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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람 Oct 04. 2022

이상한 세계에 왔다(2)

조리원은 병원과 연계되어 있는 곳으로, 같은 건물 칠 층에 있었다. 입원실은 사 층이었다. 간호사가 준비해 온 휠체어에 앉아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조리원에 들어섰다. 입소하자마자 시설의 설명을 듣고(두 발로 걸어서, 관리자를 따라다니며) 조리원에 달린 신생아실에서 아이의 상태를 확인받았다. 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는 토요일 오전에 태어났는데 주말은 진료날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리원으로 이동하는 월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여러 소식을 전해받았다. 아이의 쇄골이 부러져서 엑스레이를 찍었다는 전화를 받았고 아이의 일자 손금과 눈두덩이에 있는 연어반, 이루공 등에 대해 알려주러 산부인과의 수간호사님이 찾아왔었다. 조리원에서도 오전에 들었던 소식을 한 번 더 들었고,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머리에 꼬깔콘 같은 부위가 생겼는데 곧 가라앉을 거라는 설명을 들었던 게 실은 두혈종이고 크기가 쾌 커셔 신경 써서 관찰해야 한다는 말까지 추가로 들었다.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제발 한 사람이 한 번에 알려주길 바랐다. 안 그래도 저 멀리 있는 걱정까지 닥닥 긁어 끌어안고 사는 사람인데 이렇게 여러 명이서 어퍼컷을 때리듯 몰아치고 있으니 감당이 안 되었다. 특히 쇄골과 두혈종이 걱정되었는데, 아마 설명을 듣는 내 얼굴이 누가 봐도 심상치 않게 변했을 것이었다. 또 다른 간호사가 내 어깨를 쓸며 걱정하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쇄골은 곧 붙을 것이고 두혈종도 흡수될 것이다, 그저 부러진 쇄골 쪽의 팔과 두혈종을 가만히 놔두면 된다고 말했다. 엄마는 걱정하지 말고 몸을 추스리면 된다고. 그러나 그때의 나는 딱히 할 게 없단 이야기를 들었으면서도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당장 마음이 불안하여 속이 일렁거렸다. 자꾸 나쁜 생각만 들었다.


배정받은 방에서 짐을 풀다가 멍하니 앉아 있고, 또 짐을 풀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점심 시간이니 가서 식사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불안한 마음을 날리는 방법 중 하나는 일단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어둡고 고요한 방에서 나와 식당으로 갔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여자 셋에게 어색하게 인사한 뒤 뒤쪽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생각했다. 아, 이런 분위기인 건가. 끼어들지 못하겠는데. 오 분쯤 지나자 넉넉한 크기의 하늘색 파자마를 입은 여자가 한둘씩 들어왔다. 이미 서로가 익숙하여서 자리를 맡아놓았다며 누군가를 부르거나, 아까 말했던 그 유축기는 어디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밥은 혼자 먹어야 되나 보다 싶어 눈치껏 사람들을 따라 식판과 수저를 챙기고 음식을 받아 와 미역국을 한 술 뜨는데 내 맞은편에 한 명이 앉더니 또 내 옆에 한 명이 앉았다. 알고 보니 나처럼 그날 혹은 그 전날에 조리원으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겉도는 서로를 알아본 것인가. 우리는 전날에 먼저 입소했다는 여자의 주도로 인사를 나눴다. 여자가 물었다. 아기는 언제 낳았어요? 삼 일 전에요. 전 사 일 전에요. 저는 오 일 전에 낳았어요. 자연분만으로요? 네. 저는 제왕절개. 아, 제왕절개했구나. 네, 받아놓은 날짜에 못 할까 봐 조마조마했었어요. 담당의는 누구셨어요? 아무개 선생님이요. 그 선생님 진짜 괜찮죠! 나 둘째도 그 선생님한테 낳았잖아요, 너무 괜찮아서. 우리는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묻지 않고서 아이는 언제 낳았는지, 딸인지 아들인지, 어떻게 낳았는지, 담당의는 누구였는지와 같은 걸 묻고 답했다. 처음에는 이런 식의 대화가 너무 낯설었다. 좁디좁은 인간관계에서 매번 보는 사람과 매번 비슷한 이야기만 하고 살다가 모르는 사람과, 그것도 방금 막 알게 된 사람과 회음부 사정까지 공유하다니. 그렇게 수분을 이야기하고서야 깨달았다. 세상에. 너무 재밌다. 임신과 출산 이야기, 진짜 재밌다.


