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쓰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

불확실함을 견디는 힘

by 미고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헝가리 작가 라슬로 크라스나호르카이. 문학계에서는 이미 익숙한 이름이겠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더 눈길이 가는 건 그의 책을 한국에 소개한 출판사 이야기였다.


알마 출판사 안지미 대표.

모두가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다 출판사 망하면 어쩌려고, 돈도 안 되는데 어쩌려고, 가뜩이나 출판계가 어려운데 대체 왜 그런 책을 내냐는 주변의 우려 섞인 목소리들. 하지만 알마 출판사는 라슬로의 책을 8년 동안 6권을 출간했다.


"출판계가 그렇게 어렵다는데, 버티려면 제가 좋아하는 것도 해야죠."


그녀의 말이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깊었다. 돈이 되든 안 되든, 인정 받든 말든,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결국 버티지 못한다는 것. 오래가려면, 내 마음이 움직이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그녀가 라슬로의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 작인 <사탄탱고>를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로 만난다. 무려 러닝타임만 7시간 20분, 인터미션을 포함하면 무려 10시간을 앉아서 버텨야 했다. 그때의 그녀가 느꼈던 강렬한 기억과 감동이 국내 출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녀가 낸 책들은 2025년 노벨문학상을 타며 뒤늦게 빛을 발한다.


그녀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뚝심 있게 버텼다. 나도 그랬다.

글을 쓰는 일이 좋지만, 너무 가난했다. 돈도 많이 벌면서 글을 쓰는 일들을 찾아 나섰다. 기업을 위해 글을 쓰고, 방송을 위해 글을 썼다. 하지만 돈도 많이 벌지 못했고, 더구나 즐겁지 않았다. 내게 글을 쓰는 이유를 물으면, 처음엔 이렇게 대답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면 좋잖아요."


아이를 낳고 경력이 잠시 중단되었을 때,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나의 이야기, 나의 생각을 쓰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오직 나의 이야기. 그런 목적들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좋아요가 안 달리는 날, 팔로워가 줄어드는 날,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는 것 같은 날엔 의욕이 사라졌다. 그럴 때마다 나를 다시 책상 앞으로 데려온 건, 다른 이유였다.


그냥 쓰는 게 좋아서.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내 말을 전할 수 있다는 것. 내 안에 응어리진 말들을 다 토해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내 글로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는 당돌한 희망 같은 것들.


한 번뿐인 인생,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꿈. 죽어서도 살아남고 싶은 강한 열망.

그게 나를 쓰게 했다.


여전히 나는 글쓰기가 즐겁지만, 또 어렵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몇 시간을 고민하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한 번도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다. 매번 부족하고, 자질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할 때도 많다.


그런데 나를 낳아준 엄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떨어져서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엄마의 기억 속에는 똑 부러지게 말을 잘했던 나의 어린 시절과, 갑자기 작가가 되어서 나타난 성인의 내 모습만 있다. 그 사이, 내가 어떤 일들을 겪었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글을 쓰게 되기까지의 시간들을 엄마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엄마 눈에는 내가 뭐든지 잘하는 예쁘고 똑똑한 딸이니까.


그래서 나에게 대뜸 부탁한다.

"이거 하나만 고. 급. 스. 럽. 게 써줘."

나는 짜증 섞인 투로 대답한다. 고급스럽게 쓴다는 건 무엇이며, 그렇게 글이 쉽게 써지는 줄 아냐고!

결국엔 써줄 거면서도, 꼭 화를 내고 마는 나를 보며 엄마는 생각할 것이다. '어차피 써줄 거면서 까칠하긴’


그럴 때마다 나는 또 반박한다.

"엄마는 내가 도깨비방망이로 '글 나와라 뚝딱!' 하면 멋진 글을 술술 써내는 줄 알아?”

엄마는 웃으며 말한다. “그런 줄 알았지. 너는 글을 잘 쓰니까.”


나는 피카소가 아니다.

피카소는 대중 앞에서 3초 만에 그림을 그려도, 그 그림에 큰 값을 요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그 3초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가 평생을 바쳤다는 걸.


나도 마찬가지다. 한 줄의 문장이 술술 나오는 것처럼 보여도, 그 한 줄을 쓰기 위해 나는 수없이 망설이고, 지우고, 다시 쓴다. 도깨비방망이 같은 건 없다.

그저 매일 앉아서, 서툰 문장을 하나씩 쌓아가는 시간들뿐이다.


그래도 나는 쓴다. 돈이 안 되는 글이어도, 반응이 없는 글이어도, 좋아서 쓴다.

알마 출판사가 라슬로의 책을 낸 이유처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팔로워 수에 연연하고, 좋아요에 일희일비하다 보면 결국 무너진다. 하지만 좋아서 쓰고 있는 나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엄마는 여전히 내가 도깨비방망이를 가진 줄 안다. 그러나 나는 아직 피카소가 아니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오늘도 좋아서 쓴다. 완벽하지 않지만, 뚝심 있게.

그리고 언젠가, 10년 뒤, 20년 뒤에도 읽히는 글을 남기고 싶다.

좋아서 쓰는 사람의 글은 결국 오래 남는다.



노벨문학상 발표 후 교보문고에 가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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