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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 Mar 06. 2024

28. 나는 그날의 풍경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온두라스 | 스쿠버다이빙을 하다 2

어드밴스드 오픈워터 다이버 수업이 시작되었다.

어드밴스드 오픈워터는 오픈워터의 심화과정이라 보면 된다.

18m 깊이까지 잠수할 수 있던 것이 30m(또는 40m)까지 잠수하게 되며, 수중 내비게이션 교육 및 중성부력을 익히게 된다. 그리고 딥다이빙, 난파선다이빙, 나이트다이빙 등의 어드벤처 코스를 익힌다.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여기서 가장 핵심은 바로 중성부력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후 다이브마스터까지 자격을 취득하여 수십여 차례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지인들에게 살면서 꼭 한 번은 체험다이빙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다이빙을 해보길 추천하고 있다.

그 이유가 바로 중성부력에 있다.


우리의 몸은 물에 뜨게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이빙을 할 때 각자 자신의 무게에 맞게 추를 매고 다이빙을 한다. BCD(산소를 넣고 빼며 부력을 조절하는 조끼 같은 스쿠버 장비)에 공기를 가득 채운채로 물에 입수를 하고, BCD 산소를 빼면서 잠수가 시작된다.

목표한 깊이까지 들어왔으면 더 이상 가라앉지 않는 순간까지 BCD에 조금씩 공기를 채워 넣는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BCD 속 산소의 미세한 조정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지도, 수면 가까이로 떠오르지도 않는 중력과 부력의 힘이 플러스마이너스 제로가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다만, 내 호흡에 맞춰 숨을 들이켰을 땐 아주 조금 떠올랐다 숨을 뱉을 땐 아주 조금 가라앉는. 그것뿐인 상태.

이때가 중성부력이 맞춰진 상태이다.

이 순간이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수면 위로 떠오르거나 물속에 가라앉는 걸 막기 위해 발장구를 칠 필요가 없어진다. 즉, 불필요한 움직임이 사라지고 그만큼 산소의 소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수준에 다다르면 스쿠버다이빙이 아주 조금 더 재밌어진다.)


나는 이 순간이 우주의 무중력과 조금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주 조금 우주인의 기분이, 그리고 아주 조금 물고기의 기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꼭 죽기 전에 직접 스쿠버다이빙을 한번 해보길 추천한다. 

아직까지 우리가 우주에 갈 순 없기에.




딥다이빙은 수심이 깊은 바다에 들어갔다는 사실 외에 큰 감흥이나 감동은 없었다.

오히려 별로였다.

깊은 바다라 그만큼 빛이 들어오지 않아 서식하는 산호초가 많지 않다.

산호초가 적은 만큼 산호초를 주식으로 하는 물고기나 그런 물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다른 수산물(?)이 없기 때문에 깊은 바다에서 볼 수 있는 개체의 종류가 한정적이다.

빛이 적은 만큼 보이는 것도 적고, 수심 깊은 바다까지 도달할 수 있는 가시광선의 종류가 적기에 실제 사물의 색과 다르게 보이는 색들이 많다.

(노란색의 가시광선은 깊은 수심까지 도달하기에 여전히 노란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버디용 레귤레이터(호흡기) 등 스쿠버다이빙의 주요 장비들은 노란색인 경우가 많다.)

수압으로 인해 더 빨리 산소를 소모하고, 수온이 낮다.


난파선다이빙은 난파선의 종류에 따라 기분이 조금씩 다르지만, 아쉽게도 대해적시대(?)의 금은보화가 가득 실린 해적선(?)이 아니기에 큰 기대를 할 수 없다.(??)

혹시라도 정말 해적선이었다 하더라도, 이미 누가 털어갔을 것(???)이기에 헛된 기대는 하지 말자.

들리는 소문으로는 다이빙 포인트를 위해 일부러 배를 가라앉힌 곳도 있다는 듯하다.(노잼)

그럼에도 바닷속에 가라앉아있는 난파선을 처음 마주했을 땐 꽤나 신비로운 느낌임은 틀림없다.




혹시, 나의 추천에 조금 귀를 기울여 '어? 나도 스쿠버다이빙 한번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두 번째로 추천하고 싶은 것이 바로 나이트다이빙이다.


나이트다이빙. 말 그대로 밤에 하는 다이빙이다.

