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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Jan 26. 2024

26. 자꾸 뭔가 중요한걸 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온두라스 | 스쿠버다이빙을 하다 1

일상을 살아가면서 하는 행동이나 습관 중 좋아하는 것이 있는가?


천천히 길을 걸으며 온 세상을 구경하는 것

노래를 들으며 리듬에 맞춰 쿰척쿰척 몸을 움직이는 것

매끼 먹는 음식 사진을 찍어 기록하는 것

...


그중에서도 나는 밤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이 좋고, 달을 보는 것이 좋다.

특히 보름달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을 하면서도 수 없이 많은 밤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한국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남미에서 바라보는 하늘, 유럽에서 바라보는 하늘, 아프리카에서 바라보는 하늘.

같지만 다른 하늘.


야근을 하다 보면 늦은 밤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다.(블랙기업!?)

그럴 때면 나는 잠시 쉴 겸 테라스에 나가서 밤하늘을 본다.


밤하늘은 나를 감성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지금 내가 보는 밤하늘과 이제는 조금씩 잊혀 가는 그 시절 그곳의 하늘은 같은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단 생각에 괜히 서글퍼졌다.

이렇게 살려고 내가 지금까지 고생을 해서 취업준비를 하고 취업을 해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걸까? 이것이 정답일까?


과연 나는 행복한가?




다음날, 누나랑 같이 샵에 갔더니 우리들 말고도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친구끼리 온 사람들도 있었고, 커플로 온 사람들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스쿠버다이빙은 버디 시스템(Buddy System)으로 이루어진다. 2인 1개 조로 행동하는 것이다.

우선, 버디를 정했다.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은 친구끼리, 연인끼리 온 사람들은 연인끼리 짝을 이루었다.

그리고 우리처럼 혼자 온 사람들은 그중에 남은 사람들끼리 버디가 정해지는 건데...

아무래도 국적도 같고 같이 와서 그런지 사람들이 나랑 J누나를 일행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내 버디는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해졌다.

(J누나조차 다른 사람들처럼 당연히 내가 자신의 버디일 거라 생각한다.)


기본적인 이론을 배우고, 장비에 대해 배웠다.

물속에서 사용하는 수신호를 배웠다. 그리고 물속에서의 주의사항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배웠다.

이론이 어느 정도 끝이 나면 실습을 하게 된다.


장비를 보트에 싣고 바다로 나갔다.

아직 스쿠버다이빙스러운 건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바다에 나가도 되나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해안가에서 바로 보이는 거리에 보트는 멈추었다.

티브이에서 스쿠버다이빙 하는 사람들을 보니 보트에서 멋있게 물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걸 본 적이 있다.

나도 그렇게 뛰어드는 걸까? 그러다 입이랑 마스크에 물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사다리를 내려준다.

그렇게 우리는 모양 빠지게 사다리로 보트에서 내려 바다에 들어갔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 BCD(산소통과 연결되어 있는 조끼모양의 장비. 안에 공기를 넣었다 빼서 부력을 조절한다.)에 공기를 가득 채워두었기에 바다에 둥둥 떠있다.

우리 일행 모두가 보트에서 내리고, 부표처럼 바다에 동동 떠있자 강사가 자기 버디 찾아서 붙어있으라고 한다.

서로 각자의 버디와 같이 물에 동동 떠있으니 아주 잠시 해달 같다는 귀여운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장비와 버디의 장비가 잘 장착되어 있는지, 이상은 없는지 확인한다.

이상 없다.(노프라브람 돈트와리)

자, 이제 물에 들어갈 시간이다. 강사가 마스크 쓰고 레귤레이터(호흡기)를 물라고 한다.

강사의 하강 수신호에 맞춰 BCD의 공기를 빼면서 잠수를 시작했다.


스쿠버다이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패닉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패닉에 빠지면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려워지고, 신속한 대처를 할 수 없다. 그리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산소의 소모가 극심해진다.

그래서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에도 평정심을 유지한 채 버디에게 나의 이상을 알리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괜찮아. 아무 이상 없어. 잘하고 있는 중이야. 두려워할 거 없어. 이건 재밌는 거지 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야.'


