부대의 모든 관리 이슈는 그에게 집중되었다. 영화를 전공하다 입대했다길래 뭐랄까, 나는 예술가의 그 오묘한 기질을 이해할 수 있을거라는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 교회에서 배운 경험을 살려 교환노트 방식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소통을 했고, 덕분에 친해질 수 있었다. 나의 말년 휴가와 그녀석의 두 번째 휴가가 겹쳐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에서 만났다.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어차피 죽을 생각으로 통장 속 돈을 전부 인출해 서랍에 넣어뒀었고, 두 번째 휴가 때 아직 죽지 않고 그 돈으로 나에게 한우를 사게 된 것이다. 이제 죽지 않을 거라서 그 돈을 쓰겠다고 하니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한우를 먹고 소화를 시킬 겸 명동까지 걸었다. 식사에 대한 보답으로 맛있는 음료를 사겠다니까 그는 던킨도너츠의 쿨라타를 사달라 했다. 초여름이었고, 시원한 쿨라타를 하나씩 쭉쭉 빨며 걷다가 을지로 쯤에서 헤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 뒤 나는 전역했고, 그는 계급이 오르면서 평범한 군생활을 하다 전역했다고 들었다. 추측이지만 영화일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는 이름을 알았는데.


2022년, 영상제작과 카메라 레슨을 하면서 SPC그룹의 간부를 가르친 적이 있다. 그와 약속을 잡은 스터디룸 건물의 던킨도너츠에서 커피를 대접받았다. 즐겨듯는 팟캐스트에선 종종 노동문제를 다루기도 하는데, 그 중 SPC의 제빵사들과 노동조건, 고용문제 등을 다룬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래서 수업 때마다 약간의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임했지만, 그것을 어느정도 희석시킬 만큼 그는 매우 정중하고 매너있는 사람이었다. 정중한 것이 매너있는 것이니 강조의 표현이다. 그가 촬영한 비디오들을 봤을 때 그는 가정적이고 음식 문화에 대한 나름의 애정과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다. 동료와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의 직원이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수업을 즐겁게 진행했지만 너무나 바쁜 분이었기에 장기간 보류되었고, 1년 정도 뒤에 다시 연락이 와서 나머지 수업을 했다. 얼마 후 그는 외국으로 스카웃되어 직장을 떠난다고 했다.


한때 던킨도너츠의 여섯 개나 열 개 들이 박스는 교회나 회사에서 좋은 간식선물이었다. 나는 던킨의 도너츠와 2천원짜리 원두커피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커피를 던킨에서 찾을 수 없다. 던킨도너츠는 이름에서 도너츠를 뺐고 지금은 샐러드와 샌드위치 제품을 많이 팔고 있다. 자주 지나는 동네 횡단보도 앞 던킨은 늘 한산하다.


2025년, 더운 여름날 북촌 골목 사이로 걷다가 어떤 한옥에서 무료 전시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 복지단체가 주관하는 발달장애 미술가들의 작품 전시회였다. 아름답고 오묘한 그림들이 많았다. 그중 어떤 할아버지가 도너츠를 입가로 가져가며 활짝 웃으시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동그런 반지모양에 알록달록한 설탕가루가 묻은 전형적인 도나쓰를 왼손으로 쥐고 계셨다. 너무나 밝은 미소였고, 이 그림을 그린 작가도 어쩌면 내가 봤던 노인들의 모습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운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것이거나. 언젠가 시간이 많이 흐르면 나도 어떤 이의 그림 속 도나쓰를 먹는 노인으로 존재하는 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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