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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소장 Oct 21. 2023

01. 프롤로그


 열 평 남짓 되는 공간 테이블을 둘러싸고 여러 명이 화기애 하게 모였다.

 오후 1시가 넘긴 나른한 시간이지만 부동산 사무실은 활기가 넘친다.

 “이제부터 잔금을 시작합니다.”

 서희자 소장 말을 시작으로 다 같이 고개를 끄떡인다.

 집을 파는 매도자 부부가 먼저 자리에 잡았고, 마주 보는 편으로 매수자 부부가 앉았다. 그 양옆으로 등기 진행을 할 법무사와 서소장이 앉았다. 

 “저는 매수자 대출 은행에서 나온 법무사입니다. 반갑습니다. 매도자 분과 매수자 분의 제가 미리 말해둔 서류들 부탁드립니다.”

 등기를 진행하는 법무사가 매도인과 매수인의 서류를 확인하고 있다.

 서희자 소장은 매도자와 매수자의 서류를 받아 법무사에게 건네고, 짐짓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조금 띄운다.

 그 사이 매도자 철원은 머뭇거리며 조심스레 매수자 재호에게 말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먼저 저희 집을 구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파트 첫 분양이 되고 너무 기뻤어요. 물론 대출도 해서 첫 입주를 했죠. 어쩌면 은행과 함께 공동명의인 셈이죠. 아내와 함께 열심히 살면서 대출도 어느 정도 갚았고요. 항상 처음이 설레더라고요. 첫사랑 첫눈 그러지 않습니까? 하하. 첫 집이다 보니 못질하는 것도 아까워서 못 하나 못 쳤어요. 저에겐 그런 집입니다.”

 철원의 아내 수진이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을 이어간다.

 “이제 이 집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사실 어젯밤에 잠을 설쳤답니다. 남편과 함께 이곳에서 이쁜 첫째 딸아이를 낳았고 지금은 둘째가 어느덧 세 살입니다. 첫 발을 내딛으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열심히 살아보자! 힘차게 다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느껴져요. 이 집 기운이라고 할까요? 하는 일마다 잘 풀렸고, 정신없이 살아보니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어요. 축복이라면 축복이죠.”

 수진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옛 생각에 잠겨 서둘러 눈가를 닦아낸다. 

 “첫 보금자리에서 6년이란 시간은 되돌아보면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좋았던 기억이 더 많아요. 그래도 함께라서 잘 버텨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시작하는 신혼부부를 보니 옛날 저희 모습이 생각나네요. 이 집에서 좋은 기운 받으셔서 저희처럼 이쁜 아이도 두 명 낳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라요.”

 매수자 재호는 말을 듣는 내내 한쪽 심장이 간질간질 거린다. 

 “결혼 생활의 선배분께 진심 어린 조언을 들으니 걱정만 앞섰던 제가 조금은 힘이 납니다. 사실 저희 집 계약하기 참 많이 망설였거든요. 매매를 해야 하나 형편에 맞춰서 전세부터 시작해야 하나? 내내 안갯 속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직은 직장에서 비정규직이라 대출을 내면 원금과 이자는 감당할 수 있을까? 막연한 미래에 걱정이 앞서더라고요. 아내의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우리 이제 한 걸음 내디뎠는데 시작부터 걱정하지 말고 함께 헤쳐나가 보자고요. 그 한마디에 서소장님과 상담 끝에 대출을 일부 받아 집을 사게 되었죠.”

 서소장은 매도자와 매수자의 사이에서 그들의 대화에 묻어나는 따스함을 느껴본다.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재호 씨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다 말을 건넨다. 

 “철원 씨 제가 재호 씨한테 이야기 다 했어요. 철원씨네도 신혼부부로 시작해서 이쁘게 잘 살다가 돈도 많이 모으고 두 명이였던 가족이 어느새 네 명이 되었다고요. 큰 집으로 좋은 곳으로 이사 간다고 했어요. 그리고 재호 씨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벌써부터 걱정하지 말고요,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봐요. 사실 저축하는 것보다 대출받으면 이자 갚는 게 무서워서 더 절약해서 돈 빨리 모을 수 있어요. 차근차근 대출 갚다가 보면 대출은 없고 집은 남아있을 거예요.”

