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늦은 가을,
새로 이사 온 동네에는 잔잔한 하천이 있다. 냇물을 따라 북한산이 보이는 동네까지 산책을 가는 습관을 얻었다. 어떤 오후에도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산책을 했다.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어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에서 우르르 나오는 모습들을 지켜봤다.
어릴 때 나는? 나는 하교 후 뭘 했나? 떠올려 봤다. 엄마는 나를 학교에 보낸 후 아침부터 오후까지 뭘 했나? 집에서 심심하셨으려나. 삼십대 중반 쯤의 여자였던 그녀는 뭘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나. 궁금해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엄마는 나 국민학교 때 학교 가면, 집에서 뭐 했어요?
- 일했잖여.
그랬다. 우리 집은 평범하게 가난했고, 엄마는 끊임없이 일했다. 나는 아빠의 일생을 바친 헌신에 찬양을 보내곤 하지만, 엄마의 노동은 잊고 있었다. 그녀는 보험회사에서 일을 했었다. 실적이 잘 안 나와서, 실적을 내는 일을 하는 것이 어려워서 잘렸다. 그녀는 병원 세탁실에서도 일했었다. 우리 가족이 다니던 큰 교회의 청소일도 했다. 메리야스 공장이나 양말공장을 다니기도 했다. 나이를 먹은 후에는 요양보호사가 되어 요양병원에서 일하거나, 독거노인의 댁으로 방문해 딸 노릇을 해주기도 했다.
그 해 여름,
외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전주에 갔다. 평소 늘 건강하시던 외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졌다. 말기암이신 것을 알게 되었고,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셨다. 외할머니가 입원한 '엠마오 사랑병원'은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교회에서 마주보이는, 다가공원 숲속 산책로에 이어져 있다. 개화기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건물이 그대로 활용되고 있다. 예수병원이 처음 세워졌을 때 바로 이곳이었다 옮겨졌고, 이후에는 어떤 대학이 운영하는 한방병원으로 간판이 바뀌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엠마오 사랑병원으로 바뀌었고, 그곳은 주로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동의 성격이라고 들었다. 그때 호스피스라는 말을 처음 배웠다. 엠마오는 성경에서 예수가 죽은 뒤 부활 해 제자들에게 나타났다는 기록에 등장한다. 제자들은 그때 엠마오라는 지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엠마오 사랑병원 맞은편은 용머리고개인데 그곳은 우리 가족의 첫 집이자 누나와 내가 태어난 그 집이 있던 곳이다. 내가 태어난 맞은편 동산에서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엄마는 용머리고개에서 나의 엄마가 되었고, 맞은편 동산에서 고아가 되었다. 석달 뒤 가을이었다.
엄마는 용머리고개에서 나의 엄마가 되었고, 그 맞은편 동산에서 엄마의 엄마를 보냈다.
2025년 8월,
조경가 정삼씨와 '공원읽기'라는 유튜브 비디오를 제작하기 위해 하남으로 갔다. 당정뜰이라는 곳의 메타세콰이어 산책길을 탐방하던 중 길가에 전시된 시 작품들을 읽었다. 중년의 여인일 것으로 추정되는 김기순 씨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엄마일 것 같은 그녀는 자신의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내가 이십대 중반일 때, 엄마는 이른바 '여성 중학교'라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만학도 과정을 다니고 있었다. 그때 엄마도 문학수업에서 시를 썼는데, 엄마의 엄마에 대한 것이었다.
2025년 오월의 봄,
아래와 같은 시를 한 편 썼다.
슈퍼에서 린스를 샀다
아무거나 싸고 용량이 많은 걸로
머리를 감았다
샴푸를 헹궈내고 린스를 발랐다
린스를 헹궈내고 머리를 말렸다
엄마의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