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조깅은 아니었어요.

by 초생

4월 들어 첫 달리기를 했다. 41분 12초 동안 5.42킬로미터. 그러니까 평균페이스는 7분 36초. 누군가는 빠르게 걷기로도 가능한 속도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내게는 평균 심박수 164를 찍게 하는 운동이었다. 220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숫자가 최대 심박수라던데, 그 최대 심박수가 이제는 180도 되지 않는 내겐 정말이지! 제법! 뿌듯한 운동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나는 2018년에도 달리기를 했었다. 잠깐 동안. 내 속도를 몰라 숨이 턱까지 차도록 뛰다 패배감과 함께 걷다 훨씬 짧은 거리를 다시 뛰어보려다 더 긴 거리를 걸으며. 기억에 의하면 어느 날 달리기를 하고 난 다음 좀 아팠고, 쇠약해진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사이 날이 추워졌다. 그렇게 말았다. 그 후로도 가끔 뛰어보긴 했으나 오래가진 못했다. 그래서 2020년쯤 큰맘 먹고 샀던 러닝화는 10킬로미터도 채 달려보지 못하고 워킹화로 전락했다가 다 닳아 버려졌다.


지난달, 그러니까 3월 15일 나는 갑자기 달리고 싶었다. 봄이 오고 하니 걸을 때 가볍게 걸칠 옷을 하나 주문한 게 발단이었다. 가볍게 걸치기엔 러닝 재킷이 좋을 것 같았는데 이름이 러닝 재킷이다 보니 입고 달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문한 옷이 도착하기도 전에 그저 결제 버튼만 누르고 달리러 나가봤다. 테스트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러닝 재킷을 입고 달리기라는 새로운 취미로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 테스트. 달리고 돌아와 러닝화를 주문하고 금방 다시 러닝 모자와 러닝 벨트를 주문했다. 그리고 다음날 여전히 아무것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달리러 나갔다.


2025년 3월 15일 나는 4.01킬로미터를 달렸다(10미터도 거리다!!). 평균 페이스 7분 45초, 평균 심박수 163. 달렸다고 할 수도 없는 이력이었으나 그나마도 최대 심박수가 180 이하로 떨어지기 전이었고, 나이 앞자리가 바뀐 후로 이런 오래 달리기는 처음이었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4.01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한 번도 쉬거나 걷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보잘 것 없는 기록이지만 나는 내가 너무도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100미터 달리기 기록이 28초이던(아마도) 중3은 자라나다 못해 좀 낡아진 후 4.01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수영을 했고, 필라테스를 했고, 피티를 받았고, 크로스핏을 하고 있는 나는, 늘 언제나 모든 운동의 열등생이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꾸준히 달라지고 있었다. 그간 해온 운동의 성적표를 받은 기분이었다. 노력의 흔적이 꽤 보인 성적표. 그 성적표에서 가장 좋았던 지점은 내가 나를 알고 있었다는 것 이었다. 쉽지 않지만 이내 포기할만큼 어렵지도 않은, 내게 딱 맞는 속도를 나는 어느새 체득하고 있었다. 나를 잘 몰라 1킬로미터만 가도 숨을 몰아쉬며 걷던, 더 빠르게 달리던 젊은 나와 달라져 있었다.


그날의 달리기는 너무 좋았다. 힘이 들었지만 견딜만 했다. 바람은 없고 공기는 쌀쌀하고 해는 따스해서 쾌적했다. 3킬로미터가 넘었을 땐 오히려 힘이 좀 덜 들었는데 풍경이 좋았고, 마침 나온 노래의 가사를 따라 지나간 고통이 훌훌 털어지는 것 같아 좋았다. 좋은 바람에 기억이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그래서 시작되었다. 오늘로 7번째 달리기. 사실 그 사이 7.01킬로미터를 달리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얼마나 더 할지 모르겠지만, 러닝화가 다시 워킹화로 전락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늘의 달리기 역시 좋았다. 첫 날과 오늘 말고는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춥고 힘들었는데 모처럼 날이 좋아 더 좋았다. 달리자. 어... 핑계가 있네. 조만간은 힘들고 다다음주 주말에. 삶이란 원래 그렇지. 운동은 미뤄야 제맛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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