 은주는 대게 이야기를 하는 편보다 듣는 게 편안하다. 이 집을 사길 잘했다고 혼자서 다독인다. 재호의 손을 잡으며 매도자 철원씨네 부부를 보며 빙긋 웃어 보인다.

 “저는 결혼도 저에게는 사치스럽게 느껴졌어요. 저희는 어느 신혼부부처럼 양가에서 돈을 보태줄 여력이 되지 않아요. 처음엔 그런 제 친구들이 너무 부럽더라고요. 시기 질투도 났어요. 근데 더 화가 나는 건 시기 질투를 하는 제 모습이더라고요. 제가 너무 초라한 거 같았어요. 결혼 시기는 다 비슷하잖아요.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더라고요. 누구는 시댁에서 집을 해줬다, 결혼하는데 돈을 얼마 보태줬다 그런 이야기들 알죠? 왜 나만 돈 없는 집에 태어났는지... 왜 나만 불행한지... 다들 돈 걱정 없이 결혼생활 시작하는 거 같은데.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니 더 어둠 속으로 가라앉더라고요. 어느 누구보다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달라진 게 없어요. 애초에 시작점이 다르니깐, 출발선부터 뒤로 처지니깐 사는 게 불공평하고 불안한 마음에 눈물도 많이 흘렀어요.”

 은주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수진은 조용히 휴지를 꺼내어 건넨다. 

 “은주 씨, 저희 역시도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분양을 받았을 때 부동산 시장흐름이 좋지 않았어요. 주변에서 덜컥 사고 쳤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경기가 나쁠 때는 대출 이자가 꽤 높아요. 그래도 우리가 살아야 할 보금자리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밖에서 일하고 힘들 때 맘 편히 몸 하나 누울 공간은 있어야 될 것 같았어요. 지금은 걱정되고 불안할 거예요. 앞날이 불투명하니깐 미래를 알 수 없으니깐. 지금 현재를 열심히 살아봐요. 지나온 과거는 과거일 뿐이에요. 현재를 살아야 앞으로의 미래가 바뀔 거예요.”

 삶을 조금 더 살아온 법무사는 이런 순간이 좋다. 타인의 삶을 존중하며 공감하는 훈훈한 모습들. 하지만 얼른 여운에서 깨어 마무리를 지어야 할 차례이다.  

                          

 법무사는 묵묵히 서류를 검토 중이다. 벽시계에 시간을 확인한다. 등기국에 늦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 더 앉아있다가 그들의 뒷 이야기가 더 궁금해질 거 같다.

 “흠흠... 이제는 제가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매도자 필요서류와 매수자 필요서류 확인을 마쳤습니다. 저는 이제 자리에 일어나서 일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고생하셨고요. 일 처리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서소장은 눈치껏 재빠르게 상황을 판단한다. 그냥 가만히 지켜보다가는 자칫 시간이 늘어질 거 같다. 잔금 분위기는 좋았다. 이제 이 자리를 서둘러 정리하여 마무리 지어야겠다.

 “오늘 서류는 법무사님께서 확인하셨고요. 매수자분은 오늘로부터 등기부필증은 약일주일 정도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 사이 제가 확인 후 다시 연락드릴게요. 매도자분은 정든 집에서 이사 갈려니 많이 서운하시죠? 그래도 매수자분께서 좋은 기운 이어받아 이 집에서 잘 살 거예요. 우리 모두 응원하며 인사해요.”

 서소장의 말을 끝으로, 철원과 재호는 악수를 하였고 수진은 은주를 조용히 안아주었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이다.      

                                       


 북적였던 부동산 사무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서소장은 테이블 주변을 정리하다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근데, 희진 씨 왜 눈 주변이  벌겋게  있어? 뭔 일 있었던 거 아니지? 중간에 물어보고 싶었는데 차마 묻지를 못해서 지금 물어보는 거야.”

 처음 시작부터 자리를 모두 떠날 때까지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제야 목을 가다듬고 말하기 시작했다.

