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지숍에서 성공적인 유전 개발과 더불어 가슴과 젖에 대한 정보를 얼마쯤 터득했다. 마사지사가 일러준 대로 했더니 유축기로 젖을 짜는 데에도 성공했다. 모양새가 웃기긴 했다. 가슴에 깔대기를 대고 유축기의 전원을 켜면 기계가 젖을 짜냈다. 대개 임신과 출산은 밖으로 꺼내 축하받는 이야기이고 출산 과정이나 수유 등은 여자들끼리 쉬쉬하는 이야기여서 그런지 가슴에서 뿌연 젖이 나오는 광경은 생경하고 신기했다. 서투르게 젖을 짜 모았더니 삼십 밀리그램쯤 나왔다. 노란빛이 도는 초유였다. 그걸 젖을 담는 전용 비닐팩에 넣었고 그 위에 나의 방 번호와 이름, 젖을 짠 시간, 양을 적어 조리원 로비의 지정 장소에 놓아두었다. 그러면 신생아실에서 그걸 가지고 가 아이에게 먹인다고 했다.
젖은 짜면 짤수록 양이 는다고 했다. 마사지사는 나에게 세 시간에 한 번씩 유축하라고 권했다. 세 시간에 한 번씩 모두 여덟 번을 유축하라고. 그 말은 밤에도 일어나 유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딱 한 번은 젖이 불어 땡땡해진 가슴이 너무 아파 새벽 세 시쯤에 일어나 유축했었지만 그날을 제외하곤 밤 유축을 하지 않았다. 일단은 잠을 자고 싶었다. 같은 이유로 밤에는 수유 콜도 받지 않았다.
신생아실에 있는 아이가 배고프다고 울면 산모에게 전화를 해주는 게 수유 콜이다. 아이가 배고파하는데 수유하러 오시겠어요? 수유 콜을 받는 여자는 조리원 생활이 바쁠 수밖에 없다. 아이는 두세 시간에 한 번씩 배고파하고 여자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틈틈이 마사지도 받아야 하고 조리원에서 하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해야 한다. 나는 한동안 수유 콜을 받지 않았었다. 아이에게 젖을 물려봤는데 잘 먹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조리원에 와서 산모가 모유 수유 하는 걸 도와준다는 전문가가 내 가슴을 들여다보며 말하길 유두가 짧아 아이가 잘 못 문다고 말했다. 그런 걸 보완해주는 장치를 해봐도 아이는 영 젖을 빨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아이는 내가 여기저기서 유축과 수유법을 배우는 며칠 사이 젖병으로 분유를 먹고 초유를 먹었다. 젖을 빠는 것보다 젖병이 훨씬 편하다는 걸 배웠을 것이다. 그러니 무리해서 젖을 빨고 싶지 않았겠지. 또 아이는 입이 짧아서 적은 양을 여러 번 먹었기 때문에 나도 직접 수유하는 것보다 젖을 유축해 신생아실로 보내는 게 훨씬 편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마사지사가 말했다.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마사지사는 내 얼굴 바로 옆에서 조금 새된 목소리로, 엄마는 계속해서 노력해야 된다고, 시간을 정해놓고 때마다 유축해 젖 양을 늘리는 것은 물론 될 때까지 젖을 물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겠다고 답했지만 마사지사의 말을 따르지는 않았다. 아이는 계속해서 유축한 젖과 분유를 번갈아 먹었다.
조리원을 나가기 이틀 전쯤부터는 오전 8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수유 콜을 받기로 했다. 알려줄 사람이 있을 때 젖 먹이는 법을 완전히 배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배운다고 해서 모유 수유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방법을 알고도 못 하는 것과 모르고 못 하는 것은 다르니까 일단 수유법을 배우기로 했다. 신생아실 옆에는 작은 대기실 같은 게 달려 있었고 방을 빙 둘러 파스텔 톤의 소파가 설치되어 있었다. 여자들은 대개 거기서 젖을 먹였다. 수유 콜을 받으면 그곳으로 가 아이를 받아서 젖을 먹이고 다시 아이를 신생아실로 돌려 보내는 식이었다. 아이가 배고파한다는 전화를 받고 가보면 한두 명의 여자가 앉아 젖을 먹이고 있었는데 후딱 먹이고 돌아가는 여자는 거의 없었다. 아이가 젖을 잘 물지 못하거나 좀 먹다가 잠들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면 여자들은 아이 볼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일어나서 맘마 먹어야지. 일어나. 아이는 일어나주지 않았다. 여자들은 아이가 일어나 다시 젖을 물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몇 분을 더 앉아 있으며, 그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가슴을 내보인 채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가 젖을 잘 안 무나 봐요. 저도 그래요. 주로 유두의 모양이 어떤지, 가슴의 상태는 어떤지, 지금 몇 분째 씨름하고 있는지 등을 이야기했는데 어떤 여자는 유두가 찢긴 듯이 갈라져 있다고도 했다.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어 몰랐는데 아이가 젖꼭지를 빠는 힘은 상상 외로 세다고. 여자는 아이의 입에 들어가도 괜찮은 순한 성분의 연고를 열심히 바르고 있다 했지만 젖을 물리는 한 나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결국 조리원을 나오는 날까지 젖 한 번을 제대로 먹여보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꼭 먹여야 한다고 교육받은 초유는 이미 유축해 먹였고, 후에도 유축해 먹이거나 분유를 먹이면 되었다. 분유를 먹이면 모유를 먹였을 때보다 수유 텀이 길어지는데 새벽에는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었다.
세끼를 챙겨 먹고, 마사지를 받고, 조리원에서 이런저런 것을 배우고, 좀 쉬고. 별다르게 한 일도 없는데 얼렁뚱땅 시간이 흘러 12박 13일이 지나버렸다. 그사이 쌓은 육아 지식이라곤 겨우 한 줌에 불과했고 아이를 안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조리원에 들어온 지 13일째 되던 날, 아이를 낳으러 가기 위해 대충 주워 입었던 원피스를 다시 꺼내 입고 여자들에게 안녕, 잘 있어요 인사하고서 조리원을 나섰다. 아이와 나를 배웅하기 위해 따라나선 조리원 선생님이 둘째도 우리 조리원으로 와달라고 했다. 하하. 웃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