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은 성장의 증거일까, 상처의 흔적일까

악플과 비판의 경계에서

by 미고

어느 날, 잔잔했던 내 스레드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조회수도, 팔로워도 하루아침에 치솟았다. 그 출발점은 다름 아닌 악플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누군가가 나를 향해 돌을 던지는 순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몰렸다. 내 계정은 그날 이후 눈에 띄게 성장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두려웠다.

문제의 시작은 사소했다.

가게 측에서 메뉴를 누락하는 배달 실수를 했고, 나는 그것을 유연하게 넘어갔다. 그러자 가게에서 미안하다며 콜라를 서비스로 보내줬다. 나는 이 일을 가볍게 써 내려갔다. 마지막 문장에 이렇게 덧붙였다.

자연스럽게 서비스 받는 .” 바로 이 짧은 한 줄이 문제였다.

나의 의도는 “가게의 작은 실수를 유쾌하게 넘겼더니 생긴 보너스”였지만, 어떤 사람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비쳤다. “이걸 팁이라고 올린 거냐”는 비난을 시작했고, 그 댓글을 본 사람들은 ‘꿀팁’이라는 의도로 자랑하듯 쓴 것처럼 오해하기 시작했다. 해명하는 댓글도 달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내 글에 달린 저마다의 다양한 해석을 함께 읽으면서 오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나는 원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서비스 받아내는 요령을 공유한 파렴치한’으로 몰려버렸다.


나는 그날, 단어 하나가 글 전체의 맥락을 어떻게 비틀어버릴 수 있는지 뼈저리게 배웠다.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은 다를 수 있다. 아니, 다르다 못해 전혀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결국 글은 쓰는 순간 내 손을 떠나 독자의 세계 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의미로 태어난다.



무지성 악플과 의미 있는 비판


댓글은 순식간에 달렸다. 어떤 사람은 나를 진상이라 조롱했고, 어떤 사람은 인신공격을 했다. “얼굴 까놓고 그러고 싶냐”, “미친” 욕설들도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저 화가 났다. 억울했다. 나는 그런 의도로 쓴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니, 그 안에는 내가 곱씹어볼 만한 지적도 있었다. 한 문장, 한 단어 때문에 의도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 때로는 큰 파장을 불러온다는 점은 분명 사실이었다. 무지성 악플 사이에 섞여 있던 그 말은, 내 글쓰기 태도를 다시 점검하게 만들었다.


이때 깨달았다. 악플과 비판은 다르다.

악플은 상처만 남기지만, 비판은 성장을 남긴다. 중요한 건 둘을 구분할 줄 아는 힘이다.


처음엔 글을 지우지 않고 버텼다.

바로 삭제하면 내가 뭔가 잘못을 덮으려는 것처럼 괜한 오해를 살까 두려웠다. 또 악플을 남긴 사람들에게 ‘겁먹고 도망쳤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 동안은 그 글을 그대로 둔 채, 쏟아지는 댓글들을 묵묵히 지켜봤다.


그 하루는 참 길었다. 종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휴대폰 알림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댓글을 확인할 때면 귀부터 발가락까지 뜨거워졌다. 몇 줄의 문장이 칼날이 되어 나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무섭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나는 그날, 글 하나가 사람의 하루를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겪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지만 도가 지나친 악플이 늘어났고, 공유 횟수도 올라갔다. 혹시 내 글이 다른 커뮤니티에 퍼져 불특정 다수의 먹잇감이 되진 않을까. 두려움에 결국 나는 글을 내리기로 했다. 완전히 삭제하진 않았지만, 나만 볼 수 있게 숨겼다.


좋은 관계를 쌓아오던 팔로워들에게 이런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게 미안했다. 그래서 사과글을 올렸다. 다행히도 내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명한 엄마다”, “기죽지 마라”는 댓글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단어나 이야기를 던지지 말자. 내 이야기를 꾸며내지 말자. 무리수를 두지 말고, 나답게 가자. 결국 작가로 오래 살아남는 길은 진정성뿐이라는 걸, 이번 일을 통해 조금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낯선 사람들의 칼날


흥미로운 건, 나를 무지성으로 비난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팔로우하지 않거나 처음 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 글을 보고 내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경험과 감정을 글 위에 덧칠했다. 그중엔 비공개 계정으로 상습적으로 악플만 다는 사람도 있었다. 또 그들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반응만 달고 다니는 전형적인 패턴을 보였다. 그 순간 알았다. 이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습관이었다.

그런 계정은 차단하고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는 사실도 배웠다. 모든 화살을 막아내려 애쓸 필요는 없었다. 쓸데없는 소음에 시간을 빼앗기는 대신, 나를 지지해 주는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편이 낫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사건을 지나며 나는 몇 가지를 배웠다.


첫째, 단어 하나의 무게.
내 의도가 아무리 선해도, 단어가 불러오는 뉘앙스는 때로 독하게 작용한다. 글은 결국 독자의 눈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비판과 악플을 구분하는 눈.
성장에 도움이 되는 피드백은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무지성 비난과 욕설은 소음일 뿐이다. 그걸 붙들고 있기엔 나의 시간은 소중하다.


셋째, 차단은 방패다.
상습적으로 비꼬는 계정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 무시하고, 차단한다. 내 정신 건강을 지키는 것이 창작자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넷째, 나답게 쓰는 용기.
관심을 끌겠다는 욕심에 던진 단어 하나가 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내가 쓸 수 있는 건 ‘내 이야기’뿐이다. 글은 누군가를 자극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걸 다시 떠올렸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 솔직하게, 더 조심스럽게, 그리고 더 나답게 쓰고 싶다. 글로 누군가를 웃게 할 수 있다면 좋고, 위로할 수 있다면 더 좋다. 하지만 억지로 관심을 얻으려 애쓰는 순간, 글은 힘을 잃는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악플은 나를 키웠을까, 무너뜨렸을까


돌이켜보면, 그 사건은 분명히 내 계정 성장에 기여했다. 팔로워도 늘었고, 조회수도 폭발적으로 올랐다. 하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 모든 것이 대가 없는 성장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악플은 나를 키우기도 했다. 동시에, 나를 무너뜨릴 뻔했다.

결국 중요한 건 악플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견디고, 무엇을 배웠느냐다. 나는 지금도 두렵다. 이런 일이 또 반복된다면 과연 견딜 수 있을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날 이후 단어 하나하나를 더 섬세하게 고르고, 내 글을 향한 날 선 시선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게 됐다.


악플은 성장의 증거일까, 상처의 흔적일까.
아마 동시에 둘 다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언어는 세탁비누처럼 정화력을 지녀야 한다.

창조의 언어보다는 이 정화의 언어가 더욱 시급해진다.” –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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