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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애 Sep 23. 2022

손가락 빠는 할머니

광주역 쪽으로 가는 38번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거려 빈자리가 있을 거란 기대를 안 했는데 웬걸! 운전석 뒤로 두 번째 좌석 하나가 비어 있었다. 창가 쪽에는 초라한 행색의 할머니가 앞 등받이에 머리를 숙이고 손가락을 빨고 계셨는데 아무도 그 옆에 앉으려 하지 않았다. 앗싸! 그 자리는 내 차지가 되었다.   


나보다 먼저 차에 오른 사람들이 그 빈 자리에 앉으려다 말고 복잡한 통로에 부대끼며 서서 가거나 뒤쪽으로 가버린 이유가 아무래도 손가락을 빨고 있는 할머니의 행동이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여긴 듯하다.      

할머니는 내가 앉거나 말거나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잔뜩 웅크리고 계셨다.

"쪽쪽!"

 쭈글쭈글하고 뼈마디가 앙상한 손을 모아 쥐고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이 허옇게 불도록 쪽쪽! 소리를 내며 계속 빨고 계셨다.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를 보니 나는 왠지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도 나고 짠한 마음이 들어 일부러 말을 건넸다.     

“할머니, 왜 그러고 계세요? 어디까지 가세요?”

“손꾸락이 하도 애려서 학동에 가믄 잘 듣는 약을 처방해주는 병원이 있다고 항께 한번 가볼라고 그라요. 내가 손꾸락을 빨고 있응께 남들이 보면 노망했다고 생각할랑가 몰라도 이라고 빨고 있을 때는 쑥쑥 애린 것이 원어니(한결) 괜찮은께 할 수 없어라우.”

할머니는 말이 끝나자마자 도로 고개를 숙이고 손을 입으로 가져가셨다. 


잠시지만 약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할머니가 아닐까, 선입견을 갖고 보았던 게 죄송스러웠다.

“할머니, 손꾸락이 어떻게 아려요?”

“공판장에서 파를 좀 다듬었드마 그라요. 파 한 단 다듬어 봐야 달랑 400원 준디 놀면 뭐 한다요? 그거라도 아쉬운께 소일거리로 파를 다듬었드마 인자 허리도 아프고 손끝이 모두 벌어지고 이라고 쑥쑥 애리요.”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젊어서 혼자되어 온갖 고생을 하며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를 보내셨다고 한다. 60세부터 한 10년은 자식들이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더라고 했다. 이제 힘든 일을 그만하고 편히 사시라고 했는데 IMF 이후 경기가 워낙 안 좋아 형편이 어려워진 자식들한테 부담 안 주는 것이 돕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소일거리로 파 다듬는 일을 한다고 하셨다. 


광주에 자식들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다들 지들 사는 게 빠듯한데 얼마나 용돈이라고 주겠냐는 거다. 지들이 줄 때는 큰맘 먹고 줘도 받는 입장에서는 턱없이 모자란다고 하셨다.

잘하고 싶어도 돈이 앞서야 한 번이라도 더 찾게 되는 것이라는 할머니.     

파 한 단 다듬으면 400원 준다니 종일 다듬어봐야 얼마나 돈이 될까마는 그것도 아쉬워서 무리를 하여 손끝이 죄다 갈라져 쑥쑥 아린다고 하시는데,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에 찌들어 할머니의 등골이 휜 것이 역력했다.     


얼마나 견디기 힘드셨으면 무슨 병원인지 간판도 모르고 학동에 있는 병원이라는 것 밖에 모른 채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듯 무작정 버스를 타셨을까. 입이 서울이지 않느냐고 하시는 할머니. 남광주에서 내려서 사람들한테 물으면 못 찾겠느냐고 하셨지만 할머니가 가시고자 한 병원을 잘 찾아가셨을까. 

내가 출근만 아니면 같이 찾아봐드리면 좋겠는데 도중에 먼저 내려야 했기에 할머니께 병원 치료 잘 받고 조심히 가시라고 말씀드렸다.

그 할머니를 보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친정엄마 생각이 나서 더 마음이 쓰였다.  


지난주에 엄마한테 전화를 드렸을 떼 엄마도 소일거리로 양파 껍질 벗기는 일을 하신다고 했다. 뭐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하여 숨이 막힐 것 같아 견딜 수 없다고 하셔서 극구 말리지를 못했다. 매운 양파 껍질을 벗기시면서 그 할머니처럼 얼마나 손이 아리셨을까. 

양파가 너무 매워서, 라는 핑계를 대며 그동안 꾹꾹 눌러 참았던 눈물을 맘껏 토해 내셨을까?    

 

1시간 40여 분 거리에 살면서도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 딸년은 먹고 사느라 바빠서, 라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다. 오늘은 안부전화라도 드려봐야겠다. 

내내 마음에 걸리는 그 할머니도 치료 잘 받으시고 얼른 나으시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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