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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애 Sep 26. 2022

시집 필사 중

『나의 이름을 묻는다』중 '강태공 선생'


강태공 선생


아래층 정 선생은 환생한 강태공

교로리 바다 뿌윰한 안개 속에

뚝심 좋게 밑둥 깊숙이 드리운다

치밀한 바람의 공작도

오선지 위를 톡톡 튀는 파도의 넉살도

넉넉히 가슴에 안고

미끼 걸어 인생을 낚는다

홀로 서서 노을이 된다


아래층 정 선생은

노을 속에 놓아준 월척 낚으러

세월을 헤치며 바다로 간다

저만치 허물어진 썰물의 잔해가 질척하게

두 발에 감기어오면

그 선한 눈 슬며시 들어

멀어지는 바닷속으로 잠기어 간다

바닷속에서 또 환생을 꿈꾸는

아래층 정 선생은

출처: 김미향 시집 <나의 이름을 묻는다>


교로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에 있는 리(里)이다. 평야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서쪽으로 바로 서해와 접하고 있으며, 간척사업으로 농경지가 넓은 면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다. 자연 마을로는 교로, 강계원안, 됀섬 마을 등이 있다. 교로 마을은 지형이 다리처럼 생겼다 해서 다리길이라 불리다가 후에 교로 마을이라 개칭되었으며, 강계원안 마을은 돈섬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됀섬 마을은 북쪽에 돈처럼 생긴 섬이 있다는 의미에서 됀섬 마을이라 불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교로리 [Gyoro-ri, 橋路里] (두산백과)


'뿌윰하다'는 빛이 조금 부옇다. '부윰하다'보다는 센 느낌을 준다. 치밀한 바람의 공작이나 파도에도 굴하지 않고 뿌윰한 안개 속에 홀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바라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강태공.


작년 여름, 여수 밤바다를 구경하러 남편 친구 부부와 여수 바닷가의 한 펜션에서 1박을 할 때 부둣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밤낚시를 하던 강태공을 봤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새우다 새벽에 바닷가로 나갔다. 그때까지 뿌윰한 안개 속에 홀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미동도 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던 강태공, 그가 노을 속에 홀로 서서 미끼 걸어 인생을 낚는 아래층 정 선생이었을까.


한자어 '수중(水中)에 대한 순우리말 표기를 '물속'처럼 쓰듯이 '해중(海中)에 대한 우리말 표기는 '바닷속'과 같이 쓴다. 그러나 시인은 바닷속이라 하지 않고 일부러 '멀어지는 바다 속에 잠기어 간다',나 '바다 속에서 또 환생을 꿈꾸는'으로 표현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나는 '앗싸~! 볼가지!' 하고 슬그머니 '바닷속'으로 고쳤다.


                                                                필사 흔적


간밤에 '강태공 선생 ' 시를 몇 페이지에 걸쳐 쓰고 또 쓰고를 했는데 오늘 기억을 되살리려 했더니 '아래층 정 선생은 처음 본 강태공처럼 새롭다. '교로리'는 발음이 꼬이고 '뿌윰한'은 여전히 낯설다. '뚝심 좋게'는 자꾸 까먹어 '팔뚝'을 연상하며 겨우 넘어갔다.


밤새 헛짓을 했다. 나는 대체 무얼 하느라 까만 밤을 하얗게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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