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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살이v Nov 24. 2022

월드컵과 도파민

이 모든 게 과정

 2022년 카타트 월드컵이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월드컵은 역사상 처음으로 중동에서 열림과 동시에 11월 늦가을~겨울에 열린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이목을 끕니다. 제가 처음으로 기억나는 월드컵은 1994년 미국 월드컵입니다. 당시 서정원 선수가 스페인전에서 2대 2 동점골을 넣고 만세를 부르며 달려가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이후 월드컵에 차츰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저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기점으로 축구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에서는 티에리 앙리와 지네딘 지단, 브라질에서는 호나우두와 히바우두 선수를 비롯해 걸출한 축구스타들이 즐비했을 뿐 아니라, 치열했던 명승부가 많아 역대 월드컵 중 손꼽히게 흥행했던 대회라 들었습니다. 결승전에서 프랑스가 브라질을 3대 0으로 격파할 때의 그 열광의 순간이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스케치북에 나라별로 신문 스크랩을 해가며 대진표를 완성해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 전만큼 축구 경기를 즐겨 보진 못하지만, 그 시절 그 열정만큼은 평생 간직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축구는 참 신기한 운동입니다. 넓은 잔디밭에서 축구공 하나만 두고 규칙도 간단합니다. 그물망이 있는 넓은 골대에 손과 팔을 쓰지 않고 신체의 모든 부위를 이용해서 공을 넣으면 끝입니다. 물론 오프사이드 규칙이나 인져리 타임 (injury time) 등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좀 난해할 수 있는 규칙이나 기술적인 부분도 존재하지만요. 축구가 둥근 공과 넓은 운동장만 있으면 가능하기에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축구에 열광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축구 경기를 보다 보면 11대 11의 선수들로 각각의 팀이 이루어져서 서로 패스를 주고받으며 골을 향해 서로 경합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한 무리의 수컷 이리떼가 연상됩니다. 골을 넣고 포효하는 모습도 마치 짐승의 포효와 유사합니다. 여타 종목과 달리 골 세리머니가 축구만큼 잘 발달한 게 있을까요. 이래저래 축구 경기장만큼은 테스토스테론 (남성호르몬)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듯합니다. 이런 감정은 저만 느끼는 게 아닌가 봅니다. 비록 여자 축구도 있지만 남성 축구만큼 흥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다른 많은 분들도 과격하면서도 협력이 필요한 모습을 보며 수컷 이리떼를 연상하는 게 아닐까요.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운동 중 특히 축구에서만큼은 남자 축구가 아직까지 여자축구보다 훨씬 재밌습니다. 


  뜬금없지만 도파민에 관한 얘기를 해보렵니다. 이제까지 밝혀진 뇌 연구에 따르면 중뇌의 복측피개영역 (ventral tegmental area)에서 전뇌 (forebrain)로 연결되는 도파민성 신경회로가 쾌락과 보상에 관련되었다고 합니다. 도파민성 뉴런을 자극하는 약물로 헤로인, 코카인, 니코틴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중독'과 관련된 약물로서 서로 다른 작용 기전을 가지지만, 강력한 향정신성 작용을 일으켜 더 많은 행동을 일으킨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 약물에 중독된 경우 같은 효과를 보기 위해서 더욱 많은 약물을 요구하게 된다는 점 (약물 내성 -  drug tolerance)을 보입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울프람 슐츠 (Wofram Schultz) 박사팀은 도파민 뉴런의 작용 기전을 알기 위해 원숭이와 주스를 이용했습니다. 결론부터 보자면 '기대한 것보다 더 좋은' 사건만 도파민 뉴런을 활성화할 수 있었고, '기대한 것보다 나쁜' 사건은 도파민 뉴런의 활성화를 억제하였습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기대한 만큼의 쾌락적 보상을 준다고 하더라도 도파민 뉴런이 과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다시 축구 얘기로 돌아와 볼까요? 그저께 있었던 경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 (피파랭킹 51위)가 전반전 아르헨티나 (피파랭킹 3위)에게 1대 0으로 지고 있던 경기를 후반전 2대 1로 멋지게 뒤집었습니다. 중동 사람들을 포함해서 많은 축구 관계자들이 이런 기대하지도 못했던 경기 결과에 '최대 이변'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환호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인 권력자인 무하마드 빈 살만 (흔히들 '빈 살만'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아버지 '살만으로부터'라는 뜻으로 정식 명칭이 아니다) 왕세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경기 다음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고도 하네요. 게다가 16강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진출한다면 개인당 190억 원의 포상금이 주어질 거라는 소문이 돌기도 합니다. 어제는 일본이 월드컵 강국 독일을 꺾는 이변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정말 축구공은 둥근가 봅니다. 월드컵이 피파랭킹 순위대로 성적이 난다면 무슨 재미로 보겠습니까. 


