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야 할 시간에는 늘 쓰는 거다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작 쓰는 시간보다 소비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책을 읽고, 영상 콘텐츠를 보고, 다른 사람의 글을 부러워하며 하루를 보냈다. 아무리 인풋이 중요하다지만, 그 핑계로 준비에만 몰두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한 줄의 문장도 쓰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망생을 그만두고 진짜 쓰는 사람이라고 선언했는데, 글을 소비만 해도 괜찮을까?”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 나만의 소소한 챌린지를 시작했다. 이름하여 '글모닝'.
굿모닝 대신 글모닝. 좋은 아침이 아니라 글 쓰는 아침을 의미한다.
매일 새벽, 눈을 뜨자마자 SNS에 "글모닝"이라고 짧은 한 줄을 올리는 것이다. 글을 쓰는 습관을 만들기 위한 의식이자, 내가 글을 쓰는 사람임을 세상에 선포하는 일이었다.
어떤 날은 의지가 샘솟았고, 어떤 날은 무거운 몸을 억지로 끌고 나왔다. 사실 '글모닝'을 외쳤다고 해서 항상 글을 썼던 것도 아니다. SNS에 답글을 다느라 시간이 흘러갔고, 또 어떤 날은 다시 침대에 누운 적도 있다. 그런데 ‘글모닝’이라 같이 외쳐주는 사람들의 알림이 뜨는 순간,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은 반응이 "너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라는 무언의 채찍질처럼 느껴졌다.
점점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매일 떠들어대면 언젠가는 누군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은 매일 아침 글모닝을 외치고 무엇을 썼나요?"
그 질문 앞에서 당당할 수 있으려면, 보여줄 무언가를 마련해야 했다. 그래야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 목표를 이루는 사람, 정말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습관을 만든다고 해서 글이 술술 나오지는 않았다. 글을 쓰는 대신 책만 읽고 넘어가거나, 멍하니 생각만 하다 아침 시간을 날려버리기도 했다. 글모닝을 올렸다는 것만으로, 글을 쓴 듯 착각하고 안도하는 날도 있었다.
나는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몰랐다.
팔로워를 늘리기 위한 글인가, 책을 내서 저자가 되기 위한 글인가, 아니면 돈을 벌게 하는 글인가.
혹은 예전처럼 드라마와 시나리오를 써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은 걸까.
이조차 아니면 나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동경하는 문학 소설? 아니면 SNS에서 사람들에게 귀감을 주는 짧은 글귀? 답을 찾지 못한 채 방황했다. 어쩌면 쓰는 일보다 글을 소비하는 일이 나한테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 표지 위에 흑백사진으로 찍힌 작가의 책상, 그 위에는 강렬한 제목이 시선을 끌었다. “오직 쓰기 위하여” 천쉐 작가의 책이었다.
마치 책이 나를 부르는 듯했다. "네가 지금 왜 헤매는지 나는 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주저 없이 책을 빌려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천쉐 작가는 처음엔 생계를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진짜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사람,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를 작가로 만든 건 그 절박한 내면의 압력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그녀가 자신에게 단 한 치의 변명도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가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쓰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한다. “써야 할 시간에는 늘 쓰는 거다." 이 문장이 나를 깊이 찔렀다. 나는 책을 읽으며 이것도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하지만 읽는 것만으로는 결코 글이 쌓이지 않는다. 써야 쌓인다.
또 다른 구절도 나를 멈춰 세웠다. "좋은 작품을 보고 내 글이 초라해 보인다면, 그것은 눈이 높아진 탓이 아니라 아직 충분히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내 안의 핑계를 무너뜨렸다. 실력이 부족한 것에 대한 이유를 높은 안목이라는 포장지 속에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오래도록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동안 내가 해온 고민들이 떠올랐다. 팔로워 수에 집착했던 마음, 글 대신 콘텐츠 소비로 하루를 채웠던 시간, 그리고 글을 쓰지 않으면서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포장하려 했던 모습. 천쉐 작가의 단호한 태도는 그런 나를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쓰기로 했다면 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가 아니라, 오늘 내가 쓰고 있느냐로 이미 결정되는 존재였다.
그 순간 하나의 명확한 문장이 떠올랐다.
"계속 쓰는 사람만이 작가다."
화가는 계속 그림을 그려야 하고, 배우는 계속 연기를 해야 하고, 가수는 계속 노래를 해야 한다. 그리고 작가는 계속 써야 한다. 한 권의 책을 내고, 한 편의 드라마를 썼다고 '작가'가 되는 게 아니다. 팔로워 숫자가 많아진다고 작가가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만이 작가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지망생이란 타이틀을 버렸다. 스스로를 지망생이라 부르는 순간, 나는 늘 부족하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다르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작가라고 믿고 스스로를 증명하는 시간이다.
돌이켜보면 그동안은 흔들림과 좌절, 초조함과 불안으로 가득했다. 때로는 좋아요와 팔로워 수에 일희일비했고, 때로는 루틴을 만들겠다 다짐하고도 무너졌다. 좋은 작품 앞에서 주눅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조차도 결국은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
나는 늘 부족했지만 동시에 매 순간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초짜임을 인정했던 순간이 있었고, 루틴을 세우다 무너졌던 날도 있었으며, 악플과 비교 속에서 흔들리다가도 다시 마음을 붙잡았다. 글쓰기 앞에서 번번이 좌절했지만, 결국 그 좌절조차도 글감이 되었고, 다시 쓰기로 한 이유가 되었다. 나는 그 과정을 통해 글을 쓴다는 건 완벽한 날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오늘을 기록하는 일이라는 걸 배웠다.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작가다. 계속 쓰는 사람일 테니까.
앞으로도 흔들릴 것이다. 어떤 날은 글을 쓰지 못하고 또다시 책만 읽으며 하루를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중요한 건 '오늘 내가 썼는가'이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 기록이 흑역사가 되든 전설이 되든, 그것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오늘도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천쉐 작가의 말처럼, 나 자신에게 시간을 주겠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 해도,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