그런 의문이 들 것이다.


'아니, 아까 대낮에 다이빙을 해도 수심 조금 깊이 들어가면 보이는 게 많이 없다더니, 밤에 다이빙하면 더 안 보이는 거 아냐?'


그렇다. 나이트다이빙에서는 뭐가 안 보인다. 깜깜하니까. ㅎ (당연하잖아?)


깜깜하니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보이는 것이 있다.

정확하게는 나이트다이빙에서는 보는 것이 다르다.

(이건 만국공통의 정답이 아닌 나의 주관적인 의견이니, 스스로 나이트다이빙을 해보고 결과를 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이빙 포인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다이빙 포인트는 배나 보트를 타고 어느 정도 해안에서 떨어진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망망대해(茫茫大海).

사전 그대로 넓고 큰 바다. 그래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그중 한 곳에 배가 멈춰 선다. 곧이어 엔진이 꺼진다.

주변에 빛이라곤 배에서 비춰주는 라이트와 손에 들고 있는 손전등에서 나오는 빛, 그리고 달빛뿐이다.

손전등을 하나씩 들고 바다로 뛰어든다.

버디를 찾는다. 서로의 위치를 파악한다.

버디의 근처에서 함께하는 다이브마스터를 쳐다본다. 그리고 다이브마스터의 신호에 맞춰 다 같이 잠수.


물속에서는 방향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나 밤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손전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길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손전등을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빛의 길의 끝에 다른 다이버의 모습이 보일 때도, 바닥이 보일 때도 있다.

빛의 길을 지나는 물고기들이 얼핏 얼핏 보인다.

의외로 밤에도 물고기들은 열심히 헤엄친다.

바닥을 비추니 낮에는 보이지 않던 랍스터들이 보인다. 아주 실하고 싱싱하다.(주룩)

랍스터들이 야행성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이브마스터가 신호를 보낸다.

문뜩, 다이빙하기 전 배 위에서 다이브마스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이빙을 할 땐, 가이드인 다이브마스터를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다이빙 이전에 다이빙 포인트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과 주의사항, 그 포인트에서 볼 수 있는 물고기나 수상생물에 대해 간략히 알려준다. 그리고 그 생물들을 지칭하는 수신호도 함께 알려준다.


다이브마스터는 본인이 신호를 주면 손전등을 꺼라고 했다.

그 신호였다.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일제히 가지고 있던 손전등을 껐다.


(반짝반짝)


무언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분명 불 꺼진 바닷속에서는 보이는 것이 없을 것인데, 무언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바로 발광 플랑크톤들이다.


이것이 나이트다이빙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낮의 바다와 밤의 바다는 분명 같은 바다이지만, 확연하게 다른 곳이었다.

다시 손전등을 켰다.

각자의 산소를 확인한다. 이젠 수면으로 올라갈 시간이다.


코로 호흡을 하는 것이 익숙한 우리에게 코를 막은 채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은 꽤나 답답한 일이다.

물론 적응하면 괜찮지만, 그럼에도 답답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더군다나 낮과 달리 시야가 많이 제한된 나이트다이빙은 낮의 다이빙보다 큰 답답함이 있었다.

그래서 반짝이던 플랑크톤이 준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더 오랫동안 밤바다를 즐길 수 없단 아쉬움보다 수면으로 올라가 코와 입으로 호흡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 아쉽지 않았다.

나의 포커스는 오로지 빨리 마스크와 호흡기를 벗고 시원하게 호흡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호흡하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들었다.

이제 곧 수면에 도달한다.


손전등만 들고 들어간 바다.

밤이라 보이지도 않고 입으로만 숨을 셔야 하던 답답하던 물속에서 올라왔을 때.

그 수면 위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보트가 있다. 그러나 그 너머에 수천수만 개의 별들이 있다.


바로 보트에 올라가지 않고, BCD에 공기를 가득 채워 물에 동동 떠다니며 밤하늘을 바라본다.

바다도 눈치가 있는 걸까? 큰 파도 없이 잔잔하다.

한국에서 몇천 킬로 떨어진 이국의 바다에서 몇 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온 별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스레 감성에 젖어든다.


이것이 나이트다이빙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어? 혹시.. 이거.. 스포인가..?)



나는 그날의 풍경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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