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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Jul 01. 2024

다시 한 번 결혼을 준비합니다

1번의 파혼, 1번의 신혼

겁이 났다. 두려웠다. 나에게 더이상 '결혼'이란, 아니 이성이란 존재가 없으리라 믿고 또 다짐했다. 모든 것에 잔정이 사라진 채로 황량한 몇 달을 보내왔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이성적이고 냉소적으로 살았다. 억겁같은 시간이었고 그 때 내 세상은 한 번 무너졌었다고 느껴진다.


나에게 결혼은 인륜지대사라는 말처럼 무게감 있게 다가오진 않는다. 내가 지금 이 자리까지 살아내면서 나는 거의 대부분의 결정을 내 손으로 해왔고 그 결정들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왔다고 생각한다. 도망쳐보려 해봤지만 모든 것은 나에게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었고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또다른 최선의 선택을 했다. 약으면 약은대로, 어리숙하면 어리숙한대로 그 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결혼도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행인지, 처음 타인을 온전히 믿고 시도해보았던 결혼의 문턱에서 이상함을 감지하고 힘껏 쥐었던 내 모든 결심들을 내려놓았었다. 그 후폭풍 또한 내가 오롯이 다 견디게 되었지만 몸소 그 후폭풍에 세차게 치이며 느낀 바가 정말로 많았다.


그리고 또 한 번 결혼을 마음에 품었다. 나이가 결혼에 적당해서인지 이 나이쯤 되니 이성관계의 물음표는 항상 결혼까지 가고나서야 끝이 났다. 나의 모든 장점은 결혼으로 귀결되고 그의 모든 단점은 결혼이라는 체에 걸러졌다. 꽤 자연스러운 시간들이었다. 이것도 경험이라고 한 번 해보고나니 보이는 것들이 꽤 많아졌다. 내 행동에서도 많은 변화들이 보였다. 마냥 주고만 있지는 않을 뿐더러 받음의 미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금이 갔던 첫 결혼시도에서는 사사건건 그렇게 거슬리는 것이 넘쳐났었는데 많은 것을 그러려니 흘려보낼 수 있게 된 것도 좋은 변화였다. 빨래를 어떻게 개니, 물 마신 컵을 어떻게 두니 하는 것은 더이상 나에게 불편한 요소가 아니다.


지금의 이 사람과는 눈이 뜨고 감을 때까지 이야기를 했다. 대화가 끊기지 않았다. 같은 것을 보고 비슷한 감상을 내놓았고 그것에 우리는 묘한 이끌림을 느낀 것 같았다. 같은 포인트에 노래를 흥얼거린다던가 같은 시간에 서로 카톡을 치고있다던가 하는 그런 타이밍을 우린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만남을 약속하기 전부터 결혼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서로 적지않은 연애경험에 지친 부분도 있었을테고 여러모로 참 좋은 시점이었다.


첫 데이트날 나는 학교 과제를 하려고 했고, 그는 얼마 후 있을 자격증 시험 공부를 하려고 했다. 분명 목적은 이러했는데,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소화나 시키자며 집 주변 공원을 걷다가 갑자기 그 날의 공부를 포기하기로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조잘조잘 떠들다 그의 조부모님이 묻혀계신 선산까지 가게 되었다. 이 무슨 뜬금없는 엔딩일까. 이 날도 노을은 참 예뻤고 아늑한 시골동네의 분위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첫 데이트 치고는 꽤 강렬한 코스였는데 우리의 타임라인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과 사회에 흐르는 시간의 속도가 달랐다. 교제를 약속했을 때 이미 몇 년은 된 부부 같았으니까. 그렇다고 마냥 또 편하지만은 않은. 이래저래 요상하게 지금까지 왔고 또 너무나도 순탄하게 우리는 결혼이라는 길을 걸어가보려 한다.


끝내 무난하지않더라도 지지고 볶는 것이 어떤 건지 이 사람과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성숙하지 못한 나를 깨닫다가 그런 나를 본 그가 걱정되어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아무쪼록 해피엔딩이길 바라며, 나의 결혼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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