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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속의 두더지 Oct 01. 2022

5월의 편지

갖가지 행사가 많은 5월. 꼬맹이가 생겨 챙겨야 하는 어린이날부터 스승의 날까지. 신랑에게 “아니 나는 다른 사람들 선물만 챙기다 5월이 가네” 하고 투덜투덜거렸더니 산책 다녀온 신랑이 들고 온 꽃다발 하나. 이것은 어버이날 용인가 스승의 날 용인가.


딱히 나는 내가 ‘스승’이라는 거창한 말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고, 훌륭한 스승보다는 그래도 월급 받는 만큼 밥값 하는 괜찮은 직업인만 되어도 다행이라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마저 쉽지 않다.)


그래도 올해는 오랜만의 복직이라 의지도 뿜 뿜(?)이고 열의도 넘치는 시작이었다. 그러나 미처 코로나 유행을 경험하지 못한 나의 교직생활은 3월과 함께 대혼란에 빠지고 마는데. 매일같이 확진자 체크와 보고, 자가 진단키트 포장과 확진자 발생 문자, 결석생 온라인 학습, 온라인 총회 등등 그전까지 해보지 않은 일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이야 힘든 것이 아니지만 그 사이에 밤 열 시 넘어오는 문자들과 예의 없음에 ‘이게 맞나’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힘이 쭉 빠지고 솔직히 애써서 뭐하나 싶기도 했었다.


엄마가 된 후의 나의 교사 생활은 확실히 전과 달라졌다. 엄마가 되기 전 “선생님은 아기를 안 키워보셔서 몰라요’”라는 말이 싫었는데 이것은 어떤 면에서 매우 맞는 말이었다. 돌이켜보니 이것은 엄마들의 처절한 외침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리틀문을 키우면서 인생 내 맘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특히 자식은 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매우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아이들이 이만큼 자랄 수 있었던 것은 그 부모의 엄청난 수고와 사랑 때문이라는. 매우 진부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그런 것들을 깨닫는다.


올해 스승의 날은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학교는 평소와 똑같았다. (우리 교사들 역시 아무 소동 없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별일 일어나지 마... 제발) 아무 생각도 없이 출근했는데 꼬맹이들이 편지를 들고 왔다. 그중에는 자기 몸집만 한 카네이션 편지를 들고 온 아이도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웃겨 한참을 웃었다. 또 한 아이는 비누꽃에 편지를 하나하나 꽂아 들고 왔는데 편지만 쏙쏙 뽑아서 받고 꽃 사진 한 장을 찍은 후 꽃다발은 돌려주었다. 꽃이 너무 예쁘고 너무 고맙지만 선생님이 꽃은 받을 수가 없다고 사진으로 잘 찍어놨고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꼬맹이가 실망한 것 같아 자꾸 걱정이 되기도 했다. 뒤에 장난꾸러기 남자애들은 “선생님. 이 정도면 받아야 해요!”(?)라고 말하며 “왜 못 받는 거예요?”라고 묻기도 했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은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선물을 주면 꼭 고맙다고 말하고, 금요일 집에 갈 때는 하이파이브를 하곤 한다. 선생님도 주말 잘 보내라고 이야기해 주고 오늘은 더 예쁘다고 이야기해준다. 아마도 예전 우리 반 아이들도 똑같이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다만 그 모습을 내가 많이 놓쳤던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 담겨있는 쑥스러움과 귀여움을 아마 수없이 놓쳐왔을 것이다. 엄마가 된 후 나의 교사 생활은 확실히 전보다 세심해지고 유해지고 참을성이 엄청나졌다.(이 모든 것이 나의 리틀문 덕분이지..)


올해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학부모에게 짧은 편지를 쓴다. 5월에는 무슨 말을 쓸까 고민하다 ‘이렇게 사랑스럽게, 이만큼 아이들을 기르시느라 고생 많으셨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쓸까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당신들의 사랑으로 키운, 당신의 전부인 아이들에게 좀 더 따뜻한 교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끝마쳐야지.


나의 다짐들은 늘 연약하고 아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종종은 바람과 사려져버리기도 하지만. 이 마음은 진심이고 아이들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우니깐. 어쩔 수 없이 이 관계에서 여러모로 약자인 나는 나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다음 생엔 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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