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없는 글쓰기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소설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다”라고 말합니다.
임경선 작가님은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에서 “자기 안에 뭔가 쓰고 싶은 것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합니다.
또한, “지금 바로 현장에서 경험한 것으로 요리해서 내주는 것, 다시 말해 외적인 자극을 연료 삼아서 쓰는 방식의 글쓰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한계가 느껴진다”라고도 했습니다.
재능도 없고, 쓰고 싶은 것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닌데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외적인 자극을 연료 삼아서 글을 쓰는 사람이 저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릿속이 멍해집니다.
분명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막막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능 다음으로 꼽은 것이 집중력과 지속력이었습니다.
재능은 없다 치더라도 집중력을 발휘해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는 있었을 텐데.
“이와 같은 능력(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해 나갈 수도 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님, 재능이 없다면 집중력과 지속력도 부질없는 건가요?
사실은 이렇게 물어볼 만큼 떳떳하진 않습니다.
집중력과 지속력을 크게 발휘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겠다는 다짐도 흐릿해지고 글을 쓸 수 없었던 변명들만 늘어놓습니다.
몸이 안 좋아서, 시간이 없어서, 도저히 쓸 얘기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재능도 없는데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글을 쓰지 못할 이유는 수십 가지가 넘는데 문제는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것입니다.
무리인 줄 알면서도 글쓰기를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와 별개로 머릿속은 텅텅 비어 있습니다.
짧은 지식에 차단된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아는 것이 없기에 이 책, 저 책을 찾아보지만, 나는 목을 가누지도 못하는 신생아 같습니다.
어디서부터 공부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도 몰라 그때그때 꽂히는 책을 읽습니다만.
책을 읽을수록 나의 부족한 부분만 더욱 도드라져 보입니다.
어떻게 이 사람은 이렇게 깊은 사유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사람은 이렇게 적절한 단어를 딱 알맞은 곳에 배치할 수 있을까?
나의 통찰력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깊은 사유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자괴감에 빠져듭니다.
제일 큰 문제는 자꾸 안 되는 이유들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걱정할 시간에 한 문장이라도 더 쓰는 것이 나을 텐데.
소재가 번뜩 떠오르지 않아 초조하게 책만 읽어 되지만 나는 이런 글을 쓸 수 없다는 비참한 생각만 들뿐입니다.
글을 쓸 수 없어 자꾸 책 뒤로 숨는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아직은 글을 계속 쓰고자 합니다.
재능은 차치하고 일단은 집중력과 지속력이라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난 아침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시답잖은 글이라도 시간을 내지 않으면 쓸 수 없습니다.
중요한 일을 자꾸 뒤로 미루고 회피하는 성격이 글쓰기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임에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과 한참 떨어지는 실력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만 증폭시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닌데 글을 쓰지 못하면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끝내 작가가 될 수 없다 해도 지금은 계속 쓸 수밖에 없습니다.
글쓰기는 어쨌든 나를 깊이 알아가고 들여다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니까요.
초등학교 6학년 큰 아이는 아직도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른다고 합니다.
엄마도 마흔이 넘어서야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고 말해줍니다.
죽을 때까지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도 덧붙입니다.
글쓰기는 나에게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고 두렵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만으로도 큰 수확을 얻은 셈입니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좀 더 노력을 해야겠지요.
다음 책은 집중력에 관한 책을 읽어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