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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Jan 16. 2024

24. 그대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도해 본다.

온두라스 | 사소한 행동 하나로 바뀌게 되는 것

겉으로 보기에 테구시갈파는 지금까지 거쳐온 여느 중미의 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방이라도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 악명 높은 타이틀과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일까?

아니면, 터미널에서 옆나라 초등학생 명탐정과 할아버지의 이름을 거는 명탐정 닮은 사람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까?


쏟아져 내린다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야심한 시간에 저 비를 뚫고 잠 잘 곳을 찾아 헤매는 방랑자(라는 이름의 부랑자)가 될 자신은 나에게도 Yuto에게도 없었다.

그러던 중 보이던 맥도날드. 감사하게도 24시간 영업.

우리는 이곳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기나긴 밤을 지새우기 위해 오랜만에 어학원에서 공부했던 노트를 꺼내 들었다.

오랜만에 스페인어 공부를 위해서. 혹은 내일 움직일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난 공부만큼 빨리 잠드는 방법도 없다.)



맥도날드에서 한컷. 지금 보니 살짝 넋이 나간 듯하다.




반복되는 일에는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이 겪는 일 중 하나가 바로 '타인의 시선'이다.


그 시선의 의도가 단순한 호기심인지, 어떠한 목적성에 의거한 것인지는 매번 다르지만 어쨌든 많은 시선과 주목을 받게 된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에는 익숙하다.


시선에 익숙해지는 만큼 눈치 보는 것에도 눈치 보지 않는 것에도 익숙해진다.

맥도날드에서의 우리는 눈치 보지 않는 것에 대한 익숙함을 발휘했다.

커피 하나 주문하고 오랜 시간을 버텼다. 물론 그런다고 눈치 주는 직원은 없었지만, 그냥 괜스레 그랬다.


이제는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우띨라 섬. 그곳에 가기 위해 라 세이바(La Ceiba)라는 곳에 가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라 세이바에 가기 위한 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


이른 새벽. 다행히 비는 그쳐있다.

택시를 잡으려고 길가에 기웃거리니 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영어를 쓸 줄 아는 아이였다.)

우리가 나눈 대화를 자세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디에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외지인들에겐 택시도 위험할 수 있으니 본인들이 정류장까지 데려다준다는 이야기까지.


여행 중에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특히 치안이 좋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경계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순수한 호의이지만 일부, 호의를 가장한 사기꾼 혹은 강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도 이유 없는 호의에는 다소 경계를 하는 편이었지만, 상대는 아직 사기라는 업에 종사하기엔 다소 어려 보이는 외모였다. 거기다 가족이 함께라니 더더욱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판단했다.(설마 가족사기단이기야 하겠어.)

우리도 나름(?) 건장한 성인 남성 둘이다. 그래서 감사히 그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와 그의 가족들의 배려 덕분에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착한 우리는 잠시 경계했던 마음에 대한 미안함과, 처음 본 여행자에 대한 걱정과 순수한 호의에 대한 감사함에 온두라스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을 조금 바꾸게 되었다.

현지인이 이야기할 정도로 경계를 풀어선 안될 수준의 위험함도 있지만, 그만큼 따뜻함과 정도 공존하는 곳이라고.


한 개인의 사소한 행동 하나로 그 나라에 대한 인식 전체가 바뀔 수 있음을 몸소 체험하게 된 순간이었다.


아쉬움과 감사함 등의 여러 가지 마음을 품고,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어째선지 영어를 못하는 아이의 아버지와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는데, 다음날 무사히 도착했냐고 연락이 왔다.



무사히 라세이바에 도착한 우리는 동네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바로 우띨라 섬에 가는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마침내...

기나긴 여정 속에 드디어 우리는 우띨라 섬에 도착했다.




다행히 Yuto가 다이브샵은 알아두었다.

우리가 간 곳은 Parrots Dive Center.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발급하는 단체는 여러 군데가 있다.

PADI, SSI, YMCA.. 등등

그중 가장 높은 점유율을 지닌 곳이 PADI였는데, 우리가 다닐 다이브샵 또한 PADI의 자격증을 발급해 주는 곳이었다.



이름처럼 실제로 앵무새가 있다.



PADI의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은 크게

Open Water Diver, Advanced Open Water Diver, Rescue Diver, Divemaster(Instructor) 순으로 나뉘는데,

오픈워터 다이버는 입문 과정으로 최대 18m의 수심까지 잠수를 할 수 있게 된다. 소요기간은 약 3일 정도.

어드밴스드 오픈워터는 30m의 수심까지 잠수할 수 있으며, 이때 수중항법/딥다이빙/난파선다이빙/동굴다이빙/야간다이빙 등을 배우게 된다. 소요기간은 약 2일.

레스큐 위의 다이버 보다 조금 더 수준 높은 단계로, 다이버 인명구조와 관련된 기술들을 배울 수 있다. 소요기간은 약 1주일.

다이브마스터부터는 이제 프로의 영역이며, 강사가 될 수 있는 전 단계라 볼 수 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다이브샵의 스태프로 일하며, 물속에서 다른 다이버들을 데리고 안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소요기간은 약 1달 이상.

(이 소요기간은 내가 취득하는데 걸린 소요기간으로, 일부 차이가 있으니 참고만 하길)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데 오픈워터만으로는 조금 제한이 있을 듯하여, 우리는 어드밴스드 오픈워터 다이버까지 따기로 했다.

다행히 샵에서 다이빙 자격증 취득에 수강생들을 위한 숙소까지 포함하고 있어, 우리는 따로 숙소를 잡을 필요 없이 등록에서 숙소까지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수업은 다음날부터 시작이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배정된 숙소 침대에 눕자 비로소 긴장이 풀리며 새삼 내가 정말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얄미운 면도 있지만, 과연 Yuto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스쿠버다이빙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지, 그리고 그 가족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무사히 이곳까지 올 수 있었을지.

새삼 여행에 만난 인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 조금 나중의 이야기지만,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우띨라 섬을 나오고 나서 Yuto와는 각자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그 뒤로는 따로 Yuto와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으며, 페이스북에서 가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구나 정도의 근황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더더욱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아직도 세계를 여행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나처럼 고국에서 직장인으로서 착실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테구시갈파에서 우리를 태워다 주었던 그 가족들. 이름도 모르고 근황은 더욱 모르는 지구 반대편의 한 가족이지만, 10년 전 베풀어 준 작은 호의가 내 여행이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게 해 준데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과의 인연에 다시 한번 감사를 느끼며,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그대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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