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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

가장 연극적인 햄릿, 그 단상

by Prompt Side

햄릿이라는 캐릭터가 워낙에 배우마다 해석이 갈리는데 이 극에서는 '똑똑하기에 망설이는'을 가져왔다고 생각했고... 마지막에 레어티즈와의 대비로 그게 좀 확실해짐. 햄릿 자체가 가진 고결한 영혼을 지키기 위해 햄릿은 복수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사유하고 망설이나 흔들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그 과정에서 유달리 햄릿이 더 조심스럽고 고결하게 보였다... (전 개인적으로 햄릿의 복수는 절대 고결하게 끝맺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그게... 되네? 하면서 봤습니다...)
운명에 휩쓸리기 직전 이미 그 운명을 직감할 만큼 영민한 햄릿이기에 그게 가능했다 봄.

난... 너무 무딘 건가
원작 텍스트에 비해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태도가 빚는 불쾌함이 한결 상쇄된 느낌이었어서.
특히 거드 루트에 대한 태도에서 이런 확신을 얻었는데, 강필석 씨가 되게 어머니에게 매달리는 느낌의 햄릿을 줘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말 많았던 오필리어....... 이쯤 되면 상당히 괜찮지 않나ㅡ.. 사실 난 되게 마음에 들었다. 오필리어의 죽음은 과연 아름답게 묘사되는 게 맞나? 에 대한 고민을 입시 때부터 갖고 있었는데... 애당초 '정신이 나갔지만 처연하고 아름다운 오필리어'의 강박에서 벗어나니까 아름답게 묘사된 텍스트도 결코 아름답지 않게 여겨지고 그 두 개의 부조화가 생겨서... 그래서 그 이후로 나오는 오필리어의 모습도 아름답게 안 보임... 분명 엄청 하얗고 아름다운데도...
다만 박지연 씨가 연기를 너무 잘하셔서... 난 여기서 좀 힘들었음ㅠ 우리 할머니 장례식 때 생각나서 좀 어질어질거렸음...

최대한 뒤를 안 돌아보는 시선처리 너무나도 극호.
시선의 극적 허용 내가 너무 사랑하잖아... 2막 엔딩에서야 다들 뒤를 바라보며 걷는데 죽음으로 시선의 제한에서 자유로워진 게 너무너무 좋았다. 장례식 때부터 이어진 약간 암묵적인 극적 허용의 종결... 하... 고전 좋다

나는... 살면서 그렇게 연출적으로 초라한 사느냐 죽느냐는 처음 경험해봤음. 극의 중심을 관통하는 대사기에 다들 거기에 힘을 줘서 연출하는데 온전히 배우의 역량에 그 신을 맡기는 도박을 하다니... 근데 저 연출이 강필석 배우님의 햄릿과 맞닿아있어서 좋게 다가올 수 있었음... 흔들리지 않는 햄릿에게 바다 그 자체를 맞서게 하는 행위... 거대한 운명의 파도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운명 앞에서 햄릿의 발버둥이 초라해지는... 어쩌면 햄릿이 삶과 죽음에 초연한, 온전한 자신이 될 수 있게 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이 지점을 끝까지 밀고 나가주는 엔딩
무대 자체가 그냥 커다란 무덤과 같고 움직이는 가벽? 기둥? 들마저 묘비명의 일부같아 보인다. 거대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작고 보잘것없는 인간의 모습이 생각난다.라고 말했는데 결국 묘지로 끝나는 엔딩은 그 지점을 너무 완벽하게 보여줘서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극의 가장 특이한 점은 역시 포틴 브라스의 부재!
레어티즈 보면서 레어티즈를 저런 햄릿의 안티에 세워놓으면 포틴 브라스는 어쩌려고?? 했는데 포틴 브라스를 없애고 배우들을 등장시키며 끝내는 엔딩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애초에 원작에서도 갑자기? 싶었던 느낌을 많이 받았으니까. 대신 극중극 쥐덫에 나오던 배우들을 출연시켜 정말 하나의 극이 끝났다는 느낌을 줬는데, 햄릿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극적이고, 이상주의적이며 염세적인 부분을 연극적이다.라는 단어로 함축해서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서 이 극이 끝날 때 나오는 햄릿의 독백 "이것은 나의 무대, 나의 연극. 나는 배우, 자네는 관객"이 저런 연극적인 부분에 방점을 찍어줌과 동시에 제4의 벽을 넘어 정말 이 극과 햄릿의 여정이 끝났음을 알려준다. 그 이후 배우 역의 배우들은 시작 장면의 햄릿 선왕의 장례식에서 했던 대사를 햄릿과 햄릿 선왕이 나란히 선 위치에서 반복함으로 여운과 동시에 햄릿이 전하고자 한 바를 간접적으로 외친다.

이후 커튼콜 역시 햄릿이 뒤돌아 배우들에게 한 번, 관객에게 한 번 하는 인사는 햄릿의 무대라는 설정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햄릿이 워낙 유명하고, 고전의 정석 같은 작품이라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하며 공연을 봤는데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 '연극'에 가장 충실하고, 연극의 매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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