밥을 먹고 나가는 길에 신생아실이 있었다. 밥 한 번 먹고서 몹시 친밀해진 우리 셋은 신생아실 유리에 달라붙어 서로의 아이가 달고 있는 번호표를 일러주었다. 아이의 가슴팍에는 엄마의 방 번호가 달려 있었다. 나는 여자들에게 707 아이가 내 아이라고 알려주었다. 아이가 참 귀엽게 생겼다는 칭찬을 들었다. 나도 704, 709 아이가 참 예쁘게 생겼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아이를 낳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몇 마디를 더 보태고서 흡족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사실은 그날이나 그 전날 입소한 아이들은 맨 뒤쪽에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비싼 브랜드의 침대가 있는(하물며 마사지 기능도 있었다), 소파와 리클라이너와 텔레비전과 작은 냉장고가 있는 707호로 돌아가자 나는 다시 초조해졌다. 이번에는 좀 전과는 다른 유의 고민들 때문이었다. 왜 아이를 낳은 지 삼 일이나 지났는데 아무도 나에게 유축하는 법이나 젖 물리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가. 주말이 껴 있었다는 이유로 아직도 아이에게 젖 한번 물려보지 못했는데 괜찮은 건가. 젖은 언제부터 돌기 시작하는 건가. 방 안에 유축 기계가 있는데 이건 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건가. 그렇게 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한창 검색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예약해놓은 산후 마사지 시간이란다. 마사지숍으로 갔다. 마사지숍은 같은 건물 오 층에 있었다.


마사지숍에서는 어디서 많이 들어봤지만 제목은 모르는 잔잔한 노래가 흘렀고, 침대 네댓 개 모두 여자들이 반쯤 벌거벗은 채로 누워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나도 빈 침대에 가 누웠다. 마사지사가 와서 팔다리를 주무르며 아이를 언제 낳았는지, 어떻게 낳았는지, 초산인지 등을 물어봤다. 나이는 몇인지, 임신하면서 살이 얼마나 쪘는지도. 이미 점심의 경험으로 임신과 출산 대화에 재미를 붙인 나는 묻는 대로 온순하게 답했다. 그리고 물었다. 마사지 시간은 육십 분이었고, 마사지사는 주로 이 건물 사 층에서 아이를 낳고 칠 층에서 조리하는 산모들을 마사지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궁금한 걸 물어보기에 딱이었다. 나는 마사지사가 시키는 대로 다리를 접었다가 펴고 팔을 올렸다가 내리고 몸을 뒤집었다가 되돌리며 모유 수유는 언제부터 어떻게 하는 건지, 유축은 어떻게 하는 건지 물었다. 어머,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하고 마사지사가 물었다. 입원실에서는 주말이라고, 조리원에서는 바쁘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서요, 라고 답했다. 마사지사가 모유는 출산한 지 며칠이 지나야 돌기 시작한다면서 이제 나올 때가 되었으니 바로 가슴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따끈한 수건을 가슴 위로 올렸다.


마사지는 여러 번 받아보았지만 가슴 마사지는 난생처음 받아보는 것이었다. 그간은 가슴 위쪽이나 안쪽을 압박하는 게 다였는데 이번에는 마사지사가 유륜에서부터 유두까지를 집중적으로 쥐어짜며 마사지했다. 아팠지만 참을 만했고 시간이 지나자 시원하기까지 했다. 수분 뒤. 얼굴에 무언가 후두둑 떨어졌다. 젖이었다. 가슴이 서른두 해 만에 제 역할을 해내는 순간이었다. 이게 초유예요. 지금 짜놔야 이따가 더 잘 나오니까 아까워하지 말고요. 마사지사가 말했다. 누워 있었으므로 젖꼭지에서 젖이 분수처럼 튀어오르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얼굴로는 느껴졌다. 마사지사가 계속해서 내 유륜과 유두를 쥐어짰다. 어떻게 쥐어짜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낙농 체험을 갔을 때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배워둔 덕분에 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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