 “서소장님, 저는 너무 신기한 경험을 한 거 같아요. 이렇게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 한 날 한 시에 부동산 사무실 테이블에 앉아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다들 웃으면서 응원하고 같이 공감하는 모습이 참 묘했어요. 가슴이 뭉클뭉클 간지럽기도 했고요. 수진 씨가 눈물을 닦는데 저도 같이 눈물 나더라고요. 저도 그랬어요. 수진 씨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더 많았어요. 살아간다는 게 마음이 조급해지는구나 싶었거든요. 근데 그게 저만 느끼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들을 보면서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 아가다 보면 조금은 달라지겠죠. 지금보다.”

 서소장은 크게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내 눈에 희진 씨가 왜 이렇게 귀엽게 보일까? 감정이 풍부하다는 건 반대로 상처받을 일도 많다는 거야. 사소한 일에 본인의 감정이 동요되면 더 힘들어지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감정에 스스로가 둔해지려고 노력해. 잔인한 말이지만 나만의 방어기제야.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먼저 선수 치는 거지. 나이가 들수록 더 감정변화가 둔해져. 또 그러려고 부단히 발버둥 치고 있는 중이야.”

 서소장의 말속에서 그 나름의 삶의 애환이 느껴진다.

 “부동산 일을 하면서 가끔 손님 때문에 화가 날 일도 있지만, 막상 그렇게까지 화가 잘 안나.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 뇌를 속인다는 말 들어봤어? 예를 들어 ‘나는 화가 나지 않는다. 화가 나지 않는다’ 무의식의 원리를 이용하는 거야. 주문이 먹히는 거야. 그러면 또 그렇게 되는 거 같아. 그래야 일하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 게 조금은 편안해져. 아직은 이게 무슨 말인지 공감대가 와닿지는 않지? 조금 더 살아봐.”

 희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다가 적어둬야겠다 생각을 했다.

 “혹시 서소장님 최근에 책을 읽은 지가 언제예요?”

 서소장은 짐짓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엉뚱한 희진 씨, 또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거야? 사실 책 안 본 지 오래됐어.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도 안 나. 부동산 일을 시작하고 나서 더 그런 거 같아. 우리 일이란 게 그렇더라고. 큰돈이 오고 가는 일이라서, 계약시점부터 명의가 매수인으로 등기되기까지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로맨틱하게 감정적일 여유가 안 생기더라고. 나이가 들수록 잔잔한 드라마보다 자극적인 소재의 막장드라마 보는 이유가 그런 거 같아.  감정이 무뎌지니깐. 웬만한 소재로는 반응이 없거든. 희진 씨는 그런 생각 안 들어? 일일 드라마가 막장인 이유가?”

 그렇게 서소장과 사람들이 빠져나간 그 공간을 한동안 웃음소리로 채워 넣었다.     


 천천히 공간을 둘러본다. 매도자가 앉았던 자리의 방석도 가지런히 배열해 두고, 수진 씨가 눈물을 글썽이며 닦던 티슈도 테이블 위에 두었다. 부동산 사무실이라는 열 평 남짓 되는 공간이 살아 숨 쉬는 거 같았다. 아무 연관성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웃고 눈물도 글썽거리는 그런 장소가 되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뭔가 하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다른 의미로 가슴이 띄었다. 그런 느낌은 오랜만이라 스스로가 놀라웠다. 

 직상생활을 하면서 일이 힘든 건 아니었다. 첫 째 아이를 여기저기 맡기고 출근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둘째 아이까지 맡아줄 누군가가 없다는 데 좌절해 버렸다. 그땐 모든 게 다 싫었다. 나만 시커먼 동굴 같은 삶 속에 던져진 느낌이다. 어둠 속에 홀로 앉아 머리를 감싸고 소리 나지 않게 울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래서 경력단절 여성이 생긴다는 거야!” 그러면서 결국엔 일을 그만뒀다. 어쩌다 보니 나는 전업 주부로 살게 되었고, 삶의 굴복해야 하는 무력함이 싫어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에 도전했던 것이다. 

 오후 1시부터 부동산 중개업소 사무실에 무지개가 떴다. 철원씨네 부부 철원 씨 신혼부부 서소장 법무사 그리고 나. 한 공간에 7명이서 각자 다른 색깔의 띄며 무지개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누가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우린 이 공간에서 하나의 무지개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설레는 좋은 가슴 두근거림. 나만의 공간을 찾아 또 다른 무지개를 띄어 보아야겠다 생각했다. 무지개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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