 어린 딸아이들 노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애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큰 만족감을 느끼는 듯합니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프린트 종이를 오려서 갖은 역할놀이를 하면서 마치 그 세계에 푹 빠진 듯 행복해합니다. 미하이 칙센하이가 말했던 '몰입 (flow)'의 단계에 비교적 쉽게 도달하더군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만 늙어가는 게 아니라 점점 흥밋거리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음악적 취향도 대개 20세 이전에 형성이 되어, 그 이후에는 큰 변동이 없다고 하더군요. 따라서 나이가 들어도 과거 20대 이전에 즐겨 듣던 음악만 고집하는 것이 그냥 향수가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 형성되는 취향이 평생 지속된다는 말이 과학적으로도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요즘 유독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생각들이 듭니다. 이전에 원했던 목표만을 위해 달려왔으나 그 이후 밀려드는 허무함 때문일까요. 프랑스 철학자 쟝 폴 샤르트르는 얘기했죠.


 "Life is C (Choice) between B (Birth) and D (Death).” 


 인생사 괴롭고 선택할 것도 많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고민만 하고 선택과 그에 따르는 책임만 지다 보면 한평생 지나가는 듯합니다. 문득 목표를 정해서 매진하는 것도 좋지만 어찌 보면 그런 모든 일련의 '과정 자체'가 주는 만족이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전부가 아닐까 합니다. 마치 여행을 가기 전 계획하고 짐을 싸면서 설레기 시작하면서부터 여행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광고 카피 문구처럼요. 


  우리에게 삶의 목표라든지 인생 계획 같은 거창한 어젠다들도 사실 뇌에서 동기 부여를 위해 국소적으로 일어나는 도파민의 작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환원론적 자연관일지도 모르겠으나, 살아볼수록 사람이 만족을 느끼는 건 꼭 대단한 일을 이루어서가 아닌듯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성취, 즉 큰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 느끼는 일련의 과정의 합이 인생의 전부가 아닐까요. 


사실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우승을 하든 아니면 예선에서 탈락 하든 사실 우리 국민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직접적인 포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무언가를 위해 간절히 염원하고 또 반대로 실망하기도 하죠. 축구라든지 어떤 경기에 아직 집착할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행운입니다. 아직 축구 경기를 보고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노화와 더불어 약물 내성처럼 점점 더 고갈되어 가는 도파민 (뇌신경전달물질) 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하면 현학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세계적인 부자인 일론 머스크나 무하마드 빈 살만 같은 분들이 만족을 느끼려면 천문학적인 액수가 필요할 듯합니다. 아마 그런 분들은 돈으로는 도파민이 더 이상 분비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제 머릿속에 도파민 분비는 상대적으로 가성비 괜찮아 보입니다.


 객관적으로 열세인 전력이지만, 기대치가 낮은만큼 그 이상의 성과를 보인다면 온 국민이 더욱 열광할 듯합니다. 내일부터 있을 우리나라 경기에서 꼭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좋은 경기력을 보인다면, 온 국민이 맘껏 분비된 도파민을 향유할 수 있을 듯합니다. 축구도 인생도 모두 '과정' 이니깐요.






Reference)

Neuroscience: Exploring the Brain, 4th edition, Mark F. Bear et al.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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