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하반기에 입학해 작년까지 몇 번의 휴학을 거쳐 간신히 방송통신대학교 2학년을 수료했다. 취업도 한 상태고 나이도 있는지라 학사학위에 관심이 없었는데 남들 다 있는 기본값에 나는 못 미치는 것 같아 스을쩍 들여다 봤었다. 배움엔 쉼이 없다며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신 아버지의 추천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사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독려가 나는 좋았다. '그래.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도 나쁘진 않지.' 나름의 효도 코스프레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실용적인 배움을 얻을 거라고 생각해 덜컥 영어영문학과를 들어가게 되었다. 십여 년을 행정직종에 종사하며 경영학과나 행정학과, 법학과는 너무나도 따분해보여 학사학위가 중요한 거라면 재미있게 따자는 생각이었다. 오판이었다. 웬걸, 평생 써먹을 일 없는 외국 희극이나 영어발음의 원리 같은 정말이지 학문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영어영문학도로 지낸 2년은 파파고와 절친 맺기 딱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전공을 물어올 때마다 말수를 잃게되는 태도를 갖게 해주었다. 꼭 뒤이어 "영어 잘하냐?"는 질문이 이어졌으니까.
나에겐 우여곡절 그 자체의 나날들이었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으니 과정도 흔들릴 수 밖에. 그러다 작년 말 개인사정으로 힘든 와중에도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위해 어떻게든 2학년 수료학점을 채웠다. 울면서 시험을 보러가면서도 점수 채우기에 만전을 기했다. 하늘이 도우신 건지 낮은 성적이나마 성의없는 학생 1의 나는 방송통신대 2학년을 수료했다.
내가 오프라인 대학교로 편입을 하게 된 이유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에는 사실 오프라인 수강이 가장 적합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변 야간대생을 보면 학교를 이유로 회식 같은 불필요한 자리에서 빠져나올 핑계거리가 충분해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강제성이었다. 방송통신대는 간간이 있는 오프라인 수업이나 시험 외에는 전부 온라인이기 때문에 개인이 잘 챙겨서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나는 의지가 약해서인지 그런 환경이 나를 알아서 떠돌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프라인 야간대학교로 편입을 준비했다.
흔히 말하는 지잡대 중에 하나일지라도 나는 며칠만에 애교심이 상당하다. 캠퍼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학교, 사실 내가 고등학교 때 종종 거닐고는 했던 학교라 더 애착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학교에 내가 속해있다니 하는 생각에 벅차오르기도 한다. 20살의 내가 이 학교로 왔다면 더 많은 혜택들을 누렸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 조금 아쉬워지기도 하지만 많은 대학생들의 꿈일 취업을 나는 이미 이뤘으니 아쉬움은 또 사그라든다.
오늘은 4일차 출석이었다. 첫 주는 OT주라 딱히 뭘 한 건 없지만 간단히 느낀 점을 적고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나는 야간대생임에도 주/야간의 경계가 자유롭다는 것이 좋았고, 학식은 꽤나 경제적인 식사라는 것, 수업듣는 학생들 중에 나는 정말 만학도였다는 사실과 막상 학교에 가고보니 교수님들의 말씀 놓치기가 아까워 졸린 눈을 찔러서라도 수업을 듣고싶은 것.. 그런 것들이 있었다.
등교시간에 맞춰 퇴근시간을 단축시킨만큼 일의 효율이 굉장히 중요해졌는데 그때문인지 요즘은 아주 압축된 삶을 사는 듯 하다. 출근해서 일을 쳐내다가 점심시간에는 점심식사를 금방 해치우고 테니스를 친다. 오후시간이 되면 퇴근시간까지 또 업무를 와다다다 하다가 퇴근을 해서는 40분을 달려 학교를 간다. 학교에 도착해서는 학식을 먹고나면 수업시간이라 강의장으로 간다. 하루에 2~3강의를 듣고 나면 밤 10시가 되고 집에 오면 11시다.
이렇게 하루가 알차게 돌아갈 수가 없다. 이 생활도 2년까지라는게 지금은 조금 서운하지만 최선을 다해 상위권 성적을 위해 달려나가볼 생각이다. 직장 외 내 영역을 둔다는 것이 삶에 꽤 환기를 시켜주는 일이다. 이런 영역들을 많이 두면 어느 것 하나 조금 어긋나더라도 나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이렇게 살 수 있는 나는 복 받은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