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딱 맞는 글이란 무엇일까

잘 쓰는 글보다, 나다운 글을 쓰기로 했다

by 미고

나에게 딱 맞는 글이란 무엇일까

며칠 전, 브런치 10주년 기념 전시를 보러 모처럼 서촌에 방문했다. 남편과 단둘이 서촌을 걷는 건 오랜만이었다. 연애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기분이 좋았다. 맑은 하늘과 자유롭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하나같이 바지 스타일이 비슷한 것이다. 통이 크고 길이가 길어서 바닥에 끌리거나 신발을 반쯤 가리는 스타일. 거리에서는 나만 발목이 보이고 몸에 딱 붙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좀 다른 스타일이다 싶어 보면 외국인들의 패션이었다.


남편이 말했다. "회사에서 남자들도 다 요즘 저렇게 입어. 남녀 할 것 없이 다 저런 바지야."

전문적으로 따지자면 각각 다른 스타일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부부의 눈에는 서로 다른 듯하지만, 결국 한 종에서 파생된 변종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부분이 각 사람의 개성을 나타내기엔 좀 아쉽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가 굉장히 개성을 잘 살려서 옷을 잘 입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옷가게에 들어갔을 때 그런 아쉬움은 더욱 증폭되었다.


바지를 고르려고 봤더니 역시나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통이 넓고 길이가 긴 스타일. 온라인 쇼핑몰이었다면 더욱 다양한 디자인들이 있었겠지만 오프라인 매장엔 다양함에 한계가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행 스타일의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키가 작고 왜소한 편이라 이런 바지를 입으면 사실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 보니까 그런 스타일이 또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이걸 나도 입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요즘 스타일의 바지를 샀고, 너무 긴 기장은 수선을 맡기기로 했다. 유행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처음엔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다가도, 계속 보다 보면 그게 정답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글쓰기도 비슷한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방송작가 일을 하면서 쓴 글들은 남을 위한 글쓰기였다. 말하는 사람을 고려해 그 사람의 스타일을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 했다. 조금이라도 내 스타일이 들어가게 되면 프로그램의 전체 방향을 망치게 된다. 진행자들이 딱 맞게 소화할 수가 없는 글은 잘 못 쓴 글이 되곤 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내가 쓴 대본을 보고 진행자가 너무 튄다며 다 고쳤다. 그리고 진행자의 말투를 똑같이 재현한 다른 작가가 인정받는 걸 지켜봤다. 방송에서는 결코 나의 존재를 들켜선 안 되었다. 그 일들이 쌓이면서, 방송작가로서 글을 쓰는 일에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대본을 쓸 때도 내가 그 캐릭터로 변신해서 그들에게 맞춘, 그들의 스타일대로 글을 써야 한다. 그래서였을까. 점점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점점 목소리를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방송 일을 그만두고 이제 정말 나의 글을 쓰게 되었을 때에도 나는 계속 헤매고 있었다.


잔뜩 힘을 주기도 하고, 진지해졌다가 어떤 날은 또 깨발랄하고. 도대체 나의 자아는 몇 개인 건지, 도무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다 나였다.


요즘 나는 스레드에 매일 글을 쓴다. 거의 즉흥적으로 쓴다.

그날의 생각을, 그날의 감정을, 그때 느낀 것을 바로 글로 옮긴다. 수정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냥 쓴다.

어떤 날은 철학자가 되고, 또 어떤 날은 코미디언이 된다. 일관성 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솔직함에 공감했다. 완벽하게 정제된 글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목소리로 날것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 글에 사람들은 반응했다.


이것이 가장 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글을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공감해 줄 때, 들쭉날쭉한 감정도 전부 내 것일 때, 나는 깨달았다.

살아있는 글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이것이 바로 나다운 글이구나.


어떤 날은 너무 잘 쓰고 싶어서 힘을 잔뜩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봤자, 결국 딱 나만큼, 나의 실력만큼 글은 써진다. 그러니까 글에서는 나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난다.


애를 쓰면 조급한 모습이 보이고, 힘을 빼면 편안한 내 모습이 보인다. 잘 쓰려고 발버둥 치면 그 짠함이 글에 다 나온다.


결국 글은 나를 숨길 수 없다.

요즘은 AI가 너무나 매끄럽게 글을 잘 써주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AI가 써 준 글이 내가 방송작가 시절 썼던 글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보기에 편하고 걸리는 것이 없고 아주 안정적인 글. 문법도 완벽하고 구조도 탄탄하다. 하지만 그 안에 정말 나는 없다. AI는 가장 대중적인 표현을, 가장 무난한 구조를, 가장 안전한 문장을 골라낸다.


마치 방송작가 시절의 나처럼, 누구에게나 어울리지만 정작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AI가 쓰는 글은 결국 보편적인 사람의 글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닌가. 쓰는 사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건 오직 그 사람 자신뿐이다. 그걸 나는 나만의 핏이라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제 잘 쓰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답게 쓰기로 했다. 어두울 때는 어둡게, 밝을 때는 밝게, 날카로울 때는 날카롭게. 그게 다 나니까.


앞으로 중요한 건 잘 쓰는 것보다 진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중심이 될 거다. 내가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정말 나의 이야기인가. 그게 중요하다.


나는 앞으로 사람 냄새나는 글을 쓰고 싶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여있는 이야기 시장을 만들고 싶다.

유행하는 바지만 파는 가게가 아니라, 각자의 사이즈와 스타일을 존중하는 그런 곳.

나만의 핏을 찾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곳.

그게 내가 만들고 싶은 글쓰기의 세계다.



KakaoTalk_Photo_2025-10-19-08-47-36.jpeg <브런치북 10주년 작가의 꿈> 전시에서 찍은 사진 ⓒ미고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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