살면서 나를 위해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말들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나는 물에 점점 가라앉는다는 현실에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 런. 데.

나도 무서운데, 옆에 J누나는 더 무서워한다....

호들갑에 난리다.

아까까지 긴장하고 있던 것이, 갑자기 싹 사라졌다.(내 긴장 돌려내....)


하.


 "누나 괜찮아요. 아무 이상 없어요. 잘하고 있는 중이에요. 두려워할 거 없어요. 이건 재밌는 거지 누나를 해치는 게 아니에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을 내뱉으며 나의 (애물단지) 버디를 달랬다.

물속에 들어가면 내가 믿고 의지할 건 버디뿐인데....

정말 의지해도 되나 싶은 걱정이 살짝 들었다.


어쨌든. 누나를 진정시키고 나도 다시 잠수를 시작했다.


몸이 점차 가라앉으며 가슴팍에 있던 바닷물은 점점 목을 지나 얼굴을 그리고 어느새 머리까지 차올랐다.

아니, 내가 가라앉았다.


그동안 나는 물이 무서워 발이 닿지 않는 곳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수경이나 마스크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물속을 구경할 일은 없었으며, 파도가 치는 해안가에서 볼 수 있는 바닷속은 특별함이 없다. 나의 호흡을 곤란하게 하는 거친 파도와 거기에 떠밀려오는 모래뿐인 바다. 두려움의 바다.

그게 내가 알고 있는 바다였다.


잔뜩 겁에 질려있던 나의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그동안 내가 알던 곳과는 사뭇 다른 곳이었다.(처음 뵙겠습니다.)

카리브해의 에메랄드 빛 바다. 그 안에 내가 있다.

아주 신기한 기분이었다. 세상이 반전된 느낌이기도 했고, 다른 세상 같기도 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바다는 아름다움의 대상이 되고, 경외의 대상이 된다.


바닷속이 어떻게 생긴 지 알고 나니 더 이상 바다는 무서운 곳이 아니었다.


다행히 우리가 들어간 곳은 수심이 5미터가 채 되지 않는 얕은 바다였다.

이퀄라이징을 하며 바닥까지 잠수를 한다.

바닥에 무릎 꿇고 서서(?) 몸의 균형을 잡았다. 조류에 몸이 흔들리지 않게.

레귤레이터로 숨을 쉬는 법을 익혔다.(대단한 건 없다. 그냥 입으로 숨을 쉬는 것뿐.)

숨 쉬는 것에 익숙해질 무렵, 마스크 안에 물이 찼을 때 물을 빼는 법을 익혔다.(마스크 윗부분을 살짝 잡고 고개를 든 뒤 코로 숨을 내뱉으면 공기가 마스크 아래쪽으로 공기가 빠지며 물도 함께 빠진다. 뽀글뽀글)


어느 정도 연습이 끝나고, 일련의 과정을 모두 할 수 있게 되자 강사의 수신호에 맞춰 다시 수면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나의 첫 다이빙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더니, 대부분은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수영장에서 먼저 위의 과정을 익히고 바다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후의 오픈워터 다이버 과정 수업은 순조로웠다.


보트에서 물에 뛰어드는 법, 물속에서 움직이는 법 등을 익혔다.

오전에 샵에서 다이빙을 배우고, 오후에 돌아와서 테스트를 위한 공부를 했다.

저녁엔 같이 다이빙을 배우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대충 술 마시며 놀았다는 말이다.ㅎ)



나와 함께 다이빙을 배운 멤버들. 근데 사진에서 왜 내가 센터에 있지?



3일 차가 되었을 때 우린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무사히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다.

펀 다이브로 18m 바닷속까지 다이빙도 했다.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 투성이었던 나의 여행에서 드문 평화로움과 순조로움이 아주 조금은 낯설었지만 싫지는 않다.

따사로이 지는 노을을 구경하며 해먹에 누워있자면 이것이 신선놀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맛에 내가 여행을 떠난 것이지 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3일이란 시간은 친구도 사귀고, 자격증도 따고, 아주 보람차고 재밌는 시간이었는데...

그런데, 왜일까?



자꾸 뭔가 중요한걸 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가로운 날들의 연속. 은퇴하면 또 이런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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