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의 공포(휴가의 공포)
오지 마 인마.
'빨리 출근해서 키보드 두드리면서 일하고 싶다. 빨리 월요일이 왔으면..'
토요일 저녁. 몸에서 기운이 빠지고 으슬으슬한 한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는 도중에도 간혹 힘이 쭉 빠집니다. 감기가 걸린 건가? 아니죠.
일할 땐 그렇게 돌아가지 않던 머리가 벌써부터 계산을 때립니다.
이렇게 신나게 오늘 놀고, 내일 숙취에 하루종일 뒤척이다 보면 금세 일요일 저녁이 되고 그렇게 화장실 거울 앞에서 저녁 양치를 하며 월요일의 코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게 될 거란 걸 알게 됩니다.
토요일 저녁부터 기분이 상합니다. 아 왜! 벌써 토요일 저녁이냐고. 어제 퇴근하고 아주 잠시 자다 인나서 시간 좀 보니 토요일 저녁이네요. 재직시절, 월요병이 심한 편이었어요. 일요일은 거의 새벽 3시나 되어야 눈을 감았습니다. 월요일 출근하면 병든 닭 마냥 퀭한 눈을 하고선,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한숨과 졸음을 물리치느라 곤욕을 치렀죠.
관성의 법칙.
월요일과 화요일이 지나면 수요일부터는 시간이 어느 정도 잘 가는 거 느껴보신 분 있으실 겁니다. 직장생활도 15년이 넘어가면 이제 속도가 붙고, 어느 정도 관성이 생겨 그럭저럭 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상하리만치 그게 잘 안되더군요. 일요일저녁이 되면 이상하게 기분이 다운됩니다. 예전, 주말의 마지막을 알리는 개그콘서트 엔딩곡이 그렇게 싫었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 첫 주말부터 월요병에 시달렸네요. 16년을 직장생활을 했으니 그 긴 시간 동안 월요병에 시달렸습니다.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은 다들 적응한 거 같은데 내가 너무 정신상태가 나약한 건가 싶은 때도 있었고요. 나만 유난 떠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놈에 월요병.
다음으로 무서운 건 바로 휴가.
휴가 복귀 하루 전이면 거의 이등병이 백일휴가를 마치고 위병소 앞에 서 있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군대시절, 첫 백일휴가를 복귀하는 위병소 앞에서 담배를 5대를 피면서 밍기적 거리던 기억이 있는데요. 흡사 그런 기분과 비슷한 감정이 듭니다.
특히, 5일 이상의 장기휴가를 가게 되면 치명타가 더 크게 옵니다.
분명히, 난 분명히! 휴가 전 날 퇴근하고 싱그러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정말 거짓하나 안 보태고 눈 깜빡한 거 같은데 내일이 출근날이네요. 정말 시간이 전광석화, 빛의 속도로 지나간 나의 아름다웠던 휴가기간. 이럴 걸 알면서도 휴가는 길게 가고 싶은 이 마음. 길면 길수록 그 고통의 크기는 쭉쭉 치솟습니다. 주말 이틀만 쉬어도 이런데 일주일, 열흘의 휴가를 보내고 복귀하려면 참 기분이 머시기 합니다.
제가 쓴 퇴사 관련 글들은 조회수가 근근하게 지속적으로 나오는 편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까지가 그 퇴사 관련 글들의 조회수가 다른 날보다 더 많이 나옵니다. 사람 마음은 다들 똑같나 봅니다.
아, 그냥 때려치고 장사나 해볼까.
아, 그냥 때려치고 조금 쉬다가 일할까.
따위의 생각으로 퇴사를 독려하는 글들을 찾아보고 있는 자신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붙여서 휴가 쓰지 맙시다 그냥.
개인적으로 그저 토요일, 일요일 이틀 쉬는 게 데미지도 가장 적당하고 그냥저냥 참을만하더군요. 그래서 3일을 넘기는 휴가를 사용하는 데에 조금 망설이는 편이었습니다. 다음 달엔 조금 더 쉬고 싶다면 붙여 쉬지 않고 첫 주 금요일에 한 번. 셋째 주 월요일에 한 번. 이런 식으로 휴가를 썼어요. 휴가가 길어지면 더 힘들다는 건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체득이 되었기 때문이죠.
'빨리 출근해서 키보드 두드리면서 일하고 싶다. 빨리 월요일이 왔으면..'
이라 말하던 사회 초년생 시절, 동갑내기 동료의 한 마디가 갑자기 생각납니다. 그때 잠깐 보고 소식도 모르는데 정말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어요. 진심이었냐고.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